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찾은 나에 대한 연민

 

▲ 일산호수공원에서 발견한 자작나무가 계기가 돼 이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새롭게 시작한 김민 작가.
“호수공원에 자작나무 있는 거 아세요? 매일 아침 호수공원에서 운동하는데 어느 날 자작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순백의 자작나무를 보고 사람들이 숲의 귀족, 나무의 여왕이라고들 하잖아요. 처음엔 그 우아함에 매력을 느꼈지만 언젠가 보니 자작나무도 아픔이 많아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갑자기 자작나무가 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호수공원엔 아주 조금씩 자작나무가 군락을 지어 심어져 있다. 보물처럼 숨겨진 자작나무를 어느 순간 발견하고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중견 서양화가가 작품 활동에 몰두 중이다.

김민(49세, 주엽동) 작가는 그동안 한지로 하는 작품 활동에서 반경을 더 넓혀 ‘자작나무 시리즈’로 올 가을 여덟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자작나무 시리즈는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작품이 갖는 의미와 표현법이 점점 다양해 졌다.

“호수공원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로는 성이 안차 자작나무 숲으로 유명한 강원도 인제군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거기서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을 살짝 들춰보게 됐어요. 갈색 속살이 드러나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겉은 우아하고 도도한 자작나무도 우리네처럼 아픈 면들은 화려한 겉모습 속에 감춰져있구나’라는 것을요.”
이렇게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김 작가에게 좌절이 찾아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0.1%의 작가들만 그림값을 제대로 받고 있는 실정.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 작가지만 그림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름값이 아닌 작품으로만 평가 받고 싶었던 그는 유럽 아트페어에 그림을 선보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경제적 부담으로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명화 이야기’라는 강의를 제의 받고 몇 년간 강사일을 하면서 화가로서는 큰돈인 1000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바로 결정한 것이 유럽행이었다.

“그림을 싸들고 2개의 아트페어에 참가했는데 운 좋게 그림이 4점이나 팔렸어요. 유럽의 한 갤러리로부터 초청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초대전도 갖게 됐고요. 유럽에서는 한지 작품이 이국적이라고 느껴서인지 제 초기 작품들이 인기가 많았어요. 대신 국내에선 한지보단 자작나무 그림으로 앞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한 분야의 장르보다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김 작가는 요즘 핸드폰에 펜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다양한 생활 소품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소비자가 그림을 쉽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미술의 문턱이 낮아야 한다”며 “대량 생산된 가짜 그림보단 작가의 애정이 녹아있는 쉬운 그림에 소비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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