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문제 해결 앞장 서는 인권도시 위트레흐트
난민보호소, 아동권리보호 중점
인권의 보편적가치 공감 시민 늘어
북서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면 인권을 시민의 일상생활과 거의 관련이 없는 법적 범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 수준에서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수많은 계획들이 있지만 보통 인권보다는 사회통합, 시민권, 참여, 공동체 등의 개념으로 표현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권문제는 지방정부보다는 국가나 국제기관의 역할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인권도시 국제교류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10개 도시들이 지역 차원의 인권문제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인권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도 이중 한 곳이다. 대학의 도시,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위트레흐트 조약’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국제도시라는 조건을 바탕으로 도시정책, 문화에 인권을 결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위트레흐트 시가 인권도시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주요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종간 평화적 갈등조정 등 현안 떠올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주의 주도인 위트레흐트(Utrecht)시. 네덜란드 중심부에 위치한 교통요지인 이 도시는 최근 20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해 현재 33만명의 인구가 있다. 위트레흐트시는 다문화국가인 네덜란드 내에서도 외국인들이 매우 많은 편에 속하는 국제도시로서 도시민의 33%가 부모 중 1명 이상이 외국 태생이며 서구 출신(10%)뿐만 아니라 터키, 모로코(8%)출신도 많이 살고 있다. 향후 도시발전속도에 따라 인종구성이 훨씬 더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때문에 인종 간의 평화적 갈등조정, 차별금지 등 각종 인권현안은 위트레흐트 도시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과 인권연합 창설
위트레흐트시는 인권도시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수립을 위해 10가지 정책분야에 대한 인권평가를 실시했다. 평가항목은 동성애 해방정책, 난민정책, 빈곤 정책과 사생활 침해에 중점을 둔 CCTV 모니터링,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조항의 접근성과 가정폭력 예방정책,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한스사컬스씨는 “인권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의제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했다”며 “이러한 평가를 통해 위트레흐트의 올바른 혹은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3개월에 한 번씩 인권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도시의 다양한 인권현안 가운데 중요한 의제들을 시에 전달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어린이들의 인권(Children’s rights at school)’이나 학생들과 난민 간의 협력, ‘역 친구 제도(reversed buddy system)-교육수준이 높은 난민학생이 지역학생을 돕거나 또는 그 반대로 지역학생들이 난민학생을 돕는 제도’같은 지역인권 정책들이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위트레흐트시는 지방정부 차원의 인권 모니터링과 정책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난민보호소 정책과 아동권리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민 95%, 인권보호 기여 지지
네덜란드에는 현재 위트레흐트시 외에는 지방 인권의 이행에 공들이는 도시가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위트레흐트시가 인권도시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조건이 있었다.
위트레흐트의 중요 정치인 중 일부가 인권에 관련된 업무 및 연구를 해왔던 배경이 있었으며 시 차원의 소규모 설문조사(3000명 대상) 결과 시민의 95%가 지방정부가 인권보호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약 20%의 시민들은 지역단위의 인권보호 활동에 기여하는 자원봉사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인권담론이 위트레흐트의 정책전통에 적합하며 도시 ‘DNA’에 어울린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었다. 2012년 위트레흐트시에 네덜란드 인권연구소가 개설된 것도 인권도시추진에 탄력을 가져왔다.
지역인권 강화를 위한 위트레흐트의 노력은 단순히 정책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9년 위트레흐트시는 18세 미만의 불법 체류자들이나 망명절차에서 모든 구제수단을 소진해버린 난민들에게 보호소를 제공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적이 있다. 한스 사컬스씨는 “당시 우파정권이었던 중앙정부는 난민문제에 소극적이었고 그들이 보호소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보호소를 금지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것이며 도시법규에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문제는 결국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까지 갔으며 위트레흐트시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2014년에도 위트레흐트는 난민보호소의 식사문제, 잠자리문제와 관련해 중앙정부와 법정분쟁을 벌여 승소하는 등 지역차원의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권의 가치에 동의하는 시민 늘어
“유럽에서는 주로 인권문제를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제3세계의 문제로 생각하고 일종의 시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위트레흐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권도시를 5년간 추진하면서 시민들도 이제 인권이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우리주변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위트레흐트시는 향후 과제로 인권도시 간의 국제적 협력강화와 연구 및 교육의 확산, 인권 거버넌스의 확대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한스 사컬스씨는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제도에 중점을 두는 방식은 일방적이며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인권이 공식적인 체제가 아닌 비공식적인 문화나 사회적 영역과 혼합되어야 한다. 인권도시는 정부가 아닌 거버넌스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