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박종천·고현희 부부

단아하다. 수채화가 고현희씨를 만난 첫 느낌은 그랬다. 남편 박종천씨는 오래된 참나무처럼 든든해보였다. 다른 듯 많이 닮은 이 부부.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나서 미대에 진학했고, 졸업 이후 늦깎이 화가로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쉼 없이 치러내고 있는 아내. 대기업 연구원으로 있다가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 남편. 두 사람의 만남부터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병마와 싸우느라 접었던 꿈을 뒤늦게 펼친 아내. 그의 옆엔 늘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이 있었다. 사진=이성오 기자

미술솜씨 좋은 동갑내기로 만나
‘58년 개띠’ 동갑내기 부부. 이들은 1978년 11월 5일, 지인이 다니는 교회의 연말행사 준비를 위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고현희씨는 미대 지망생이라 미술솜씨가 좋아서, 박종천씨는 미술지망생은 아니지만 평소 미술솜씨가 소문나서 ‘스카우트’됐다. 둘은 ‘남의 교회’ 연말 공연을 위해 무대장치, 홍보물 등을 함께 만들며 서로를 알아갔다.

“저는 미대 입시준비하며 화실에 다니고 있었는데 실기 시험용으로 그린 그림을 이 사람이 가져가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그림을 안주겠다는 거예요.”

박씨의 막무가내식 ‘들이대기’로 만남이 시작돼 박씨가 군대 있는 동안 면회도 가고, 편지도 보내면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갔다. 그렇게 8년을 연애했다.

두 달간 단식투쟁한 어머니
“여고 때도 미술특기장학생이었는데 제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엄마가 붓을 꺾어버리고 그림을 못 그리게 했어요.”

당시 고씨는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의 꿈도 접고, 40kg도 안되는 몸무게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박씨는 연세대 공대에 재학 중이었다. 여자친구의 병은 비밀에 부쳤지만 대학도 다니지 않고 몸도 약해보이는 며느릿감을 시어머니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머님이 두 달이나 단식투쟁을 하셨대요. 저한테는 그런 내색을 전혀 안하셨어요. 전화 통화를 하면 ‘얘, 너네는 친구지’, 그냥 그렇게만 말씀하셨어요. 단식투쟁하셨다는 얘기는 나중에 시누이를 통해 들었어요.”
아들의 고집에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는데, 환갑의 나이에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이 부부는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안고 있다.

시아버지 모시며 대학 다닌 며느리
혼자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기 위해 고양시로 이사 왔다. 그리고 아내는 대학에 진학했다. 아이 둘 딸린 ‘아줌마’가 대학생이 된 것이다.

“아버님 드실 거 준비해놓고 가방 메고 학생처럼 학교에 다녔죠.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대학에 출강하게 되자 아버님이 손님 오시면 ‘우리 며느리 교수야’ 하시며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무심한 듯 이렇게 말하지만 시아버지를 잘 봉양한 며느리다.

“제가 직장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는데 아내가 아버님을 몇 번이나 살렸어요.”

아내가 뇌졸중 전조증상을 빨리 알아차려 위험천만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단다. 남편은 아버지를 살려낸 아내가 참 고맙다. 아버지와 아침을 함께 먹겠다는 남편을 위해 아무리 밤늦게까지 작업을 했더라도 어김없이 아침상을 차려준 것도 고맙다.

그림 그리는 아내, 고구마 굽는 남편
고씨가 한국미술협회수채화부 분과위원장, 고양미술협회 부지부장, 고양여성작가회 회장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외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대화동에 공방이 있지만 이 부부에게는 가좌동에 부부만의 공간이 또 하나 있다. 가좌동 농장에 가면 한쪽에는 소나무숲, 한쪽에는 텃밭, 또 한쪽에는 아내의 작업실이 있다. 가좌동 작업실에서는 100호씩 되는 큰 화폭의 회화 작업을 한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남편은 겨울이면 난롯불을 피워 고구마를 굽고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을 일군다. 주중에는 회사일로 바쁘지만 토요일이면 걷기연맹에서 사람들과 함께 걷고, 일요일이면 텃밭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남편의 큰 즐거움이다.

작가로서 활동하는 아내 자랑스러워
“아내가 올해 초 고양시미협이 주는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어요. 1회 수상자예요.”  은근히 아내 자랑이다. ‘올해의 작가상’은 (사)한국미술협회 고양지부가 제정한 상으로 올해가 1회였다.

“남들은 전시회 한 번 할 때마다 많은 돈을 들여서 한다는데 이 사람은 별로 돈 들인 적도 없어요. 초대전의 기회가 오기도 하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전시회 한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구요.”

짬짬이 아내 자랑이 이어진다. 남편의 아내 사랑은 아주 특별한 이벤트에서도 엿보인다.

“26주년 결혼기념일에 저를 차에 태우고 파주의 명품관으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2시간 안에 260만원을 쓰라는 거예요.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결국 50만원도 안하는 가방 하나 샀어요.”

30주년에는 현금으로 300만원을 줬단다. 아내는 그 돈을 잘 모셔두고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이벤트 할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현금을 준 것뿐”이라는 말과 달리 해외 출장가면 아내에게 줄 물감과 붓을 꼭 사오는, 정이 넘치는 남편이다. 바쁜 일정과 해외 출장으로 피곤하다가도 아내의 ‘사랑해요’라는 문자에 숨었던 힘이 솟아나는 아내바라기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랑
“제 아내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바느질, 도예, 뜨개질 못하는 것이 없어요,”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공방에는 수채화 그림을 비롯해 도자기, 뜨개질, 바느질 등 모든 공예품이 모여 있다. 탁자 위에 흙으로 빚은 두상이 눈에 띈다. 남편의 솜씨란다. 흙을 조물조물하더니 뚝딱 사람의 얼굴 하나를 만들어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미술대회 나가면 상 하나씩은 받고 들어온 사람이에요”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 남편을 보니 머지않아 부부가 함께 그림 그리고 흙 빚는 날이 올 것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젊은 연인들처럼 사랑한다고 속살거리지는 않아도, 늦도록 작업하는 아내를 위해 맛있는 도시락을 ‘사다’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슬쩍 상에 내는 모습.  부부란 이런 모습이구나,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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