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되나?

국내 11개 슬로시티

주문 후 1분이 채 안 돼 나오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유럽에 상륙하자 그 저항으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 이어서 음식 뿐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를 느리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운동이 시작된다. 바로 슬로시티 운동이다.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 소도시(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됐다. 현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30개국 200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가입돼 있으며 국내에도 11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일부 지자체들은 슬로시티 가입을 위해 힘쓰고 있다. 관광객 유치에 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 또한 예외일 순 없다. 6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슬로시티란 무엇이고 이것이 관광한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모색해 본다.

➀ 슬로시티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되나?
➁ 경북 청송군 부동·파천면 국제 슬로시티를 찾아서
➂ 전남 완도군 청산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➃ 이탈리아 국제슬로시티 사무국을 찾아서
➄ 국제슬로시티 발상지 오르비에토를 찾아서
➅ 관광한류와 슬로시티,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사람은 왜 살고, 왜 일하나’에 대한 대답
2007년 국내 첫 가입, 11개 슬로시티 인증
이탈리아에서 시작, 30개국 200개 도시 확산


슬로시티 어떻게 시작됐나?

‘유유자적한 도시이자 풍요로운 마을’이란 뜻의 슬로시티의 본고장은 이탈리아다. 슬로시티는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을 말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전통문화 보존, 지역공동체 삶 등을 추구하자는 정신이 섞여 있다.
1980년대 후반 패스트푸드에 맞서 슬로푸드 운동이 탄생했고, 거기서 확대된 개념으로 슬로시티 운동이 태동했다. 이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의 시장인 ‘파울로 사투르니니’를 비롯한 4개의 작은 도시 시장들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유럽 곳곳에 확산됐고 현재는 대한민국 11개 지역을 포함해 전 세계 200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슬로시티의 개념은 어렵지 않다. ‘느리게 먹고 느리게 살자’는 운동이 곧 슬로시티의 출발이다. 슬로시티 창안자인 파울로 사투르니니는 “우리 지역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그것을 살려 나가면 느리게 살아도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느림’의 핵심에는 지역화·차별과·브랜드의 고급화에 있다”면서 “대량생산에 맞서 소도시가 가지는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살려 나가는 것이 핵심” 이라고 말한다.
슬로시티 발상지인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인구 1만4000명)에서도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초기엔 주민들의 반발이 강했다. 당장의 생활이 불편하고, 현대적 편리함을 추구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재는 지구촌 소도시 어디든 이 도시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 도시가 자랑하는 3가지는 첫째 시민 고용율 100퍼센트, 둘째 소득 수준이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점, 셋째 범죄율 최저의 행복공동체라는 점이다.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의 느림 숭배

그동안 우리나라는 빠름이 주는 편리함을 손에 넣기 위해 느림의 즐거움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게으른 산책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아무것도 안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지난 50년간 진행된 산업화로 우리나라에선 다분히 빠름이 미덕이 됐고, 여유와 게으름은 부덕이 됐다. 하지만 요즘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나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이 느림을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왜 살고, 왜 바쁘게 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없자 이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자’는 슬로라이프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슬로라이프는 슬로푸드(음식), 슬로패션(옷), 슬로홈(주택) 등 의식주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슬로시티가 인증되는 자격요건은 무엇인가? 

<표. 국제슬로시티 가입을 위한 자격 요건>

현재 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여야 한다.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을 실시해야 하며,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소비해야 한다. 또한 전통음식과 전통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시티’라고 하지만 꼭 도시가 아니어도 된다. 유럽의 소도시 기준에서 5만이란 인구가 가입조건이 됐지만 한국에선 도시나 군의 동과 면단위가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평가항목은 생각보다 많다. 가입하려면 7개 분야 71개 세부 평가항목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표 참고>. 구체적 사항으로 친환경적 에너지 사용, 자전거 도로의 길이 등을 포함한 자전거의 생활화, 생태농업과 로컬푸드의 활용,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포함돼 있다.
슬로시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실사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국내에선 한국슬로시티본부(2005년 창립)가 국내 실사평가를 대신하고 그 평가사항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 넘겨 인증을 받고 있다. 한 번 인증된 슬로시티는 재인증 심사를 갖는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재인증 심사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 5년이 된 곳을 대상으로 1년에 2차례씩 이뤄진다. 국내 슬로시티 중 재인증에 실패한 곳은 2013년 전남 장흥이 유일하다.

 

국제 슬로시티 실사단이 지난 2012년 충북 제천을 방문한 모습.


한국과 외국의 슬로시티 현황
<표. 국내 슬로시티 가입 현황>

2010년 세계 20개국 135곳이던 슬로시티는 5년 만에 회원 도시가 급속도로 늘어 2015년 6월 기준 30개국 200개 도시가 됐다. 우리나라에선 전남 4개 군(2007년 가입)을 시작으로, 2012년 마지막으로 가입한 영월과 제천까지 포함 11개 지역이 국내 슬로시티로 가입돼 있다<표 참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4개군(완도군·담양군·신안군·장흥군)은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가 지정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장흥군이 슬로시티 재인증에 실패했다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슬로시티의 자격요건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지자체가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반대로 청송 슬로시티는 올해 6월 국제슬로시티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상은 지난해 국제 총회에서 제정된 상으로 국제슬로시티 200개 도시 중 8개 도시만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청송군은 지역주민들에게 체계적인 주민교육을 꾸준히 실시했으며, 그로 인한 슬로시티 운동에 대한 인식확산을 통해 주민역량을 강화한 기여로 수상하게 됐다.
슬로시티는 현재(올해 6월 기준) 본고장인 이탈리아가 77개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폴란드(20개), 독일(12)이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이 바로 한국(11개)이다. 도시 숫자로는 세계 4위. 이웃나라 중국(3개)과 일본(1개)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다. 슬로시티에 대한 국내 지자체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인 셈.

국제 실사단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슬로시티의 콘텐츠와 관광 어떻게 연결되나?

‘슬로시티를 만들면 당장 어떤 이득이 오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방문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국내 지자체가 슬로시티에 관심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슬로시티의 첫 번째 수해자는 지자체나 관광객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돼야 방문객의 결핍된 마음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시티의 이런 정신을 기본으로 슬로시티가 관광객 유치에 어떤 도움이 되고 슬로시티가 추구하는 관광은 무엇인지 각 지자체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슬로시티 관광은 조용히 보고, 느끼고, 좀 느리게 자연과 조화하는 사색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슬로관광을 할 때는 여행을 통해 많이 느끼면 더욱 좋다. 그곳에서의 관광객은 그냥 보고 지나치는 관찰자가 아니라 체험자에 가깝다. 그래서 슬로관광은 장기 체류 형식이어야 하고, 슬로시티엔 그런 콘텐츠와 숙박시설이 필요하다.
슬로시티 영향으로 유럽에선 슬로시티와 상관없는 지역에서도 이미 한 지역에 장기 체류하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7일 동안 7개 이상의 도시를 관광하는 우리나라의 패키지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한곳에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선 매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슬로시티에서 생산된 상품(와인, 공예품 등)과 문화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면 그 감성에 소비자는 반응한다. 역사와 전통, 자연과 전설, 장인들의 공간과 주민의 삶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창의성과 콘텐츠를 통해 재발견된 상품들은 그 지역만의 소량 생산품으로 브랜드 고급화에 적합하다. 걷기 또한 슬로시티와 떼놓을 수 없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일었던 각 지자체의 둘레길과 탐방로 정비사업 붐은 사실 슬로시티 정신과 부합한다. 각 지점마다 걷기 여행객을 위한 콘텐츠가 있다면 슬로시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길 또한 스토리텔링으로 엮을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인터뷰 - 한국슬로시티본부 손대현 이사장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

한국슬로시티본부(한슬본)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한슬본은 2005년 11월 한국슬로시티추진위원회로 시작해 2008년 4월부터 사단법인 한국슬로시티본부로 운영되고 있는 비영리 단체다.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의 한국지부로서 아시아 슬로시티 운동의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슬본의 업무는 크게 5가지다. ▲한국슬로시티에 대한 지도, 새 후보지 추천, 재인증 업무 ▲한국슬로시티에 대한 대내외 홍보와 인식 확산 ▲한국과 국제슬로시티 간 교류 및 네트워크 강화 ▲국내외 스로푸드 운동 확산 ▲슬로시티 운동 확산을 위한 시민운동, 국민행복운동 전개.

슬로시티 지정이 관광객 유치에 효과가 있나.
사실 지자체가 슬로시티 지정에 혈안이 돼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슬로시티 가입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완도군 청산도 같은 경우엔 가입 7년째인데 방문자 수가 처음의 10배 이상 늘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연 방문객은 600만 명이다. 이곳도 2배 이상 늘었다.

슬로시티에 관광객이 북적이는 것이 맞는 것인가.
좋은 지적이다. 역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슬로시티는 사실 관광지 개발로 시작된 운동이 아니다. 지역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그 문화를 느리게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슬로관광인데 일부 지역에선 그 정신과 동떨어진 행태가 보여지고 있다. 슬로시티가 일반 관광지화 되는 것은 한슬본에서도 우려하는 바다. 그런 지역의 관광자원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슬로시티 재평가에서 나쁜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슬로시티는 운동이자 문화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생각하고 천천히 바꾸어 나가야 슬로관광을 즐기는 진짜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다.

느림의 미학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있을 텐데.
슬로시티의 실천 지향점은 빨리 가는 시계를 멈추거나 거꾸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빠름과 느림의 ‘조화’에 있다고 하겠다. 속도숭배를 느림숭배로 대체하자는 말이 아니다. 빠름과 느림, 삶의 양과 질, 전통과 현대, 농촌과 도시, 세계화와 지방화 간의 조화로운 리듬을 지키자는 것이다. 다들 알고 있듯 우리는 한쪽에 너무 치우쳐 살고 있다. 삶에서 중도(中道)를 찾기 위한 하나의 처방이다. 삶의 소소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슬로시티의 장점이자 특징은.
지방 소도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돈이 없다. 노인인구가 상대적으로 증가할 뿐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삶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그 해결책으로 슬로시티가 답이 될 수 있다.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한국의 슬로시티는 국제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인가.
안타깝지만 유럽에 비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유럽의 소도시들은 그 역사와 지역성, 폐쇄성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들이 슬로시티 수준에 와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장점도 있다. 함께 즐기는 공동체 문화와 ‘정’으로 대변 되는 한국인의 정서가 그것이다. 전통문화와 지역음식(슬로푸드)을 기반으로 잘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손대현 이사장 - 한국외국어대와 마드리드 국립관광대학을 졸업한 후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 국제슬로시태연맹 부회장, 슬로베아카데미아 CEO과정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제슬로시티연맹 로고의 의미

 달팽이는 살벌한 생태계에서 '느림'을 자기의 생존방식으로 삼아 3만 종 넘게 분화하며 살아남은 생명체이다. 달팽이의 등딱지에는 심장 같은 주요 장기가 들어 있어 그 껍데기가 죽으면 죽게 된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의 로고가 마을을 등에 업고 있는 달팽이 모습인 이유도 만약 ‘마을이란 공동체가 죽으면 달팽이의 등딱지 운명처럼 사람도 살지 못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고양신문 이성오 기자 rainer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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