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강성일·김원순 부부

식사동에서 사리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오리농장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부부가 있다. 강성일(58세), 김원순(54세) 부부가 인생의 최대 위기를 겪은 후 재기를 꿈꾸며 시작한 오리농장이다. 이 부부의 삶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인생’이다.

이 부부의 오리농장 경력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오리농장을 제법 크게 키우기도 했고, 오리고기 유통일도 하면서 돈도 모았었지만 ‘친구 잘못 만나’ 재산을 모두 잃었다. “생각하면 화나고 분하지만 지나간 일만 생각하고 앉아있으면 뭐하겠어요. 저는 오리 키워서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겁니다.”

강성일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청원오리 농장을 열어 6년째 오리를 키우고 있다.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배달하고, 농장에 딸린 식당에서는 아내, 어머니, 딸까지 가족이 함께 힘을 보태며 뛰다보니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저는 남 밑에서는 일을 못하겠어요. 내 일이어야 신나서 열심히 하게 돼요.”
평생 남의 일은 안 해봤다는 강성일씨. 인생이 평탄하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 ‘롤러코스터 인생’을 함께해온 강성일·김원순 부부. 이들에게 부부로 산다는 건 ‘서로 참아주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다. 사진=이성오 기자

부모반대로 식도 못하고 신접살림 시작
백령도 아가씨와 전남 신안 총각은 20살, 24살 꽃다운 나이에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었잖아요. 우리 엄마가 전라도 사위 절대로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애 둘 낳고도 친정을 못 갔었어요. 지금이요? 지금은 우리 사위같은 사람 없다고 하시죠.”

부모의 반대에 결혼식도 못한 채 김 양식 사업하러 신안까지 내려가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한겨울에 작업을 하면 집에 아이를 재워놓고 새벽에 수제비며 간식을 끓여서 들고 나갔어요. 집에서 작업장 가는 길에 무덤이 있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깜깜한 길을 앞만 보고 달렸어요. 춥기는 또 얼마나 춥던지.”

김원순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름에는 밭농사, 겨울에는 김 농사, 젊은 부부가 고생한 보람은 있어서 땅도 사고 돈도 모았다. 수작업으로 하다가 반자동기계를 들여놓고 김을 만들었다.
“그 당시에 반자동으로 김 만들었다 하면 성공한 거였어요.”

강씨는 사뭇 자랑스런 표정이다. 동네에 들어온 개척교회에 땅을 내어주기도 했다. 개척교회 목사는 결혼식 못한 부부들을 위해 합동결혼식을 준비했다. 강성일, 김원순 부부도 이때 결혼식을 하면서 드디어 친정부모에게 인정받게 된다.

고꾸라졌다 재기해 9년 전 빚 다 갚아
사업도 제법 잘 되고 아이들도 잘 자라고 양가 부모님께 결혼을 인정받고,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싶었다. 사업이 잘 되면서 조금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이 동업을 하자고 했다. 그 사람이 투자한 돈으로 자동기계를 들여왔다. 수작업으로 할 때보다 10배가 넘는 양을 생산했다. 그런데 일이 꼬이고 꼬여 망하게 됐다. 투자자는 김 판매대금과 투자금까지 다 회수해가고 이 부부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직원들이 동네 수퍼마켓이나 약국에 깔아놓은 외상값마저 이들에게 돌아왔다. 강씨는 시내 모처의 지하로 끌려가 돈 갚으라는 협박도 당했다. 

맨땅에서 다시 일어나 9년 만에 돈이 조금 모였다. 신안에 내려가 9년 전 빚을 갚았다. 떼인 돈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뜻밖에 찾아온 부부를 보며 깜짝 놀랐다.

“받아라, 안 받는다, 실랑이를 하고 억지로 돈을 쥐어주었어요. 그랬더니 차에 양파도 한 자루 실어주고 마늘도 실어주고 아휴, 그날 정말 서로 웃겼다니까요. 묵은 빚을 갚고 나니 십년 묵은 체증 내려가듯 시원했죠. 그날부터 발 뻗고 잤으니까요.”

사기당해 모두 날리고 남편 암 판정
농촌생활이 그리워 문산에서 오리농장을 시작하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고양시로 이사 와서 땅도 사고 공장임대업을 하면서 편히 사나보다 했다. 남편이 사기를 당해 땅도, 집도, 돈도 모두 잃었다. 또다시 아이들 고생시킬 생각에 천불이 났다. 상의 한 마디 없이 일을 저지른 남편이 너무 미워서 2년 동안 말도 안했다.

“집에 있으면 속에서 불이 솟아올라서 바쁘게 일하자 맘먹고 일만 했어요.”
아내는 그렇게 화를 삭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위암 조기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받았다. 아내에게는 말도 못하고 형제들에게 모여 밥 한 끼 먹자고 연락을 했다. 소문이 돌아서 아내 귀에 들어왔다. “아프다는데 어쩌겠어요, 돌봐줘야지.” 부부는 위기 앞에서 다시 마음을 합쳤다.

▲ 결혼한지 5년 되던 해 모처럼 찍은 가족사진.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절망의 끝에서 다시 오리농장을 시작하고 식당까지 하면서 이제는 빚도 다 갚았다. 8월 말이면 아들이 결혼하는 경사까지 앞두고 있다. 인터뷰 도중 딸이 옆에서 말했다.

“엄마, 나 초등학교 때 아빠가 엄마한테 금목걸이 걸어주면서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그랬었잖아.”
부부는 참아주는 거라는 김원순씨. 남편이 여러 번 사업 실패를 거쳤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참고 견뎠다고 한다. 몸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딱할 때도 많았다. 남편은 묵묵히 고생하며 참고 살아준 아내가 고맙다.

“내가 다시 꼭 목걸이 사줄 거야. 아직 인생이 끝난 건 아니잖아. 고생 끝 행복 시작, 다시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하겠어. 조금만 기다려줘.”

“이번엔 현금으로 줘!”

강성일, 김원순 부부를 보면서 부부란, 힘들어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다시 일어서도록 서로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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