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구 수역이길 91세 박정숙 할머니
2016년 병신년 붉은 원숭이 해에 91세가 되는 박정숙 할머니는 “지금도 눈이 밝아” 책을 읽고 바늘귀에 실을 잘 꿴다. 박 할머니는 지금의 호수공원 건너편 장항동에서 태어났다. 결혼해 대장동 부근에 살던 친정언니와 시어머니 될 분의 친정식구 소개로 박 할머니는 18세에 동갑이던 강광엽(31년 전 작고)씨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친정에서는 남편이 외아들이라고 무척 걱정했었다. 그래도 얼굴도 안보고 언니 말만 듣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이 돼서야 얼굴을 봤다. 박 할머니는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혼례를 올렸는데, 신랑 얼굴을 보니 잘생겼고, 키도 커서 마음을 놓았다”며 그때의 설레었던 마음을 전했다.
혼례 후 어린 신랑은 부지런히 소로 논을 갈고 언덕배기 밭을 일구고, 동갑내기 신부는 씨앗을 심었다. 두 사람 모두 부지런한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넓힐 수 있었다. 그만큼 신바람이 났다. 그런데 둘째 딸을 낳은 직후 남편이 입대했다.
박 할머니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기다렸다”며 “연약한 여자 몸으로 비를 맞으며 풀을 베고 소를 끌고다니며 논과 밭까지 갈았다”고 회상했다. 박 할머니는 남편이 4년만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농사일과 집안일을 두루 책임졌다. 이후 군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다시 농사일을 하며 오순도순 잘 살았다. 그러던 중 환갑 지나고 한 달 있다가 집안 어르신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군 제대 후 복학생이던 아들 강효희 조합장은 가업인 농업을 잇고 있었다. 며느리 최정난씨는 “결혼해서 오니까 어머니는 그저 아들 잘 되라고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고, 보신탕도 안 드셨다”며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던 시어머니의 그때를 떠올렸다.
박 할머니는 “조합장 당선소식을 듣고 날아갈 듯이 기분 좋았다”며 “고단하고 매웠던 기나긴 시집살이를 이제 와서 다 잊게 됐다”고 환하게 웃었다.
박 할머니 슬하에는 아들·딸에 손자·손녀까지 31명의 자손이 있다. 이들은 7년째 1년에 한 번 겨울에 대형 관광버스를 대절해 박 할머니를 모시고 전국 명소를 찾고 있다. 최근엔 동해를 찾아가 가족애를 듬뿍 쌓았다. 고령의 나이에도 박 할머니가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까닭은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다.
요즘도 9시면 잠을 청하는데, 손녀딸이 초등학교 때 공부하던 ‘생활의 길잡이’ 등의 교과서를 큰소리로 읽은 후 잠자리에 든다.
아침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 후 동네 한 바퀴를 돈다. 하루 세 끼도 꼬박꼬박 챙긴다. 마당 텃밭의 풀을 뽑고 가능한 한 직접 가꾼 채소를 섭취하는 것도 즐거움이자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 중 하나다. 감기예방을 위해 직접 농사 지은 호박과 도라지 달인 것도 잘 챙겨 먹는다.
“3대가 함께 살고 있어 푸근하다”는 박 할머니는 “소리 내 책을 읽으면 정신도 맑아지고 치매 예방에도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