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서관 리드미 결혼이민자 기무라 스미코

▲ "동네사람들이 저를 ‘일본사람’이라는 눈으로 차별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시어머니에게서 정을 느끼면서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무라 스미코(53세)씨는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신자로 1988년 종교에서 정해준 남편과 결혼을 위해 고양시 일산에 오게 됐다. 처음 만난 남편이 자신을 많이 반겼다고 한다.

스미코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부모님도 반대하셨거든요. 하지만 제가 이 사람을 통해서 완성 될 수 있고 남편도 나를 통해서 성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통일교 내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한 번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양시에 처음왔던 1988년은 일산신도시가 생기기 전이다. 그는 “호수공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나무들이 작아 그늘도 없었다. 지금은 그 나무들이 자라 산책하기 좋아졌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홀로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다고 한다. 남편과는 영어로 조금은 대화 할 수 있었지만 시부모님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과는 언어 소통이 안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없어 오해가 생겼고 감정이 상하더라도 언어 때문에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어 풀지 못했다.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차이도 있었다. “제가 음식을 만들면 시부모님 입에 안 맞으셨는지 못 드셨어요. 그래서 저는 음식은 안 하고 청소 같은 일을 맡아서 했죠.”

“처음 결혼했을 때 저를 한국생활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시어머니었어요. 남편도 과묵한 편이고 한국사람 중에는 친한 친구도 없고 대화 할 사람이 없으니까 점점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었어요. 당시만 해도 동네사람들이 저를 ‘일본사람’이라는 눈으로 차별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시어머니에게서 정을 느끼면서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미코씨에게는 4명의 자녀들이 있다. 그녀는 여느 엄마들처럼 어릴 때부터 학원을 보내거나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들 사주는 문제집 한 권도 안 사줬다. 첫째 아이가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했을 때 학원을 보냈다. 남편이 다른 아이들은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보낸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주변에 일본사람도 없고 지금처럼 다문화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아이들 어릴 때 놀이터도 한 번 안 갔어요. 집에만 계속 있었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학교에 가면서 성격이 밝아졌어요.”

“대학교나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알아서 해야 했어요. 자유롭게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뚜렷하게 알게 됐죠.”

첫째는 건축에 관심이 많아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대학 건축과에 진학해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미코씨는 요즘 직장인이나 주부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고양시 노인정에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 생활을 한 지 27년이 된 그녀는 “한국사람들은 속마음을 잘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예요. 그래서 편해요. 시어머니하고 함께 5년을 살았는데 그때는 너무 말을 많이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저것 참견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따뜻한 사랑이었어요.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한국생활에 적응 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한국사람들이 말하는 ‘정’인 것을 이제는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