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나상호·송원숙 부부

고양시 ‘마당발’나상호 고양평화누리 이사장(64세)과 그런 남편을 묵묵히 따르는 아내 송원숙(61세)씨. 20대 시절 중매로 만나 30년 넘게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서울생활 익숙지 않을 때
키 큰 시골출신 남편에 끌려
나상호씨와 송원숙씨는 1976년 중매로 처음 만났다. 일산 토박이인 나씨는 당시 서울 청량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충북 옥천 출신인 송씨는 서울 신정동에 살고 있었다. 송씨와 한 마을에 건너 살던 지금의 시누이 소개로 만난 두 남녀. 송씨는 “서울생활이 익숙지 않아 힘들던 차에 시골출신인 남편에게 끌렸다. 키 큰 남자를 좋아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나씨 또한 “좀 평범해 보이지만 양순한 모습이 좋았다.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힘들었는데 많이 의지가 됐던 것 같다”고 거들었다.


26살, 23살의 두 청춘남녀는 그후 1년 동안 교제하다 결혼을 했다. 중매결혼 치고는 꽤 오랜 기간 만남의 시간을 가진 셈이다. 그동안 나씨는 청량리에서 영등포까지 전철로 오가며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다방에서도 만나고 함께 신앙생활도 시작하며 관계가 깊어진 지 수개월. 결혼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나씨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일산 본가로 돌아간 후부터였다.

“아내를 데리고 일산역부터 사는 곳까지 직접 걸어와서 집을 보여줬었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영등포 다방에서 결혼이야기를 꺼냈죠. 교회 담임목사님이 좀 엄하신 분이셨는데 주례를 맡아달라고 당돌하게 부탁까지 했었죠.” (남편)

77년 10월 약혼식을 올리고 그해 12월 신촌웨딩홀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그해 이들의 결혼식도 눈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눈 때문에 경운기를 움직이지 못해 남편이 결혼식에 늦은 거예요. 시작하기 3분전엔가 간신히 도착한 걸로 기억해요. 그땐 휴대전화도 없고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요. 심지어 저희 오빠는 남편이 도망간 것 아니냐고 걱정까지 했을 정도였어요.”

젖소 3→36→7→80마리,
인생도 변화무쌍한 롤러코스터
결혼 후 부부는 일산 본가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시작했다. 이들이 농사를 짓던 곳은 현재 자유로가 있는 지역으로 지대가 낮은 탓에 비만 오면 수해가 잦았다. 농사일이 신통치 않자 나씨는 30살이 되던 해 당시 한창이었던 중동 건설인부 파견에 지원했다. 갓난쟁이 아들에 임신 중이던 아내가 눈에 밟혔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를 돌며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3년. 그동안 벌어온 돈과 결혼패물까지 몽땅 팔아 이들 부부는 땅 1000평과 젖소 3마리를 샀다. “처음에는 돼지를 키우려고 했는데 지인이 가격변동이 심하다고 말렸어요. 대신 젖소농장을 시작했죠.”

5년 반을 고생하며 자리잡기 시작한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날벼락이 닥쳤다. 90년 집중호우로 인해 한강제방이 무너지는 대홍수가 발생한 것. 36마리였던 젖소는 7마리로 줄어들고 말았다. 게다가 기존 목장지대가 일산신도시로 수용되면서 부부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보상비와 대출금을 합친 5000만원으로 부부는 설문동에서 다시 젖소목장을 시작했다. 아침저녁 쉴새 없이 일하며 앞만 보고 달렸던 3년 반. 젖소가 80마리까지 늘어났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내는 “그때 너무 고생해서 아직도 소만 보면 경기가 날 정도”라며 “목장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어디 여행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살았다”고 회상한다.

96년을 마지막으로 목장일을 정리한 나씨는 건설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나씨는 “목장일을 했던 당시가 한창 돈을 번 전성기”라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여유 없이 살았던 것 아닌가 후회가 들 때도 있다. 가장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왕성한 남편의 사회활동의
수훈갑은 아내의 묵묵한 지원 
일산 토박이인 나씨는 고양시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고 있다. 교회 장로활동은 기본이고 일산신협 이사장, 청송장학회 회장, 고양YMCA 이사장, 할레우스합창단 대표, 고양시족구협회장 등 직간접적으로 맡아온 단체직함만 수십여 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경희대관광대학원 총동문회장도 맡았으며 현재 고양평화누리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한번 맡은 일은 끝장을 보고 만다”는 평소 신념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

▲ 98년 8월 백두산 천지에서
“한창 사회활동을 열심히 할 때는 집에 손님을 많이 초대했었어요. 밖에서 식사를 살 수도 있지만 집에서 직접 음식을 대접하고 정성을 보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죠. 많을 때는 수십 명씩 모시고 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고생이 많았죠. 제가 지역에서 이만큼 활동하는 것도 다 아내 내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부부는 단 둘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형편이 넉넉해지면서 터키, 중국, 일본 등 해외여행도 많이 다녀왔지만 늘 계모임이나 부부동반모임으로 다녀온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기회가 되면 가족여행을 같이 다녀오는 게 목표일 정도다.

그나마 요즘에는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3살 된 외손녀딸 육아를 맡으면서 대화도 부쩍 늘었고 아침시간에는 함께 드라마도 본다. 매주 일요일에는 장항동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도 함께하고 있다.

송씨는 “집에서는 엄격한 가장이었지만 그 덕분에 자식들이 바르게 자란 것 같아 다행이다. 얼마 전에 아들이 자기도 ‘아버지처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해서 남편이 자랑스럽고 고맙기도 했다”고 말했다. 힘든 시절을 함께 고생하며 지금까지 온 부부. 묵묵히 서로를 챙겨주고 위로하는 그런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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