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3년, 탈북청년 이씨

 

▲ 탈북청년 이씨는 "날 반겨주는 곳이 내 집이다. 나에게 집은 내가 소유하는 건물이 아니다. 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나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20년을 산 이모(남, 대학생, 본인 요청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음)씨는 한국생활 3년차 탈북청년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여전히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끼리 오가는 대화 상당수가 외국어로 들린다. 이씨의 말을 듣는 사람들 반응도 그렇다. 지갑을 ‘돈지갑’이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다들 즐거워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씨 혼자 이해를 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소외감을 느낄 때도 적잖다.

“학교에 다니며 점수·학점이 안 나오는 것도 힘들지만 다들 웃고 있는데 웃지 않는 나를 봤을 때 내 존재감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이씨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먼저 하는 말이 있다.

“나 하나가 북한사람들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다 다르다. 탈북민 중에서도 장교 출신이 있고, 농사 짓던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북한사람이기 전에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탈북민들이 나오는 한 TV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거기에 나오는 북한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북한사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란다.

그의 청소년기 때 친구들 중에는 아버지 어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었고, 아무렇게나 막 사는 친구도 있었으며, 소토지(농사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씨 자신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공부는 비록 다른 친구들보다 못했지만 다른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잘해줘서 과외도 받고 할 때, 나는 옥수수, 석탄을 지고 다녔다. 주위의 몇몇 친구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고민도 했다.”

이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탈북한 아버지로부터 한국 소식을 전해들었다. 한국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과 아버지를 타향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 옆에는 아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술 한 잔 부어드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래서 남한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이씨는 어머니와 누나를 북한에 남겨두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한 후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이씨는 땅을 치며 울었다.

북한 집을 떠나 한국에 사는 이씨에게 ‘집’의 의미를 물었다. 이날 이씨의 이야기를 듣던 리드미 참가자들은 대부분 집은 편안한 곳,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답했다.

“강아지라도 반겨주는 곳이 내 집이다. 집은 내가 소유하는 건물이 아니다. 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집을 떠나는 선택. 모든 것을 건 한국행. 그만큼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도 컸다. “목숨을 걸고 왔으니 대접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도착한 한국에는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 이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까지 왔는데 못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난 이곳의 평범한 사람이다. 내 일이 잘되건 안되건 그것은 나의 책임이다. 꼭 잘된다는 보장이 없어도 하는 데까지 해보자 다짐했다. 성공이란 참 애매모호한 말이다. 어디까지가 성공인지 모르겠다.”

이씨는 자신의 통일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이 털어놨다.

“나의 꿈은 오늘처럼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쌓인 한국과 북한의 갈등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통일을 말하는가. 통일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바로 답이 안 나온다. 반대로 남한사람들은 바로 대답할 수 있겠는가. 어떤 남한사람은 북한의 자원을 말하며 통일의 경제효과를 말한다. 한국의 경제적 부흥을 위해 통일을 외친다면 그것은 통일이겠는가. 마음이 안 통하면 무엇이 통일인가. 북한사람 남한사람의 마음이 통해야 나머지가 따라 올 것이다. 당장 지금 남한에만 3만 명에 가까운 새태민들과 한국사람이 벽을 두고 있는데 어떻게 남북통일을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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