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연제헌·김지영 부부

“우리 두 사람은 맑고 투명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화제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름하여 ‘녹색결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 4층 대합실에서 열린 결혼식이었다. 재생종이로 만든 청첩장, 유기농 제철 재료로 만든 피로연 음식들, 하객들은 ‘재활용’ 결혼선물 목록을 선물나무에 매달았고, 집에 갈 때 야생초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대합실을 지나는 행인들도 결혼식에 함께하고 음식을 함께 나눴다. 이후 결혼식 비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으로 치르자는 녹색결혼을 하는 부부가 잇달아 나오기도 했다.

▲ 12년 전, 녹색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연제헌·김지영 부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녹색생활을 함께 실천하는 ‘동지’로 산다. 사진=이성오 기자

생각이 같은 사람과 살아야
결혼식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이 화제의 부부는 연제헌(42세), 김지영(41세)씨. 고양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웃이다.

두 사람은 1992년 대학 1학년 때 YMCA 대학 대표로 활동하면서 처음 만났다. 서울대 생물학과 92학번인 연씨와 이화여대 체육학과 92학번인 김씨는 사회 환경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더불어 성장했다. 2년을 사귀고 4년을 헤어지고 다시 만나 2년을 사귀고 결혼했다.

“헤어져 있는 동안, 어떤 사람과 함께 사는 데 중요한 것은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엠네스티(국제인권사면단체) 활동도 계속하려면 주말에 나가야하는데 아내가 그런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렵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거를 다 이해해줄 것 같았어요.”(남편)
“뭐야? 그것 때문에 결혼했던 거야? 나는 좀 다른데.”(아내)

아내는 남편이 정신장애 아동과 10년간 꾸준히 멘토-멘티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면서 참 좋은 사람이구나하고 존경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남편 제안 아내기획, ‘녹색결혼’
당시 녹색가게운동 사무국 간사로 활동하던 김씨에게 남편이 먼저 녹색결혼을 제안했다. 결혼식의 세부 계획은 아내가 맡았다. ‘녹색결혼 프로젝트’. 10명의 친구들이 기획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한 친구는 당일 즉석 김밥을 말았고, 한 친구는 지구의 날(4월22일) 행사에서 나눠주고 남은 야생화 화분을 힘들게 옮겨와서 하객들에게 선물로 제공했다.

“처음에는 부암동에 있는 고택을 빌렸어요. 그런데 어른들이 다 반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교통이 편한 녹사평역으로 정했어요.”(아내)
“어른들의 고정화된 결혼식 문화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많이 반대하셨죠.”(남편)
“그래도 매스컴을 타니까 재미있어 하시고 기분도 풀리셨어요.”(아내)

선물나무에 기증약속한 물품은 받았는지 궁금했다.
“태안으로 귀농하신 농부님이 쌀도 보내주시고, 다리미 주신 분도 계시고, 다들 주셨죠. 덕분에 살림살이 많이 장만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녹사평역 옆 공원에 향나무를 심은 두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떠나 신혼여행지인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릴 즈음 방송에서 이들의 결혼식이 소개되었고 예약해 두었던 숙소 주인이 알아보기도 했다. 신혼여행 기간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고 작정했기 때문에 버스도 타고 트럭도 타면서 신혼여행을 마쳤다.

자가용은 지난해부터 이용
2015년 지금, 남편 연제헌씨는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를 맡아 활발하게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아내 김지영씨도 두 딸을 데리고 이웃 주부들과 품앗이 교육, 환경운동, 생태교육 등 지역활동으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다니며 활동하느라 아이 한 명당 유모차 3대씩을 ‘해먹으면서’ 활동했다는데 작년부터 자가용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자가용 이용이 마음에 걸려서 고양시 안에서도 카셰어링(한 대의 자동차를 시간 단위로 여러 사람이 나눠쓰는 것)을 해보면 좋겠다고 고민하고 있다.

부부에게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4개월간 영국 나들이다. 2007년 남편의 회사일로 4개월 정도 영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김씨는 그 짧은 기간에도 옥스팜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영국의 공정무역, 엠네스티활동 등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이들이 머물던 맨체스터시는 공정무역마을로 지정된 곳인데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동안 해왔던 사회활동을 더 깊이 고민하고 벤치마킹하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이가 없어서 두 사람은 자유롭게 주말이나 연휴마다 유럽을 여행했다.

지금도 그때의 추억담에 서로의 기억을 보태는 게 두 부부는 즐겁다.

녹색생활 실천하는 녹색가정
인권, 공동체, 환경, 평화…, 이 부부가 함께 관심 갖는 분야들이다. 연애시절부터 함께 책읽고 대화하고, 영화보고 대화하고,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같은 곳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관점이 같으니 부부는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동지인 셈이다. 제는 아이들과 함께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참여적 가정이다.

이 부부는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우선 두 딸을 키우면서 새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옷은 물려입거나 아름다운가게를 이용한다. 전기요금은 한 달에 1만4000원 정도. 플러그 뽑기를 실천하고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를 쓰지 않는다. 공동텃밭을 가꾸고 생태텃밭 교사로도 활동하며 아이들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엠네스티 활동의 일환으로 양심수 처우개선을 위한 ‘편지쓰기마라톤’을 고양지역에서는 이 부부가 주도해서 하고 있다. 매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펼치는 세계적인 규모의 탄원캠페인이다. 

연제헌씨는 인권문제가 해결돼서 사형제가 폐지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는 세상, 의료사회협동조합이 활성화돼 서로 건강을 챙기는 사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아내 김지영씨는 아이들이 일자리·공기·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돈을 많이 안 벌어도 먹고사는 걱정없는 사회, 경쟁보다 협력하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회를 꿈꾼다.

부부가 함께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더욱 아름다운 이 부부의 삶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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