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우리 부부이야기 조성업, 김영임 부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쓰지는 말아요.” “왜요? 잉꼬부부 아니에요?” “남들은 잉꼬부부라고 부르기는 하죠. 그런데, 잉꼬부부는 아니에요.” “만날 싸우고 그러세요?” “그렇지는 않죠.”
장항동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성업(61세), 김영임(59세) 부부는 과연 잉꼬부부일까, 아닐까. 궁금증이 샘솟는다.

젊을 때 돈도 많이 벌었지만 많이 쓰기도 했다는 남편을 조용히 참으며 내조했던 아내. 이제는 나이들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을 보고는 "내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사진=이성오 기자

새벽 3시에 시작하는 부부의 하루
조성업씨와 김영임씨는 장항동에서 ‘청룡농장’을 운영하며 벼농사, 사과, 각종 채소를 재배해 일산농협로컬푸드직매장 1·2호점에 출하한다. 이 부부의 일과는 매일 새벽 3시반에 시작된다. 그날 출하할 품목을 따서 포장하고 매장에 나가 가격표를 붙여 진열하고 농장으로 돌아오면 10시. 아침 시간이 이 부부에게는 가장 바쁘다. 약속된 시간을 지키느라 아침을 거를 때도 종종 있다. 식사 후 차 한 잔 마시며 쉬는 시간도 아까워 ‘밥 먹으면 숟가락 내려놓자마자 다시 일’하기를 매일 반복한다.
“농사가 쉬는 날이 있나요. 열매채소같은 경우 여름에는 하루라도 안 따면 너무 커져서 상품성이 없어져 못 팔아요. 그러니 하루도 쉴 수가 없어요.”(아내)
부부는 지난해 일산농협로컬푸드직매장에 87가지 품목을 납품했다. 하루에 15가지 정도의 품목을 꾸준히 납품해온 것이다. 로컬푸드직매장은 잔류농약 검사를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로컬푸드 출하를 시작하고서는 제초제를 쓰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일이 늘었지만 사명감으로 손을 더 분주히 놀린다.
“로컬푸드를 살리려면 품목이 다양해야 해요. 구색이 맞아야 쇼핑하기 편하잖아요.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필요한 거죠. 소비자들이 한군데서 필요한 거 다 사야 매장에 오지, 물건이 있다없다하면 오겠어요?”
조씨는 농사 이야기가 나오자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여러 가지 구상과 고민이 많아 보였다. 로컬푸드는 농업인에게는 희망이다. 지난 5월에는 500만원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로컬하면서 달라졌어요”
웬만해서는 딴사람 쓰지 않고 부부의 손으로 모든 농사를 하는 부지런함과 성실함 때문에 농협중앙회가 선정하는 새농민상을 받았다. 남편 조씨는 고양시새농민회장, 전국새농민회 이사를 맡아 농업의 보급과 노하우 전수에도 앞장서고 있다. 새농민상은 추천과 심사를 거쳐 선정하기 때문에 그런지 이들 부부에게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새농민회는 모든 활동을 부부동반으로 한다. 농사일이란 게 부부가 함께하는 일이라 그렇다. 월 1회 회의도 여행도 항상 부부동반이다. 아내 김씨는 “회원들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좋아요. 한두 잔 정도 마시고 식사가 길어져도 두 시간이면 딱 끝나요”라고 말한다. 농사일이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그만큼 성실해야 ‘새농민’이 될 수 있는가보다.
그런데 아내의 말 속에서 왠지 술과 ‘웬수’진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로컬푸드 하기 전에는 매일 저녁 농사일 마치면 친구들 불러내서 술 마시고 새벽 1시나 되어야 들어왔어요. 로컬푸드 하면서 이제 밤에 안 나가요.”
“아이참, 이 사람이. 예전에는 술 먹고 객기부리고 그런 게 최고였던 시대잖아요. 로컬푸드를 해서 안 나가는 게 아니고, 안 나갈 때가 돼서 안 나가는 거예요.”
로컬푸드 출하 때문이라는 아내와 나이 때문이라는 남편이 팽팽하다.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두 가지의 복합적 결과다. 목청 크고 성격 급하고 추진력있는 남편, 조용하고 얌전한 아내. 38년 결혼 생활이 어떠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남편은 일을 벌이고, 아내는 조용히 마무리 지으며 살아왔단다.

젊을 때는 터프함, 살아보니 소용없더라
이 부부는 조씨가 해병대에 복무하던 중 알게 됐다. 친구가 면회간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알게 된 고양시 청년과 충청도 아가씨는 1년 후 제대하자마자 결혼에 골인했다.
“제가 74년에 해병대를 갔어요. 그때는 싸움·술·여자,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것을 최고로 쳤잖아요. 객기가 최고였던 시대죠. 예전에는 그런 거 못하면 바보였는데 지금은 그러고 다니면 바보 취급받아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행동도 바뀌어야죠.” 남편이 멋쩍은 듯 웃는다.
아내는 결혼생활 38년 만에 요즘이 제일 행복하단다. 장항동 시댁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해 농사를 짓다가 중간에 10년 정도 타지에 나가 공조기계 판매사업도 했었다. 그 당시에는 돈을 벌기도 했지만 남편이 가져다 쓰는 것도 많았다. 남편의 곁에는 항상 친구·술·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혼해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아이들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 너무 불쌍할 거 같아서 꾹 참았다.”
아내는 정말 맺힌 게 많아 보였다. 남편은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았지만 아내는 참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참고 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자리잡고 사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남편도 이제는 가정적으로 변했다.
“엄마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바로 달려와서 병원 데려가고…. 엄마라면 꺼뻑 죽어요. 지들 엄마만 좋아한다니까.” 아빠로서 살짝 서운함을 느끼는 듯했다. 노년의 아버지들은 왜 외롭고 서운해질까, 스스로 돌아보면 알텐데.

1988년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여보, 고마워.”
조성업씨는 올해 초 방송통신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우시니 가장의 무게를 나눠지기 위해 중학교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 농업인으로서 더 공부하기 위해 2000년 농협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치기는 했지만 배움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우연히 현수막을 보고 ‘환갑까지 공부를 마친다’는 목표로 53세에 경복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 했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진학해 딱 4년만인 올해 학사모를 쓰게 됐다. 새벽 3, 4시면 밭에 나와 수만 평 논·밭을 일구며 7년 동안 학업을 계속했으니 진정한 주경야독의 실천이었다.
“쑥스러워서 대놓고 고맙다는 말을 못했지만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내 덕분이에요.”
남편이 대놓고 사랑한다, 고맙다, 말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에 이 정도의 표현에도 아내는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이 부부는 잉꼬부부가 아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의를 지키는 기러기를 닮았다.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 그런 까닭에 전통혼례에서는 신랑이 처가에 나무로 만든 기러기 한쌍을 건넨다. 기러기의 생태적 특징을 보면 기러기는 V자 편대로 날아가며 힘을 합치고, 선두 기러기가 구성원을 챙기고, 힘에 부친 개체가 땅에 내려오면 모두 함께 착륙해서 동료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힘들수록 서로 격려하고,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 기러기. 조성업·김영임씨는 의리파 기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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