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이 영성(零星)한 삼국시대사 인식에는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시각이 흔히 눈에 띈다. 대체로 신라사와 고구려사가 그렇다. 우선 고구려는 동북아에 우뚝 솟은 군사강국이었다는 게 ‘교과서적 고구려사’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는 문제가 있다.

고구려는 중국에서 대규모 침공군이 쳐들어오면 성(城)문을 닫고 지키는 ‘수성전략’을 썼다. 침공군은 식량이 떨어지고 추위가 닥치면 기진맥진해서 퇴각하게 마련이었다. 그때 고구려는 성문을 열고 나가 추격하면 백전백승이었다. 을지문덕이 수(隋) 양제(煬帝)의 113만 대군을 물리친 것도(612년), 연개소문이 당(唐) 태종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것도(645년) 수성전략 덕분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병력수만 믿고 침공군과 맞붙어 싸웠을 때에는 참패한 기록을 세 차례 남겼고, 결국 나라가 망했다. 동천왕 20년(246), 고국원왕 12년(342)에 그랬고, 마지막으로 보장왕 27년(668) 당 태종이 쳐들어 왔을 때 고구려는 15만 대군으로 안시성구원전투에 나섰지만 참패했고, 이어서 평양성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삼국시대 말에는 침공군이 신라로부터 식량보급을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고구려의 수성전략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보장왕 20년(661) 당 고종이 4만 4천 병력으로 평양을 포위했을 때 식량이 떨어졌지만 김유신의 결사대가 식량을 보급해 줬다. 그래서 당나라 침공군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사대외교로 얻은 평화공존
이런 상황은 백제에서도 엇비슷했지만, 백제는 고구려와는 달리 4년 남짓 당나라 침공군과 혈전을 벌였다. 의자왕 20년(660) 당의 13만 대군을 맞아 백제는 전략회의만 거듭하다가 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끌려가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이것은 당나라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풍왕(豊王·재위 661∼663)과 귀실복신(鬼室福信)이 이끄는 백제군은 여러 차례 당군이 점령한 웅진(熊津=공주)을 포위했지만 그때마다 신라가 당군에게 식량과 옷을 보급해 줘 위기를 모면했다.

그래도 당나라의 1차 침공은 실패했고, 3년 뒤인 풍왕 3년(663) 당은 다시 40만 대군을 보내 백제를 제압할 수 있었다. 7세기 당나라의 백제·고구려 침공 이후 두 나라의 역대왕조는 1천 2백년동안 ‘평화공존’ 해 왔다.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온 것은 이른바 ‘사대외교’였다.
사대외교는 두 나라 왕조사이에 맺어진 평화공존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1950년 6·25 전쟁 때 대규모 병력으로 이 땅에 침공해 왔다. 19세기 후반기이래 1세기에 걸친 동북아의 격동기를 거쳐 1천 3백년만에 평화공존이 깨진 것이었다.

주한미군 지위에 심각한 의문
냉전이라는 범세계적 체제대결이 모든 나라를 지배하던 전후시대에 이 나라에도 ‘주한미군’이 동맹군으로 존재해 왔다. 그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 두 여중생이 죽은 사건과 관련해서 미 군사법정은 관제병과 운전병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두 여중생을 죽게 했지만 “잘못은 없다”는 배심원의 평결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 상당기간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와 성토가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해 또 다시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미 동맹이 반세기를 넘긴 이제 미국은 한국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처럼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대우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소파)은 나토수준으로 재개정 해야 할 것이다.

이번 동두천 여중생 사망사건의 뒤처리만 해도 미군 측이 개정된 ‘소파’에 규정된 대로 한국의 재판권 행사에 ‘호의적으로’ 응했던들, 그 결과가 어떻게 결말 지워졌더라도 한국민의 분노를 촉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때 주한미군의 존재에 반대하는 소수 운동권의 주장이 있었지만, 주한미군은 냉전시대 한·미 두 나라가 서로 필요해서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주한미군의 장래는 중국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인구 13억에 핵과 미사일등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한 중국과의 관계가 과거처럼 ‘평화공존’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두고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한국민의 정의감과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한·미 두 나라는 나토수준의 대등한 관계로 한·미 행정협정을 즉각 재개정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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