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생이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같은 반 여자친구(11)와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어린이의 일기장에는 “내가 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어른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지난 8일 오전 9시쯤 충남 천안시 모 아파트에 사는 정모(11)군이 집안 베란다 가스배관에 끈으로 목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정군의 아버지(40·공무원)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아파트는 문이 안으로 잠긴 채 정군 혼자 있었고, 맞벌이하는 정군의 부모는 직장에서 야근을 하고 이날 아침 귀가한 상태였다.』

지난 11일 한 일간지 사회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린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부모의 지나친 교육욕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죽했으면 아이를 학원으로 돌렸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일었다. 물론 부모에게 아이에게 좀 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테지만 내 주위에도 이런 부모들이 허다하다.

다행히도 주변에 부모님이나 일가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더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들을 빈집에 방치하는 아동학대자가 되거나 학원을 돌려 시간을 메우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나쁜 부모가 되고 있다. 취학전 아이들의 경우는 그래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운영하기 때문에 맡길 곳이 있지만 일단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마음놓고 맡길 곳이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에서 내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아이의 안전을 보장받거나 아동학대자가 되거나 아이들 죽음으로 내모는 나쁜 부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고양시의회에서는 ‘고양시 보육사업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하 보육조례)’이 통과됐다. 조례에는 ‘고양시 각 동마다 시립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영아·장애아 전담시설, 야간보육시설, 방과후 보육시설 등 특수보육시설 설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지원 보육시설에 설치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양여성민우회는 고양시에 보육조례가 생긴 것만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지난 4월 경기도에서 조사한 여성정책 욕구조사에 따르면 고양시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정책요구는 ‘방과후 아동보육’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고양시 인구분포에 비추어도 이러한 욕구가 결코 소수의 요구가 아님을 누누히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육조례의 내용에 방과후 아동보육 문제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됐다.

물론 조례가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음과 조례가 정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고양시민들의 생존적 요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육조례를 제정하면서 시와 의회에서 보여준 모습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조금만 더 고양시민들의 아픈 현실에 눈을 돌렸더라면, 조금만 더 고양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방치되어 상처를 입고, 시간을 메우기 위해 학원을 전전하다 그 무게에 눌려 죽음으로 항변해야만 하는가?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노령인구는 늘어가고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영유아 및 아동 보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곧 커다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결코 맞벌이부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고양시와 의회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재원은 한정되어 있고 써야할 곳은 많고 새롭게 시설을 만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지만 수혜자는 작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용서할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이가 학교 끝나고 버스타고 이동해야만 하는 불안한 좋은 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다. 우리집 주변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볼품없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보육시설이다.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새로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가까운 동사무소나 공공시설의 한 공간을 할애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는 방안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

전체적으로 일괄적으로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지역에서 먼저 사례를 만들고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해결해 간다면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 믿는다. 고양여성민우회도 함께 힘을 보탤 충분한 의지가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못한다고 하지 말고 우리 고양시가 앞장서서 모범을 만들어 보자.

<본 칼럼은 고양여성 민우회의 요청에 따라 여성 예산과 관련 2회로 연재됐으며 단체명의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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