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시민사회와 함께 만드는 인권도시 위트레흐트

위트레흐트조약 300년 기념행사 계기로 뭉쳐
‘인권카페’통해 주제, 정책아이디어 토론
‘평화로운 학교’, 무료 수도시설 설치 등 정책반영
타국인도 모국어 사용하는 ‘다중언어도시’ 지향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삶 보장하는데서 출발”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제도에 중점을 두는 방식은 일방적이며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고전적인 형태의 인권은 비공식적인 영감이나 문화, 사회적으로 채택된 상상과 열정으로 여겨지는 다른 접근방식과 혼합되어야 합니다”

위트레흐트 인권도시 추진을 담당하는 한스 사컬스 국제협력과장은 인권도시의 향후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로 위트레흐트시는 인권이라는 주제를 제도적 영역을 넘어 사회·문화적 영역까지 확산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공청회, 축제 및 행사(대표적으로 ‘지역 인권 주간’)를 조직해 시민사회가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이번 기획에서는 위트레흐트시와 시민사회단체, 지역대학인 위트레흐트 대학과의 상호협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위트레흐트 운하 전경.

 

시민단체들, 인권 지역화 추진에 공감
위트레흐트시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는 바로 1713년 체결된 위트레흐트 조약이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유럽 각국이 모여 맺은 이 조약은 최초의 국제협약이자 전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평화를 모색했던 첫 시도이기도 하다. 때문에 위트레흐트 조약이라는 역사적 전통은 이곳 시민들의 자부심이자 큰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위트레흐트시는 2013년 위트레흐트 조약 300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위트레흐트 조약 300년(Treaty of Utrecht 300year)’이라는 명칭의 이 프로젝트에서는 ‘위트레흐트 조약 재단’의 주도하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추진위를 꾸려 지역차원의 문화프로그램을 기획·진행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활동가 프리조(Friso Wiersum)씨는 “같이 참여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평화·인권 주제를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멀리 떨어져있다고 느꼈던 인권문제가 우리에게 가까운 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것이 인권의 지역화를 추진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난민·소수자 등 다양한 인권단체 연합
‘위트레흐트 조약 300년’기획을 통해 한자리에 모였던 위트레흐트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이라는 주제로 한번 뭉쳐보자는 의견에 뜻을 같이했다. 최초제안은 난민, 소수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다루는 ‘파로스(Pharos)’라는 단체에 의해 제기됐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끼리 중복된 활동을 막고 소통을 나누고 시민사회의 힘도 키워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제안은 지역사회의 공감을 얻어 ‘인권연합(Utrecht human rights coalition)’으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난민, 아동, 성소수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인권단체들이 참여했다.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 지역인권단체들은 2013년 9월 20일 참가자들이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인권카페’를 ‘House of Eurotopia’에서 처음으로 열었다. 시민단체와 인권연구자, 열성시민들이 참석해 10개의 테이블을 구성하고 함께 다뤘으면 하는 인권주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위트레흐트시도 적극적이었다. 위트레흐트 시장이 직접 참여해 재정지원을 약속했으며 행사를 통해 제안되는 정책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사도 나타냈다.

▲ 2013년 위트레흐트에서 첫 ‘인권카페’가 진행되던 모습.

위트레흐트 인권연합은 3개월에 한 번씩 ‘인권카페’를 열고 각자 다루는 인권주제들과 예산지원이 필요한 정책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한다. 활동가별로 단상위에 올라가 5~30분 정도 자신의 주장을 전하는 공개스피치 방식이다.

 

참가범위는 지역활동가들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프리조씨는 “위트레흐트시에는 외국 인권단체 활동가를 초청해 3개월간 머무르게 하는 ‘셸터 시티(Shelter City)’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곳에 온 짐바부 출신 활동가가 초청강연을 진행한 적도 있다”며 “시 정부에서는 이를 국제교류활동의 일환으로 바라보고 지원해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인권단체, 시정부 양방 제안 활발
인권카페에서는 활동가들이 제안한 인권주제 가운데 참가자들의 평가가 높은 내용들을 뽑아 시에 정책으로 제안한다. 그렇게 시민사회의 제안으로 위트레흐트시에 반영된 정책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평화로운 학교’라는 프로그램이다.

▲ 위트레흐트 내 대안예술공간인 Casco에서 디렉터로 활동중인 최빛나씨.

한국에 도입된 ‘회복적 생활교육’과 유사한 이 정책은 학교폭력문제를 담당교사가 아닌 훈련된 학생중재자가 학교를 찾아가 해결하는 방식이다. 학생 간에 발생한 갈등을 교사의 권위에 기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일종의 ‘갈등조정’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학교 안에서만이 아니라 거리에서도 갈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학교 담장 밖으로 확장시키려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위트레흐트시는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내 몇 군데에 무료 수돗가를 설치하고 식당에서는 누구나 무료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플라스틱 병의 수요를 최소화하는 환경적 측면과 함께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식수에 대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는 인권적 측면까지 반영하고 있다.

역으로 위트레흐트시 정부의 제안에 시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중언어도시(Multi Language Of Utrecht)’를 지향하는 위트레흐트는 대다수 시민들이 쓰는 네덜란드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온 시민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차별이 없도록 배려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스 사컬스(Hans Sakkers) 위트레흐트 국제협력과장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도 차별해소의 일환이며 인권의 중요한 요소”라며 “영어, 네덜란드어 외 다른 언어를 쓰면 무시당하는 분위기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언어축제와 같은 국제교류행사도 마련할 계획이다.

 

누구나 최소권리 보장 받아야
대학도시로도 유명한 위트레흐트시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위트레흐트 대학이 있다. 1636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그동안 판트호프, 엇호프트 등 1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약 3만 명의 학생이 등록중인 세계수준의 대학이다.

 

▲ SIM이 위치한 위트레흐트 대학 건물.



이 대학에는 인권연구의 오랜전통을 가지고 있는 SIM(Netherlands Institute of Human Rights)이라는 인권연구소가 있다. 본래 1981년 네덜란드 인권단체들에 대한 연구지원기관으로 출범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트레흐트 대학에 통합됐으며 현재 30명의 박사과정생들이 소속되어 있다. 최근에는 위트레흐트시와 함께 지역인권모니터링 및 인권정책시행전략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국제인권법을 연구하고 있는 김혜민 박사는 “인권의 첫 번째는 차별하지말자는 것인데 이 점에 있어 위트레흐트는 타 도시에 비해 훨씬 인권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 자격이 되면 네덜란드 국적이 아니더라도 보조금이 나오며 외국인에게도 보육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국적이 기준이 아니라 도시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위트레흐트 시의 인권도시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도시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봐도 타 도시에 비해 훨씬 관용적이라는 게 김혜민 박사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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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해킹 해비타트’ 활동가 프리조 비에르숨씨

인권뿐만 아니라 ‘인본적 의무’도 필요해

 

 

예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프리조 비에르숨<사진>씨는 2013년 위트레흐트 조약 300년 기념 추진위에서 문화예술프로그램 기획을 맡았으며 이를 계기로 위트레흐트 인권연합 결성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프리조씨는 “인권연합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내가 역할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이 직간접적으로 인권에 관련되어 있었고 지역인권운동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참여이유를 밝혔다. 지난 10년간 중앙정부의 NGO지원예산이 줄어들면서 단체 간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프리조씨가 활동하는 시민단체 ‘해킹 해비타트(Hacking Habitat)’는 정보사회가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나타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다룬다.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기업은 개인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일종의 ‘원격제어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이에 맞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구성할 수 있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시회 등 예술 활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인식제고를 통해 구조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프리조씨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밖에도 매년 5월 5일 ‘나치해방의 날’을 기념해 4가지 자유(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필요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주제로 하는 강연을 개최하고 있으며 내년 2월에는 80여 명의 국제 예술가들이 참여해 주거권, 부채문제 등을 다루는 아트 메니페션(양방향 소통)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프리조씨는 2012년 당시 인천에서 진행된 ‘스페이스 빔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2주간 한국에 머문 적이 있다. 그는 “그 전까지는 주로 미국, 유럽에서 국제인권문제에 대해 배웠다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지역이슈가 세계인권문제와 어떻게 연관을 맺는지 새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갈수록 인적구성이 다양해지는 위트레흐트시를 어떻게 차별 없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인권활동가로서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우리에게는 인권뿐만 아니라 인본적 의무도 필요하다. 부유한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것은 일종의 우연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3세계의 인권문제에 대한 책임을 항상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가난하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활동해야할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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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아말’ 활동가 마조카, 사미아씨

이주민 차별문제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

 

 

시민단체 아말(Amal)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조카(45세), 사미아(23세)씨<사진 왼족부터>는 모두 모로코 출신 네덜란드인으로서 위트레흐트 내 모로코 주민들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다. 15년 전 출범한 아말은 모로코인이 인구의 60% 이상인 위트레흐트 내 Kanalen Eiland라는 구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주민들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상담·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마조카씨는 “세대갈등, 알코올과 마약중독, 도박문제,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이들에 대해 교육, 훈련, 지원하는 활동을 담당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아말은 위트레흐트시와 크게 3가지 사업을 협력하고 있다. 먼저 ‘Tussen In(사이에서)’라는 활동으로 이주민 가정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후원단체와 지원받아야 하는 가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마조카씨는 “모로코 가정들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네덜란드 기관이나 단체들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가교역할을 맡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즉각 지원이 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위트레흐트시의 제안으로 모로코 젊은 학생들의 사회 불만들을 조사·탐구하는데 협력하고 있다. “시 정부는 젊은 학생들이 네덜란드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자칫 IS와 같은 폭력적인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해 이같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마조카씨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모로코 출신 아동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아동과 그 가정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과 예방방안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현재 유럽사회는 작년 샤를리엡도 사건(무슬림을 풍자한 잡지사에 총격을 가한 사건) 이후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반감이 심각한 상황이다. 위트레흐트시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도시 내에 이주민 인권문제들은 존재한다고 마조카씨는 말한다. 위트레흐트시의 법, 규정은 모로코 이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며 서류를 하나 처리하려고 해도 자국민에 비해 훨씬 힘이 드는 게 현실이다.

마조카씨는 “미디어에서 모로코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양산하는 부분도 있고 무슬림에 대한 편견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위트레흐트시 정부는 나름대로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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