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고양 팜시티’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인간의 도시를 꿈꾸다


슬로시티,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을 위해 
ⓛ 슬로시티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되나?
② 경북 청송군 부동·파천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③ 전남 완도군 청산면 슬로시티를 찾아서
④ 국제슬로시티 발상지 오르비에토를 찾아서
⑤ 슬로관광을 위한 슬로푸드 (이탈리아 치비타·오르비에토)
⑥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고양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팜시티 부지로 거론되는 구산동, 송포동 일대 모습.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신개념 농업도시
개발 아닌 도시재생 차원에서 접근해야

슬로시티는 지역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그것을 살려 나가면 ‘느리게 살아도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기치로 시작됐다. 고양시에서도 슬로시티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도시모델이 제안돼 왔다. 바로 ‘팜시티’다.
팜시티는 농촌을 살리는 미래지향적 도시모델의 하나다. 기존의 개발 형태가 아닌 도시재생의 개념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팜시티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이기웅(열화당 대표) 파주출판도시 명예 이사장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은 글(말)이 살찌우고 육체는 쌀이 살찌운다”며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영위해 갈 도시가 바로 팜시티”라고 말했다.

고양에 100만평 팜시티 꿈꿔


파주출판단지 인근 고양시 땅에 지속적으로 제안되어 온 팜시티는 ‘책의 도시’를 완성한 이기웅 이사장이 ‘쌀의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새로운 시도다. 100만평 부지의 85%를 농지로, 15%는 출판·영상·방송 등의 문화시설을 조성해 농업이 중심이 되는 친환경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팜시티는 슬로시티와 비슷한 측면이 꽤 많다. 세계적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슬로시티는 지역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지역문화와 음식을 핵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느리게 생산·체험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지역공동체의 회복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한다는 점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 이 같은 특징들로 설명되는 슬로시티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시작된 팜시티의 가치와 많은 부분 맞닿아 있다.

팜시티가 내건 첫 번째 슬로건은 ‘인간의 도시’다. 공동체와 이웃이라는 ‘인간의 근본 가치를 부활시키자’는 운동으로 시작됐다는 점도 슬로시티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구산동과 송포동 일대는 파주 북시티와 연결돼 있다. 지도 왼쪽은 심학산.

인간의 도시, 공동체의 부활

100만 대도시로 성장한 고양시.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곳 도시인들은 아파트와 땅이 전부인 시대에 살고 있다. 공동체의 온정과 지역의 전통이나 문화 대신 거대한 건축물을 동경하듯 손에 잡히는 물질만을 추구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도시는 외롭고 더 고독해졌다고들 한다.

과다경쟁과 과잉오락, 과잉기술, 과잉생산은 공동체와 이웃과 가족을 해체시켰다. 이에 팜시티는 하나의 시민운동으로 인간다움의 가치를 다시 천명하고 나섰다.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유대감과 평화의 감성을 고양시 도시문화에 살려내는 촉매제 역할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구산·송포동 절대농지 보존해야

팜시티 사업은 가장 오래된 전통산업인 ‘쌀농사’에 다양한 지식산업 문화를 결합한 마을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전체 부지의 85%를 차지하는 절대농지에서는 쌀농사를 비롯한 화훼산업 등 고양시 특산품을 활용한 지역 브랜드 상품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개발의 방식도 다르다. 말은 개발이라고 하지만 땅을 깎아내는 개발이 아니다. 지역에 살아오던 토박이 주민들이 고향을 떠날 필요도 없다. 토지를 수용하는 일방적인 개발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용방식의 도시개발은 더 이상 성공하기 힘든 상황에서 팜시티는 농촌개발과 도시개발을 공존시키는 최초의 시도다.

이기웅 이사장은 “농업인의 삶의 질이 우선적으로 보장되게 만드는 것이 농촌을 지키는 것”이라며 “농촌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다.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선 눈앞의 이익을 볼 것이 아니라 땅의 가치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을 중심으로 문화 콘텐츠 거점마을과 거리 조성

팜시티의 계획은 구체적이지만 가변적이다. 그 개념을 만들고 정리한 것이 이미 수년 전이기 때문에 팜시티의 가치에 대한 논리적 기반은 상당히 탄탄하다. 하지만 아직 대중적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이고 주민들의 공감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세부 내용은 유동적이다.

팜시티의 기본 방향은 정해져있다. 구산동 일대 절대농지 부지를 중심으로 마을길을 따라 출판·영상의 거리, 정보·통신의 거리, 방송·콘텐츠 거리, 농업관련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연장, 도서관, 마을학교 등을 만들어 테마에 따른 거점마을을 조성한다.

거리에는 친환경 농산물을 주민이 직접 판매하는 로컬푸드 매장이 위치한다. 하지만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농지다. 마을의 85%를 차지하는 농지에서는 쌀과 함께 지역의 특화작물을 다양하게 재배한다. 기본적으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지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구조다.

속도의 미학을 통한 생태도시

슬로시티가 내세운 느림의 미학은 팜시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 문화에서 빠르게 내달리는 사람들은 그 속도에 시달리면서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빠름의 시대에서 우리가 소홀히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 대가도 크다.

처음 파주에 출판도시를 설립할 당시 중요하게 다룬 요소는 소통과 대화, 느림과 생태였다. 건축가와 출판인이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해 공동의 기준을 정했고 그 과정은 험난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향촌의 자치규약처럼 내부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나가고 그것을 따르는 데 시행착오도 많았다.

파주출판도시 준비 과정 이미지

팜시티의 가치가 ‘느림’을 통한 생태도시라는 측면을 고려해 볼 때, 그리고 ‘느리게 살기’가 하나의 운동이 된 시점에서 팜시티의 가치를 설득하는 방법도 느리게 진행돼야 옳다. 새로운 도시모델은 결국 오랜 시간의 협의가 필요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실험으로 성공모델을 보여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파주출판도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탈리아의 슬로시티 또한 시작은 쉽지 않았다. 슬로시티 발상지인 오르비에토는 도심으로 차를 못 들어오게 차단했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반대해 시청 앞에서 집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시행한 결과 상품판매 등 지역주민들의 소득이 향상되었고 지속적인 생태교육과 홍보를 통해 긴 시간에 걸쳐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운동이지만 행정력의 도움 절실

파주출판도시와 팜시티가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탈리아 슬로시티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 소도시의 시장 네 명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즉 관이 주도한 사업이라는 뜻이다. 물론 관이 주도했지만 주민의 완전한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조례를 제정하고 시설을 정비하는 등 슬로시티 성격에 맞게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것은 행정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김달수 도의원은 “민간이 사업을 제안 할 수는 있겠지만 팜시티가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시의 동의 없이는 진행되기 어렵다. 지역에 이 사업이 타당성이 있는지 조사를 해보는 것은 고양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이 조사하는 것과 관이 조사하는 것은 그 신뢰도에서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관심을 얻고 동의를 받는 절차가 진행되려면 결국 시의 용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터뷰>


인터뷰 =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명예 이사장

“팜시티는 땅의 가격 아닌 가치를 높이는 일”

팜시티의 ‘팜’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 ‘문화도시’, ‘인간의 도시’의 다른 이름이 팜시티다. ‘농장의 도시’로 해석되겠지만 팜(farm)은 중의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의 현장을 함축한다. 팜시티가 말하는 농사는 쌀농사도 물론 포함하지만 사람농사, 미디어농사, 책농사, 예술농사 등 다양한 농사를 지칭한다.

팜시티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진행됐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급하게 진행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그곳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논의가 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팜시티에 대해 찬성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슬로시티’처럼 새로운 개념의 도시, 즉 대안이 필요할 때다. 다른 어떤 대안보다 팜시티가 가장 좋다고 공감할 때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준비 중인가.
= 포럼을 만들려고 한다. 가칭 ‘고양 팜시티 포럼’이다.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해보자는 것이 포럼의 주제다. 포럼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팜시티에 슬로시티 개념을 도입시킬 수도 있다. ‘인간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대안 중의 하나가 팜시티이기 때문이다. 도시모델의 가장 성공적인 대안을 고양시에서 찾게 된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각 도시가 벤치마킹할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슬로시티도 그렇게 시작된 것 아닌가.

아직까지는 팜시티 예상부지로 논의되는 지역(구산·송포동 일대)의 주민들이 적극 찬성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준비가 부족해서다. 우리도 부족하고 주민들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다. 가장 큰 문제는 팜시티가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는데 있다.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도시재생 사업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입장도 한편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토지수용 개발방식은 이제는 가능성도 희박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땅을 갈아엎는 개발은 이제 손실이 더 크다. 앞으로 주민들과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팜시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다움이라는 행복을 주민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이 땅이 가지는 힘이다. 가치를 가져오면 돈도 천천히 따라오게 돼 있다.

민간 주도라는 점에서 한계는 없나.
= 오히려 잘 진행됐다. 파주출판도시(북시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조합을 통해 진행됐다. 조합이 최고다. 팜시티도 주민들이 조합에 가입해 각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곳에 살 사람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 민주적인 집단 판단력을 통해 가능하다. 또한 선량한 자금(자본)이 들어와야 한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기본적인 작업은 행정부 즉 시에서 해줘야 한다. 타당성 조사를 민간이 하게 되면 투기꾼으로 오해받기 쉽다. 공식적인 도시재생사업으로 생각하고 고양시가 먼저 나서주길 바란다. 팜시티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시가 마련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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