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슬로시티
잊혀질 위기의 지역 전통음식 슬로푸드로 살려내다슬로관광을 위한 슬로푸드
  • 이성오 기자
  • 승인 2015.11.23 14:50
  • 호수 1248
  • 댓글 0


슬로관광을 위한 슬로푸드
잊혀질 위기의 지역 전통음식 슬로푸드로 살려내다

슬로시티,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을 위해 
ⓛ 슬로시티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되나?
② 경북 청송군 부동·파천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③ 전남 완도군 청산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④ 국제슬로시티 발상지 오르비에토를 찾아서
⑤ 슬로관광을 위한 슬로푸드 (이탈리아 치비타·오르비에토)
⑥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산봉우리에 요새처럼 세워진 '치비타 디 반뇨레조'는 멧돼지 고기와 송로버섯이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천공의 성에서 맛보는 슬로푸드

로마를 빠져나와 차로 2시간을 달리면 국제슬로시티의 중심지인 ‘오르비에토’를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치비타 디 반뇨레조(이하 치비타)’라는 도시다.

치비타는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오르비에토에 온 관광객만이 주로 들르고 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입이 쩍 벌어지는 멋진 경치가 큰 이유겠지만, 도시에서 먹기 힘든 이탈리아 지역음식을 먹으며 슬로푸드를 체험하기 위함도 있다.

우선 이곳의 지형을 알면 식재료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이해하기 쉽다. 이곳은 좁을 산길을 40분가량 차로 달려야 마을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절벽을 따라 마을이 조성됐고 그 중 한 마을은 마치 공중에 떠있 듯 요새처럼 산봉우리에 세워졌다. 주변이 온통 산이라 산림자원(먹거리)이 풍부할 뿐 아니라 비탈진 언덕엔 올리브나무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오랜 도시국가로 독립적인 터전에서 살았던 이탈리아의 역사(이탈리아의 통일은 불과 140년 전이다)와 이곳 지형을 중첩해 보면 자급자족의 문화를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오븐에 구운 동그랗고 평평한 빵인 포카차

고립 지역이라 식재료 자급자족 가능

마을이 대도시와 떨어져 있지만 가구수가 상당한 이곳 치비타는 기원전 에트루리아 민족의 동굴과 중세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산봉우리 위에 만들어진 마을은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 단 하나뿐이다<사진>. 현재는 12명의 주민이 이곳에 살며 지역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라 피아제타’라는 이름의 식당은 앞마당이 넓어 야외에서 음식을 먹기에 제격이다. 이곳에선 마을에서 생산된 식재료만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로마에서 맛봤던 음식과는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만 담백한 맛이 한국인의 입맛과 잘 어울려 친숙함에 오히려 놀라게 된다. 어린 시절 고향 할머니가 해주던 맛이 절로 생각날 정도다.

   
콩을 이용한 수프의 한 종류인 파졸리니.

빵에 생토마토가 얹혀 나오는 애피타이저, 오븐에 구운 동그랗고 평평한 빵인 포카차(피자 도우와 비슷한 맛이다), 콩을 이용한 수프의 한 종류인 파졸리니, 한국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라자냐(라자냐도 파스타의 한 종류)를 비롯한 2~3가지 종류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었다. 음식이 짜거나 맵지 않고 면과 빵, 채소가 주재료다. 로마의 파스타와 피자가 짠맛이 강했던 것과는 큰 차이다.

그 중 탈리아텔레(칼국수처럼 납작한 모양의 면) 면을 사용한 파스타 요리는 이 지역 특산물인 송로버섯(트러플)이 들어있어 향이 풍부하고 독특하다. 세계 3대 식재료로 알려진 송로버섯은 푸아그라나 달팽이 요리에 앞설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기 때문에 로마에서였다면 가격이 상당했겠지만 이곳에선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식당 ‘라 피아제타’의 주인 비엘라씨는 “이곳은 특산품이 다양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재료와 제품이 특산품이라 할 수 있다”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먹거리가 이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말린 송로버섯을 손님 테이블로 가져와 파스타 위에 직접 갈아서 뿌려준다.

송로버섯과 멧돼지, 특산품으로 성공

비에라씨의 안내로 들어선 식당 뒤편의 식품판매장에는 지역에서 생산되고 가공된 다양한 제품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송로버섯향이 가미된 올리브유,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과 발사믹(와인식초), 여러 가지 견과류와 과일향의 증류주, 멧돼지 고기로 만든 햄 등이 진열돼 있다.

   
모든 제품에 도시 풍경사진이 붙어있어 치비타에서 생산된 제품인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냉장고에는 가공육과 맥주가 놓여있고 한켠에는 콩과 잡곡류, 견과류가 소포장 되어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품마다 치비타의 상징인 이 마을 사진이 회사 로고처럼 박혀 있는 것이었다. 이 사진만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푸드임이 확인되는 셈이다.


가공 없이 식품 본래의 특징 존중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는 그 경계선이 모호하다. 유사점이 많은 이 둘은 이렇게 설명된다. ‘로컬푸드’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유기농 농산물을 강조)이라면,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대비되는 개념의 로컬푸드로 풀이할 수 있다.

로마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맛의 본고장이라고 자부했던 이탈리아인들은 ‘전통 음식을 소멸시키는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반대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슬로푸드 운동의 개척자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미식에 대해 말하며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음식은 최대한 식품 본래의 특징을 존중하는 것이다. 즉 가공을 배제하고 원재료의 자연성을 그대로 살린 것으로 규정했다. 먹거리가 음식을 만든(수확한) 사람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사실 ‘훌륭한 음식’이란 건강한 농업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취재 안내를 맡은 국제슬로푸드연맹 사무장인 알도씨에 따르면 “지역색을 강하게 드러내고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슬로푸드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한 가공 없이 시간을 들여 발효시키고 염장하고 말리는 것이 전통의 가공법인데 그것만으로도 음식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며 “요리방법이 복잡해질수록, 또는 너무 많은 가공을 한 경우 본래 식재료의 맛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르비에토 식료품 가게 입구에 전시된 멧돼지 박제.

정직하게 생산해 스스로 즐기는 것

오르비에토와 치비타에서의 식사는 대부분 2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음식을 즐기고 느리게 먹는 것 또한 슬로푸드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슬로푸드의 특징은 식재료를 가공하는 방법이다. 즉 자연 발효와 말리기가 주된 방법이다. 이탈리아의 특화품인 와인과, 발사믹이 대표적이고 이탈리아의 햄도 그 중 하나다. 햄은 와인처럼 원산지의 명칭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오르비에토에서는 지역의 특산물인 멧돼지와 양고기, 비둘기고기를 맛볼 수 있다. 멧돼지 고기는 보통은 갈거나 잘게 썰어서 파스타에 넣어 먹지만, 대부분은 햄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그래서인지 오르비에토의 많은 정육점과 식당에는 멧돼지를 박제해서 입구에 걸어놓고 있었다. 비둘기 요리 또한 역사가 깊다. 비둘기는 수백 년 전부터 지하 동굴에서 사육해 식량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동굴에서 사육하는 것을 금지(잔인하단 이유로 바티칸에서 오래전 금지시켰다)하고 있지만 식재료의 전통은 계속 살려나가고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별미로 제공하는 식당이 아직도 많다.

   
오르비에토에서 맛본 비둘기 요리.

슬로푸드를 맛보며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신선하다. 간결하다. 그리고 맛있다’이다.

샐러드는 오직 신선한 채소에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넉넉히 뿌려먹는다. 요리법도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버섯을 넣은 파스타는 전혀 화려하지 않고 별다를 것 없지만 버섯의 향이 정말 특별했다. 고가의 송로버섯은 별개로 치더라도, 일반적인 버섯을 넣은 파스타도 맡아본 적 없는 특별한 향이 강하고 은은하게 입안에 퍼진다. 정리하자면 맛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발사믹과 올리브유와 버섯이, 즉 원재료가 맛있기 때문이다.

식재료의 기본이 되는 소스를 전통의 방법으로 오랜 기간 숙성해 만들고 신선한 재료를 가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오랫동안 즐기고 맛보는 것, 그것이 이탈리아의 슬로푸드였다.   



 <인터뷰>

   

오르비에토에서 와인리조트 운영하는 ‘에밀리아노 시르키아’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판로 개척”

오르비에토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칸타나 알타로카’라는 이름의 와인리조트가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했을 이곳은 1981년 젊은 농장주가 들어오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마 출신 농장주인 ‘에밀리아노’가 오르비에토 출신 아내를 만나 농장을 인수했다. 어떤 전략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리조트를 운영하는지 들어봤다.

농장와 리조트의 규모는.
- 1981년부터 우리 부부가 운영한다. 농장 면적은 23헥타르(약 7만평)이고 숙박시설(리조트)은 방이 40개에 100명이 투숙할 수 있다. 직원은 40명이지만 시즌에 따라 유동적이다. 숙박시설을 운영한 것은 2002년부터다. 리조트는 규모도 큰 편이고 가격도 높은 편이다. 고급화 전략이다.

   
와인리조트에서 바라본 농장 풍경.

슬로푸드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 이탈리아는 세계 1위 와인 생산국이다. 지역마다 와인의 개성이 다양하고 역사도 깊다. 숙성 과정을 거친다는 점과 지역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슬로푸드의 대표격이다.

전통적 농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나.
- 대부분 그렇다. 포도 수확을 수작업으로 한다. 기계로 하면 좋겠지만 포도나무에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잘 익은 포도만 직접 딴다. 어떤 밭은 오래 전부터 심어져 있는 재래품종들이 있지만 그대로 둔다. 심어놓은 방식과 가지의 모양이 수확하기에 불편하다. 나머지는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품종들을 심었다.

재래품종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 예전에 키우던 종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이 고장의 역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재래종 포도밭은 옛날 농법을 그대로 쓴다. 옛날 방식에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포도밭 이랑이 시작된 부분에 장미를 심은 것은 병충해를 장미나무가 먼저 알아채고 시들기 때문인데 그런 방식도 옛 방식이지만 장미를 그대로 심어두고 있다. 물론 병충해를 예측하는 것은 기술이 좋아져 현대 방식이 좋긴 하다.

리조트를 시작하고 좋아진 것은.
- 관광객이 투숙하면서 농장을 산책하고 포도생산지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상품의 가치를 더욱 느끼는 것 같다.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보통 한가롭게 조깅을 즐기거나 산책하거나 리조트 내에서 수영을 즐긴다. 리조트 식당에서 제공하는 지역 음식을 맛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편의성과 디자인 등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렸다. 오르비에토의 유명한 성당의 벽 무늬를 와인 라벨에 사용했다. 전통적이지만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시아인(주로 일본인)들이 우리 와인을 많이 구입한다. 농장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접 수확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키워왔지만 이 지역은 전부 유기농법이라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유기농마크를 붙여달라는 문의가 잇따랐다. 그래서 올해부터 생산한 와인에 유기농 표시를 하고 있다.

 

이성오 기자  rainer4u@mygoyang.com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