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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그들이 찾은 대안은행빈집 주거공동체에서 출발한 빈고
239명 조합원, 총자산 2억2천만원
  • 김진이 기자
  • 승인 2015.06.26 12:35
  • 호수 1230
  • 댓글 0

보증금을 출자금 전환, 저금 대출도
사채 떠안은 청년들 위한 프로젝트


   
▲ 카페협동조합 해방촌 빈가게
 ‘남편도 친정도 몰라요. 대출이 필요한데 말할 곳 하나 없네.’ 미모의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방송에 자주 나오는 저축은행의 소위 여성전용 대출 광고 가사. 여성, 비정규직, 누구나 가능하다는 이 대출의 이자는 연 34.9%. 60개월 상환 조건이다. 이런 종류의 대출을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이들은 이자와 추심의 무서움을 잘 안다. ‘88만원 세대’도 옛 말이 되어버린 젊은이들에게 금융권 이용은 멀기만 하다. 청년공동체로 출발한 해방촌 빈고는 과연 어떤 대안을 찾았을까.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 기쁘게 연대하고, 재미있게 운영’한다는 그들의 이상은 어떻게 현실이 됐을까.


“일반인은 은행을 이용하죠. 가난한 사람들도 은행을 찾지만 실제는 사금융을 많이 이용해요. 대학졸업과 동시에 등록금 대출금 상환에 시달리죠. 때로는 다른 가족의 부채를 떠안기도 합니다.” 서울시 용산구 주택가에 자리한 해방촌 빈가게. 운영활동가 좌인(별칭)씨에게 빈고공동체기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공동체 ‘빈집’에서 출발한 이들은 도대체 왜 금융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 해방촌 빈가게의 빈고 창구
청년 백수 3명 빈집에서 출발
“재작년 ‘우주살림 협동조합’을 공동체 은행 ‘빈고’로 명칭을 변경했어요. 단순히 빈집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집보다 더 포괄적인 조합원 구성이 이뤄져 있어요. 보다 확장된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빈고의 시작은 ‘미약’했다. 2008년 2월 해방촌에서 3명의 청년 ‘백수’들이 자신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열면서 시작됐다. ‘빈집’이라 이름 짓고 보증금 중에서 일정 금액에 대한 이자와 공과금을 나눠내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빈집은 1년 만에 4채로 늘어났고, 장기투숙객도 20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집의 보증금을 낸 사람이 집을 나가는 경우가 생기고, 소수가 큰 금액을 내는 방식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공동기금, 은행에 대한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마을 금고를 만들고 출자금을 모아 각 집의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을 이용하면 특정인에 대한 책임과 권리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한 사람이 당장 보증금을 빼게 되면 집의 존재자체가 흔들리게 됐죠. 또 권리를 내가 나누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워요. 고민을 하던 차에 2010년 공동체기금을 생각하게 된 거죠. 각 집의 보증금을 개인이 내지 말고 중앙에 모아보자. 더 낼 수 있는 사람은 더 내고. 중앙에서 해결하면 누군가 보증금을 가져가야 되도 집이 흔들리는 경우는 없고, 돈이 남으면 그 돈으로 뭘 해보자 하고 시작한거죠.”
우주살림협동조합 빈고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누구나 출자할 수 있고, 필요한 돈을 대출받는다. 언제든 출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동거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집을 옮기고, 들어오고 할 수 있게 됐다.  
빈집의 거주자는 집주인과 빈고와 두 번 계약서를 쓰게 된다. 계약자가 나갈 때는 새로운 사람에게 넘겨주는 방식이다.

   
▲ 빈고통장
   
▲ 빈고의 지역화폐 해방화폐
조합원인 동시에 이용자, 운영자
현재 빈고는 조합원 239명. 총자산 2억2200만원으로 운영된다. 출자금 1억3279만원, 차입금 320만원, 공동체기금 3300만원, 적립금 3300만원 등으로 자산은 구성돼있다. 이들의 재정 상황은 홈페이지(http://bingobank.org/)에 공개된다. 빈고의 조합원은 출자자이자 이용자, 운영자다.

“우리는 출자와 대출을 이용활동이라고 불러요. 필요할 때는 언제든 출자 반환이 가능합니다. 원래는 개인만 통장을 만들다가 공동체별로 통장을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빈고는 현재 10여개의 공동체와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해방촌 빈가게, 빈집, 사랑채, 구름집, 넓은 집, 청주 공룡, 부천 모두들, 팔당 두머리 부엌, 인천 비행, 부산 잘자리빈집. 각 공동체마다 별도의 잉여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돈을 빈고에 출자하도록 했다. 그 규모가 3300만원 정도.

“공동체 출자를 통해 서로를 지원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죠. 공동체 10개를 통해 새로운 관계망이 만들어진 거죠. 우리는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해요.”

주거공동체에서 출발했지만 공유 카페 빈가게에 이어 컴퓨터 공동체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빈고의 조합원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단순히 출자를 하고 대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자가 어떻게 사용되고, 운영되는지 관심을 가져야한다. 1년에 한번 조합원 총회가 있고, 모든 조합원은 총회와 활동가 회의에 참석한다.  

   
▲ 운영활동가 좌인씨가 빈집 옥상에서 동네를 설명해주고 있다
청년 채무탈출 프로그램도
“출자 지지금의 20%는 공동체 회원을 위해 사용합니다. 채무탈출 프로그램도 있어요. 최근 한 친구가 24%의 사금융을 쓰고 있어서 우리가 1000만원 정도의 원금을 빈고에서 갚도록 했어요. 대신 이자는 12%로 결정했어요.”

빈고의 이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3%에서 12%까지 유연하게 결정된다. 대출 이유도 다양하다. 생활비, 대출금 상환부터 여행자금도 대출해준다.  

“운영구조가 고민이 됐어요. 하나의 공동체를 하나의 금고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대표 활동가를 정해요. 그 활동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상임활동가를 한두명 선정해 임원을 구성합니다. 대표활동가도 거기서 정하죠.”

전체 활동가 회의에는 17명 정도로 구성돼있다. 재미있는 것은 빈고는 별도의 정관이나 운영규정이 없다는 것.

“정관, 규정이 있으면 융통성있는 운영이 어렵죠. 이자율부터 대출 규정까지 회의에서 정해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돼야죠.”

대출이 거절된 사례도 있었다. 주식투자를 위해 통장에 임시로 넣어야할 돈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는데 회의를 통해 부결됐다. 빈고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단다. 빈고 조합원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다문화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겠다는 지역 주민에게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공사비 100만원, 보증금 500만원을 지원했고,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 서울 용산구 해방촌 거리
해방화폐 통해 재래시장과 연대
지역 화폐인 해방화폐는 지역의 신흥시장과의 연대를 고민하다 만들게 됐다. 신흥시장에서 바자회를 두 번 열어 수익금이 생겼다. 상인들에게 지역화폐를 통해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돈을 그대로 주면 다 써버리고 끝나지만 상점에서 다시 쓸 수 있다니까 다들 좋아했다. 익금은 90만원을 씨앗자금으로 첫 해방화폐를 800만원 정도 발행했다.

“작년 시흥시장 바자회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확인해보니 700만원이 유통됐어요. 상가는 처음 33개가 참여했고, 지금은 40여개 정도. 해방화폐 발행위원회를 별도에 두고 초기에 빈고에서 50만원 사업비를 지원했습니다.”

좌인 활동가가 위원회 사무국장도 맡았다. 인근 성당에서도 참여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해방화폐를 지원했다. 빈가게에서도 유통되고. 그러나 아직 활성화는 고민단계.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민중이다. 
청년공동체로 출발한 만큼 현재 조합원들은 20~30대가 대부분. 40~50대도 20%정도 된다. 소문이 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

“너무 돈이 필요해 돈 빌릴 데가 없어서 옵니다. 시민사회 활동하다가 오기도 하고. 50~60대 장기투숙자들도 계세요.”

빈고의 창구는 빈가게 안에 있다. 월, 화, 수 활동가가 상주헤 입출금 업무를 맡는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듯이 빈고도 그렇다. 빈집의 거주자, 빈고의 조합원, 빈가게의 주인, 이용자들이 같은 멤버들인 셈. 외로운 서울의 중심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일과 주거, 가족공동체를 만들었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과연 다른 지역, 공동체에서도 빈고가 가능할까.

“공동의 필요를 찾아야내야죠. ‘이런 좋은 뜻을 갖고 있으니 돈을 모아보자’고 모이면 어려울 것같아요. 빈집은 보증금 문제에서 출발해 오히려 쉽게 올 수 있었죠. 필요가 명확히 보이면 동참 하고 힘을 싣기도 쉽죠.”
규정이나 정관보다 누군가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젊음의 유연함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빈고 공동체. 무엇보다 서로를 신뢰하는 청년들이 공동체와 함께 성장해왔기에 오늘의 빈고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인터뷰-좌인 운영활동가
 

   
▲ 운영활동가 좌인씨
“빈고는 새로운 가족, 안전망”

희망제작소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업무를 보다가 빈고 활동가가 된 좌인(29세)씨. 처음에는직장이 가깝고 저렴한 주거공간을 찾다가 빈집과 빈고를 알게 됐다. 그렇게 발디딘 곳을 아예 일터로 만들어버린 이유는 뭘까.

“이렇게 사는 게 행운인 것을 알게 됐죠. 빈집, 빈고를 통해 주변에 친구, 지인들이 생겼고, 무엇보다 사회 안에서 안전망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노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아요.(웃음)”

적은 활동비에 퇴직금을 털어 쓰고 있지만 지금의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좌인씨. 

“작년 보릿고개를 맞이해 사람도 줄면서 빈집이 4채에서 2채로 줄었어요. 사람수도 반으로 줄고. 우리집에는 불이 나기도 하고 사건사고가 있었어요.”

들고 나는 일이 자유롭고,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니 갈등도 많다. 매월 마을잔치에 매주 회의를 하면서 소통도 하고, 갈등도 푼다.

올해는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청주 홍동에 땅이 나와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최근에는 40여명이 청년들이 보험계도 만들었다. 매월 1만원씩을 내고 병원비의 50%를 보조한다. 청년들답게 소통은 텔레그램을 통해 한다. 보험금 납부와 지출, 병원, 의료정보도 교환한다.

 

김진이 기자/사진=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김진이 기자  kjini@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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