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테일러는 노년의 삶이 주목 받았다. 브라운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그는 1970년부터 양봉을 하며 지냈는데, 300개가 넘는 벌통에서 개꿀을 생산했고, 양봉에 관한 책도 여럿 펴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형이상학>을 번역한 엄정식 교수한테 들었다.

미국에 있을 때 직접 찾아가 만났던 인상을 이야기하며 무척 즐거워 했다. 근년에 그의 철학에세이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가 나온지라 읽어 보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흥미로웠다.

책깨나 읽은 사람들은 제목만 봐도 지은이가 덕을 이야기하고 있고, 결국 관조적 삶을 가장 높이 치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리라 짐작할 터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깨고 자부심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다. 이 말은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흔히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 지은이가 강조점을 둔 곳은 ‘정당한’ 이다. 그럼 무엇이 갖추어지면 정당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자신에게 평범하지 않은 어떤 덕목이나 뛰어난 면모”가 있으면 된다. 스스로 종합정리한 대목을 보면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탁월성, 그 사람만이 이룬 성취, 개인의 특별한 가치, 평범하지 않을 무엇뿐”이다. 

그가 이 책에서 힘주어 비판하는 두 사조가 있다. 하나는 세속문화가 퍼뜨린 물질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전통이다. 앞엣것은 우리에게 좋은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거라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뒤엣것은 좋은 삶이 남을 위한 삶이라 여기게 했다. 이 대목은 좀 섬세한 독해가 필요하다. 그가 보기에 선(good)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자비심이라 해석됐는데, 고대 그리스적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적 탁월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만의 독창적인 재능을 키워야 한다는 탁월성의 의미가 휘발되고 자비심의 의미가 표나게 강조된 것을 문제삼는다 보면 된다.

물질주의와 종교적 전통을 비판하여 자부심을 돋을새김한 것은 종국에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서다. 상당부분 아리스토텔레스와 뜻을 같이하고, 부분적으로 뜻을 달리하면서 그는 행복이란 “온전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라 하면서 “진정으로 지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만끽하리라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창조성이 예술창작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규칙이나 암기,또는 모방이 아닌” 창조적 지능이 발휘되면 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지행합일의 삶을 산 열매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교수를 하면서도 창조적 지능을 발휘해 행복했고, 은퇴한 다음 양봉을 하면서도 예의 창조적 지능을 펼쳐 세계적인 양봉가로 발돋움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의 행복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동의하는 축에 드는지라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솔직히 별로 그런 느낌을 받으며 살지 못했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삶의 전망이 불투명했던 청소년시절, 엄혹한 정치현실에 좌절했던 청년시절. 살아온 삶의 반 이상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나는 행복하다, 고 말할 수 있다. 앎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지혜로운 책을 읽으며 성찰하고 성장하며 성숙해졌으니 말이다. 리처드 테일러의 주장을 잣대로 삼아도 나는 분명히 행복하다. 책 읽고나서 하는 사회활동으로 물질적 보상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지적으로 창조적인 삶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지 않은가.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참칭’하며 살아오면서 늘 행복했다.

문제는 이 행복을 이웃과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이 갈수록 책 읽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가 상당히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감히 말하거니와, 두루 책을 같이 읽는 사회야말로 탁월한 개인을 키워내고, 그들의 연대로 우리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책 읽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를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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