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km 이동하며 느낀 광활했던 우리역사의 자취


백두산 천지

중국 통해서만 올라 안타까워
"아이들 꼭 와 봐야"


광복 70주년 기념 고양신문 역사기행 ‘만주벌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을 찾아’ 답사단 26명은 지난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 동안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며 우리 역사의 무대를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첫날은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관동법원구지를 방문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안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시간의 벽을 넘어 마음에 와닿아 우리 일행은 가슴 먹먹함을 느꼈다.

둘째날부터 고구려 역사유적지 답사가 시작됐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도읍으로 삼았던 졸본에는 왕성이 남아있지 않지만 졸본 서쪽에는 피난성이었던 홀승골성(오녀산성)이 남아있다. 요양에는 고구려 산성 중 하나인 백암성이 남아있다. 백암성과 홀승골성은 고구려 특유의 축성방식인 옹성과 치성이 뚜렷하며 기단부분을 퇴물림방식으로 쌓고 돌틈은 흙을 소금으로 쪄서 채워넣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이렇듯 뚜렷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고구려의 성임을 인정하지 않고 백암성을 중국 연나라의 성이라 주장하며 입구에 ‘연주산성’이라는 표지석을 떡하니 세워놓았다.

만세를 부르다(오녀산성)

우리 역사의 중요한 지표이며 자부심인 광개토태왕비와 광개토태왕릉, 장수왕릉을 탐방하였는데 광개토태왕비는 옹색한 유리집 안에 갇혀있고, 태왕릉은 절반 이상이 무너져 있어 안타까웠다. 광개토태왕비 앞에서는 애국가를 불러도, 만세를 외쳐도, 태극기를 펼쳐드는 것도 안된다는 설명에 모두 분통을 터뜨렸다. 이 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의 기상은 과거에 묻은 채 한반도에 국한된 영토에서, 그것도 남북으로 잘린 채 살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통탄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3일째 되는 날에는 백두산에 올랐다. 셔틀버스를 타고 해발 2000m까지 올라간 후 다시 1442개 계단을 올라야 천지를 만날 수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도착하니 파란 천지가 어서 오라는 듯 반겨주었다. 이것이 바로 천지란 말인가. 벅차오르는 감동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지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사진에 담았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맑은 날 천지를 만난 것은 3대가 덕을 쌓은 결과라는 가이드의 말에 다함께 기뻐했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이곳 백두산을 중국을 통해서 올라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언젠가는 통일을 이루어 우리 땅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는 염원을 하나 마음에 담았다.


고구려 역사답사단은 5일 동안 2800㎞를 이동하며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을 둘러봤다. 답사를 통해 살아있는 역사를 목도한 일행은 ‘앞으로 역사에 관심을 갖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겠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꼭 와봐야 한다’. ‘내년에는 2기 답사단이 이곳을 꼭 와보기를 기대한다’는 등의 소감을 남겼다.

글 이명혜 시민기자 
사진 박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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