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조화 ‘최적지’

청송은 자연환경과 전통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슬로시티 최적지다.

슬로시티,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을 위해

ⓛ 슬로시티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되나?
② 경북 청송군 부동·파천면 국제 슬로시티를 찾아서
③ 전남 완도군 청산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④ 국제슬로시티 발상지 오르비에토를 찾아서
⑤ 슬로관광을 위한 슬로푸드(이탈리아 치비타)
⑥ 관광한류와 슬로시티,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전통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조화 ‘최적지’
지역사회 브랜드 높이는 데 큰 역할
“삶의 질 높이는 운동으로 인식해야”

경북 청송군으로 차를 몰다보면 안동·영덕·포항·의성 어느 방향에서 진입해도 급커브와 급경사가 이어지는 산길을 꽤 긴 시간 달리게 된다. 고갯길을 넘지 않아도 되는 곳은 북쪽 영양군에서 들어가는 길 뿐이다.
고속도로 제한속도 100㎞를 넘나들며 달리던 운전자는 안동을 지나 914번 지방도를 타고 청송으로 향하면서 속도를 아주 많이 떨어뜨려야만 한다.

아무리 마음이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운전하는 사람이라도 시속 50㎞을 넘지 못하는 언덕길을 30분 넘게 가야만 ‘슬로시티 청송’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청송군의 인구는 2만7000여 명. 군청이 소재한 청송읍은 5000명 남짓으로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군청 소재지다. 그래서인가, 군청과 읍사무소 인근 도로도 2차선이 대부분이고 교통신호등을 보기 어렵다.

사거리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 군 외곽이든 읍내든 천천히 운전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청송이다. 842.68㎢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지다. 청송군은 ‘느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청송군은 2010년 파천면과 부동면이 국제실사를 받고 주민설명회를 통해 2011년 국내에선 9번째로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파천면 송소 고택.

전통문화유산과 자연환경 훼손없이 보존

산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하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 청송이지만, 그중에서도 청송 슬로시티 주민협의회 사무실이 있는 파천면은 특히 자연과 전통문화의 향기가 어우러진 곳이다. ‘슬로시티 청송’ 콘텐츠의 핵심이자 청송의 자랑거리인 송소고택이 자리하고 있어 더 그렇다.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남 대부호 청송 심부자 일족의 유택이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1880년경에 건립됐다.

사용살림공간, 휴식공간, 작업과 생산공간을 별도로 둔 전통적인 양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안채와 바깥채를 가르는 담장에 구멍이 있어 안주인이 사랑채에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민간 건축물의 가치가 높은 까닭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강릉 선교장보다 원형 보존이 더 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에는 심부자 후손이 관리하며 한옥스테이 숙박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송소고택에서는 연중 3~4회 고택음악회가 열려 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자리도 되고 있다.

파천면에는 송소고택뿐 아니라 평산신씨종택, 서벽고택, 사남고택 등이 있고 자연환경이 수려한 참소슬마을이 있다.

아울러 청송 한지, 천연염색 체험, 송소고택에서의 전통한옥 숙박체험 등을 연계한 ‘韓’문화 체험코스와 전통된장 생산 등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이다.

파천면 슬로시티가 송소고택과 같은 전통문화 콘텐츠를 품고 있다면 부동면 일원은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자연환경이 큰 자산이다. 청송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데 든든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특히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는 원시림이 잘 보존돼 생태계가 풍성하다. 매년 수려한 풍광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국제슬로시티청송주민협의회 심재환(59세) 사무국장은 “청송은 유무형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돼 있다. 자연, 문화, 지역농업을 기반으로 한 로컬푸드까지 국제슬로시티 최적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송소고택의 한옥스테이 체험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조선시대 민간 건축물이 이처럼 잘 보존된 곳은 거의 없다. 외국인이 와도 만족할 정도로 내부 편의성도 좋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심재환 슬로시티 청송주민협의회 사무국장.


청송 이미지 개선과 브랜드 제고 효과 

심재환 국장은 “농업 외 지역 산업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느리게 살 수 밖에 없는 조건을 역발상으로 장점으로 승화시켜보자. 이것이 청송 슬로시티 추진 동기였다”며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잘 어우러져 슬로시티에 선정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송은 국내 슬로시티 후발주자이지만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슬로시티운동 발원지인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국제슬로시티 총회에서 청송군은 국내 11개 슬로시티 지역 최초로 ‘2015 슬로시티어워드’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슬로시티어워드는 국제슬로시티 지역의 환경기반 시설, 삶의 질, 지역 경제, 지역사회 참여, 사회적 통합 등 8개 분야에서 모범적인 슬로시티 운동을 추진해온 도시에 수여하는 상이다.

청송군 슬로시티담당 이진규 사무관은 “그간 추진해온 각종 슬로시티 운동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데 지역민들의 자긍심이 크다”며 “앞으로의 슬로시티 운동 확산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청송이라는 지역명에 자연스레 따라오던 ‘청송감호소(교도소)’라는 이름도 옛말이다. 21세기 청송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이미 ‘국제슬로시티 청송’이 됐다.

 
슬로시티는 청송군의 브랜드가 됐다.

슬로시티는 사업 아닌 운동

심재환 사무국장은 “자연환경과 조건만 좋은 것으로 슬로시티어워드를 수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내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주민의 슬로시티 추진 열성이 높은 곳이 청송”이라고 말했다.

청송의 주민 참여는 타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 슬로시티 운동이 순수 민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 주도로 이루어진 데에 따른 한계도 인식하고 있다.

심 국장은 “슬로시티는 사업이라기보다 운동이다. 당장에 이걸로 돈을 얼마 벌어들인다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개발을 하면서도 지역공동체를 온전히 유지보존하는 것”이라며 “느린 삶을 실천하며 빠른 도시생활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주민역량 강화, 교육이 중요하다. ‘왜 슬로시티인가’를 우리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산촌 슬로시티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청송 출신 젊은이들이 귀농 귀촌해 대도시에서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고향에 조화롭게 풀어놓았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짤막 인터뷰 ‘심부자밥상’ 심재오 송소고장 장주 

심재오 송소 고장 장주.

“방문객 증가 따른 지원 조례 필요”

청송 심부자 일족 송소 심호택의 증손자이며 청송슬로시티주민협의회 심재환 사무국장과는 사촌형제지간인 심재오(62) 장주는 서울 대기업에서 10여 년간 근무하고 개인사업을 하다 은퇴해 귀촌, 5년여 전부터 고향과 가문의 주요 유산을 돌보고 있다.

심재오 장주는 “송소고택이라고들 부르지만 문화재 등록 정식 명칭은 ‘송소고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송소고장 장주로서 장원을 관리한다.

심 장주는 지척에 전통식당 ‘심부자밥상’도 운영하며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의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 재연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한옥스테이 여행객들을 위해 마련된 심부자밥상은 담백하고 고급스런 옛 양반가의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식단으로 “송소고택에 어울리는 식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심부자밥상은 슬로시티 지정 이후 마을 지원을 위해 지은 건물을 청송군이 동네에 위임한 것이다. 이를 심 장주가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심 장주는 “공간이 좁아 고민”이라며 “실내 35명, 실외 천막 45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주말에 단체방문객이 몰리면 감당할 수 없다. 내 건물이라면 당장이라도 개조할 것”이라며 증축이 필요하나 군 소유 건물이라 여의치 않다고 토로했다.

식당 증축뿐 아니다. 연간 7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송소고택이나 화장실이 고택 내부에만 있어 공공 편의시설 보강이 시급하다.

심 장주는 “2011년 슬로시티 지정 이후 방문객이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슬로시티 지원과 활성화 조례가 없다”며 “상주와 영덕을 연결하면서 청송군을 지나가는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개통에 따른 관광객 급증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군이 송소고택 일원 문화유산을 묶어내 민속마을을 지정하고 그에 따른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큰 예산을 들여 토목공사를 할 일도 아니며 세밀한 연구와 기획 능력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신문 연합취재단<고양·청양·태안·한산신문>
한산신문 정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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