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에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일본 방문은 처음이었다. 일본하면 먼저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임진왜란과 36년간의 일제강점기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큰 시련과 고통을 안겨준 나라이다. 오사카 성 옆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있었다. 신사 이름은 ‘풍국 신사’로 국가를 풍요롭게 한 신사라는 뜻인데, 일본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국가를 풍요롭게 한 사람으로 신사에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모양이었다.

신사 앞마당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칼 두 자루를 옆에 차고 당당히 서 있는 그 모습을 보자 울분도 아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자로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쥐어지면서 동상을 한참 응시했다.

고대국가 삼국시대에 일본은 언제나 수동적으로 우리의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특히 백제와의 관계에서는 두드러지게 더하여 형제국이라고 할 정도로 교류가 빈번한 사실은 역사 사료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런 일본이 조선시대에 들어서 참혹한 왜란을 일으켜 자그마치 7년 동안이나 우리의 강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우리 백성들을 도륙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에 더하여 조선말에는 아예 우리의 국권을 빼앗고 식민 통치를 하였으니 그들의 만행은 우리로서는 평생 씻지 못할 상처고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런 일들은 지나간 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잊혀진 것도 아니고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작금의 일본의 행태는 용서가 쉽게 되지 않는다. 아베 정부는 점점 더 우경화로 치닫고 있으며 군비를 늘려 군사대국화를 꾀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손에 총이 쥐어지면 한번 쏘아보고 싶은 것이 누구나의 마음이다. 가뜩이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이 커져가는 일본이 군사력까지 겸비한다면 또다시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피해 의식에 젖어 감정적으로만 일본을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침략 전쟁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는지를 각성시켜야 할 것이다.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우리의 사과와 배상요구에 대해서도 일본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아직까지 피해 당사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그날을 증언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눈 감고 귀 막고 양심까지 말살한 채 외면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일부 자국 내의 양심 있는 지식인이나 사회단체까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여도 아베 정부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두 나라 간의 정상적인 외교와 선린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신뢰를 상실한 외교와 선린 관계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일도 그러하거니와 국가와 국가 간에 있어서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피해 당사국이나 당사자들에게 사과하여야 한다. 사과라는 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야 말로 용기요, 과단성이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한다고 해서 체면이 깎일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 용기와 진정성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일본은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피해국에 정중한 사과와 그에 따른 배상을 하였다. 그런 독일은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선진국가요, 모범국가가 되었고 그런 독일에 세계인은 우호적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보내며 느껴지는 감회는 남다르다. 우리 민족에게 가한 일제의 만행은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이라는 작품을 보면 일제가 얼마나 우리 민족을 착취하고 고통을 주었는지 적나라하게 그려놓고 있다. 또한 그런 악랄한 일제에 저항하여 목숨 바쳐 투쟁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면면도 그려놓았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에 반하여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철저하게 같은 동족을 해치는 자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 중에는 친일 매국자나 후손들이 많이 속하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광복이 되었으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기득권 세력에 안주하여 건재 하는 한, 참다운 의미의 광복이 아니라 미완의 광복절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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