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사람과 사람 다른 듯 닮은 부부 이야기
따로 또 같이… 부부란 서로의 삶을 사는 동지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백승권·안선경 부부
  • 이명혜 전문기자
  • 승인 2015.11.30 13:31
  • 호수 1249
  • 댓글 0

 

   
▲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 부부다. 기자, 농부, 청와대 행정관까지 하며 자유롭게 살았던 남편을 아내는 별 투정없이 따랐다.

더불어 살면서도/아닌 것같이/외따로 살면서도/더불음같이/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외롭지 않게/외롭지 않으면서/방해받지 않고/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오래 전 김승희 시인의 ‘만파식적_남편에게’를 읽고 이런 부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백승권(50세), 안선경(47세)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인이 꿈꾸던 부부의 모습이구나 싶었다.

20대, 청년의 열정으로 사회운동을 함께했고, MT같은 데이트를 2년 하다 결혼하고, 남들같은 평범한 부부의 삶을 살다가 돌연 귀농해 농부로 살기도 했다. 남편 백씨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발탁되면서 화려하게 도시생활자로 복귀했다. 지금은 부부가 ‘지식자영업자’로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백승권, 안선경 부부는 1993년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백씨는 실무자로, 안씨는 회원으로 활동하며 그저 ‘그런 회원이 있나보다’ 정도였다. 이듬해 주변 선배들에게 ‘둘이 어울린다, 사귀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다보니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는 백씨가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때라 매일 일이 늦게 끝났다.

“밤 11시쯤 양손에 맥주 사들고 자취집으로 찾아왔어요. 신림동에서 여럿이 함께 자취를 하고 있어서 MT 온 것처럼 같이 마시고 같이 놀았죠.” 아내 안씨는 둘만의 데이트는 거의 없었지만 재미났었다고 추억한다.

별다른 프러포즈는 없었지만 결혼은 둘이 하는 거려니 했었다. 7남매의 여섯째인 남편, 6남매의 막내인 아내, 둘의 결혼은 막힘없이 진행됐다.

“처갓집에 인사를 갔는데 다 모인 거예요. 아버님이 술을 꺼내오시고 술판이 벌어졌죠. 처갓집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데 손위 동서 형님이 날짜 잡아야죠, 하고 아버님이 그래야지, 하면서 결혼이 확정됐어요.”  

   
▲ 1997년 7월, 결혼 초 강원도 영월. 아내의 아버지댁이 있는 고향을 방문해서.

일곱 남매 모두 시집장가보내고 막내아들과 살던 백씨의 어머니도 안씨를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97년 5월, 안씨는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남편의 생각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을 때쯤 백씨는 서울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자생활에 회의가 온 거였다.” 주중에는 매일 술 마시고 새벽 1, 2시에 귀가하고 일요일에는 시체처럼 쓰러져 지내는 삶은 참다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2시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벽 붙들고 울면서 결심을 굳혔다.

“가족회의를 하고, 나를 살리려면 귀농해야한다고 말했어요. 아내는 첫 아이 임신 중이었는데 큰 반대없이 동의해주었어요. 어머니는 당연히 동의하셨구요.”

회사에는 휴가를 내고 귀농교육을 받았다. 98년 11월 충북 괴산으로 이사를 했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느타리버섯 시설재배를 시작했다.

“3년 동안 느타리버섯 농사만 지었어요. 농사가 잘 됐죠. 전국에서 견학오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백씨는 농부의 삶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느타리버섯은 시설재배라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인공적인 재배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가 들었어요. 유기농 농사를 짓기로 했죠. 콩, 호박 등 밭농사를 지었는데 풀도 못 잡고 쉽지 않았어요.”

유기농을 시작하면서 농사보다는 한살림 생산자모임인 솔뫼농장일을 더 열심히 하며 지역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아내의 생각
아내는 시골에서의 삶도 좋았다.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남편이 버섯 따오면 손질해서 포장하는 일을 했다. “단순한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좋더라구요. 머리도 맑아지고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결혼할 때부터 함께 살아온 시어머니는 이 부부에게 든든한 ‘빽’이었다. 손이 큰 시어머니는 칼국수며 만두를 푸짐하게 끓여 동네사람들과 나누면서 금방 이웃사촌이 되었다.

안씨도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가만히 아이만 키우지는 않았다. 가톨릭농민회를 만나 주부모임도 하고, 수녀회가 하는 방과후교실에서 생활교육선생님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농사지으며 농민활동하며 바쁘게 지내던 백씨에게 청와대에서 러브콜이 왔다. 2005년부터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대통령의 정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는 시어머니와 괴산에 남아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2007년 파주로 올라오게 된다. 고양시에 온 지는 6년째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지켜보는 편이죠. 남편이 하고 싶은 것은 강하게 밀어붙이는 편이라 믿고 동의하는 편이에요. 결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요.”(아내)

   
▲ 백승권씨는 2005년부터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대통령의 정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썼다. 아내는 시어머니와 괴산에 남아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2007년 파주로 올라왔다.

“노무현 대통령님 퇴임 이후에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자고 해서 ‘민주주의 2.0’ 사이트 작업에 참여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공허감이 컸어요. 49제 끝나고 담배를 끊었어요.”

백씨는 이제는 글쓰기 전문강사로서 전국을 무대로 1년에 200차례가 넘는 강의를 다닌다.

“굽이치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선택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동의를 구하죠. 40대 말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마음먹었는데 아내가 흔쾌하게 동의해줘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어요.”

남편은 마음대로 살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각자 추구하는 게 있지요. 연애할 때도 이 사람은 추진력이 있겠구나, 믿음이 있어서 결혼했어요.” 아내의 이런 믿음 덕분에 남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청와대 일로 바쁘던 시기에 아내는 북한에 나무를 지원해주는 단체인 ‘겨레의 숲’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북한도 몇 번을 다녀왔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못하게 해서 활동이 중단되었고 5년 만에 접었어요.”

지금은 큰아이 영어공부 때문에 알게 된 ‘큰소리영어학습법’이 영어공부의 해법이라 생각해 아이들을 그것으로 공부시키고 몇해 전부터 영어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어원서를 함께 읽으며 시험대비용이 아닌, 진짜 영어실력을 키워주고 있다.

   
▲ 백씨는 앞으로 ‘밥벌이에서 자유로워지면’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고 소설쓰고 싶단다. 아내는 지금처럼 도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각자 좋아하는 삶의 방식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활로 바쁜 이 부부도 가끔 다툴 때가 있다.

“아내는 ‘let it be’ 스타일이에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세게 밀어붙이라고 다투기도 해요.”

남편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아온 이유를 모르는 듯했다. 두 시간 가까이 삶의 이야기를 들은 제3자의 관점에서 잠시 개입을 했다. “아내의 ‘let it be’ 스타일 덕분에 본인이 마음대로 사셨으면서 아이들에게 다른 기준을 세우시면 안 되죠.” “아, 이제 보니 그렇네요.” 너무 순순히 받아들이니 좀 머쓱해졌다.

백씨는 앞으로 ‘밥벌이에서 자유로워지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고 소설쓰고 싶단다. 아내는 지금처럼 도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백승권, 안선경씨는 부부가 꼭 함께 살아야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각자 좋아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부부란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서는 깊은 신뢰가 묻어나고 있었다.

 

이명혜 전문기자  mingher@hanmail.net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혜 전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