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책, 이젠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①

 

작년 7월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2015서울청년의회’의 모습. 197명의 청년의원들이 분과위를 구성해 의정활동을 펼치고 10대 청년의제를 발굴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달했다. (출처: 서울청년허브센터)

청년문제 해결에 지자체 나서기 시작
서울시, 전국최초 청년기본조례 제정
고양시에도 청년조례제정운동 움직임
“청년 에너지 지역에 스며들게 해야”

청년문제가 한국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청년 관련 통계와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30~54세 중장년 실업률과 비교한 청년(16~29세) 상대 실업률은 3.51배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포세대, 이케아세대, 청년실신 등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지녔음에도 온갖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한국사회 청년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답보상태에 빠진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지방정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첫발은 서울시가 내디뎠다. 2013년 청년 일자리 정책협약을 시작으로 청년허브센터, 청년기본조례에 이어 최근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는 ‘청년수당’정책까지 지자체 차원의 청년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해나가고 있다. 경기도 또한 지난해 8월 ‘경기도 청년 기본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최근 시흥시에서도 주민발의로 청년기본조례가 마련됐으며 부천시 등도 조례를 준비 중이다. 

고양시 또한 올해부터 지역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조례제정운동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지자체 청년정책의 필요성과 주요사례에 대해 연재한다.

일상이 된 주거·대출·일자리문제
“지난달에도 학자금 대출 연체문자가 두 번 왔어요. 월세도 내야하고 부모님 노후대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사실 막막하죠. 자칫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고….”


일산에 사는 신모(35세)씨는 요즘 본인의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아 지역에서 청년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신씨. 하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생계부담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청년층의 일상이 된 주거문제, 대출문제, 일자리문제 모두 그에게는 현실이자 해결해야 될 과제이기도 하다.

결혼 3년 만에 아이가 생긴 행신동 박모(34세)씨는 요즘 양육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당장 산후조리원 비용으로 쓴 돈만 450만원. 여기에 아이 옷과 분유값 등으로 나간 돈이 엄청나다. 박씨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하고 신혼집 마련하고 이제 아이까지 생기다보니 하루하루 생활이 벅차기만 하다”며 “게다가 직장도 멀고 야근이 많아서 아이 얼굴조차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도 많았지만 생계문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산동에 사는 나모(36세)씨는 동생문제로 걱정이 많다. 나씨는 “동생이 입시제도에 대한 반감이 커서 과감히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하나도 마련돼 있지 않다”며 청년실업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취업을 위해 비싼 수업료를 내며 꽃공예를 배웠지만 막상 자격증을 따고난 뒤에도 취업문이 바늘구멍이라고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자체 차원의 청년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나씨는 “일자리문제는 사실 정부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자체 차원에서도 충분히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청년뉴딜정책처럼 청년들이 원하는 직종에서 일을 배울 수 있게 지원해주고 매니지먼트를 해주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으며 박씨는 “하다못해 청년들이 서로 모여서 이야기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커뮤니티공간이라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고양시 청년정책
이처럼 고양시 청년들이 느끼고 있는 청년문제의 심각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고양평화청년회가 고양시 거주 474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절반가량(42.8%)에게 부채경험이 있었으며 21.9%는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설문에 참여했던 청년들 가운데 63.9%는 고양시 청년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고양시가 하고 있는 청년정책 자체를 잘 모른다’고 답했으며 지자체의 정책적 노력이 고양시 청년정책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1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몇 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시의 공허한 외침과는 달리 고양시 청년들의 상당수에게 이들의 청년정책은 피부로 와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서울시 청년정책협약에 참여해온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지금의 청년문제는 단순히 실업문제뿐만 아니라 주거빈곤, 저임금·불안정 노동, 부채문제 등 복잡한 조건들이 얽혀있다”며 “이를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마련보다는 청년당사자들과 행정조직이 함께 모여 정책을 생산하고 일을 할 수 있는 민관거버넌스 형태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2013년 서울시 청년일자리 정책 협약을 시작으로 서울시 청년허브센터 및 청년청 설립, 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을 거쳐 지난해 초 전국 최초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청년들의 사회혁신일자리 진입을 지원하는 ‘뉴딜 일자리’사업, 청년공간 사업,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청년 주거공동체 지원사업 등 청년들의 피부에 와닿는 지원정책들이 현재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 청년기본조례 1년을 평가하는 토론회에서 이신혜 서울시의원은 “청년기본조례 제정 이후 청년정책담당관 신설, 청년정책위원회 구성 및 운영, 2020청년정책 기본계획 수립, 청년의회 설립 등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서울시 청년인구가 244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비해 투입예산은 670억원 수준에 불과해 1조원이 넘는 노인·영유아 예산보다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라며 청년관련예산의 확대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시는 보다 실효성 있는 청년정책 마련을 위해 내년부터 약 3000명의 청년을 선정해 최대 6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공청회 거쳐 주민발의로 조례청원 예정
고양시에서도 청년거버넌스 및 정책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조례제정운동이다. 지난해부터 지역 2, 30대 청년들이 모여 ‘조례미’라는 TFT를 만들어 느슨한 형태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부터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지역의 다양한 청년단위들과 연대해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작년 9월 고양시 청년단체 모임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윤상근씨는 “청년주거, 청년부채, 청년공간, 청년일자리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청년문제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이러한 정책수립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청년기본조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고양시 청년들과 여야 시의원, 시민사회관계자들을 만나며 공론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조만간 공청회 등을 거쳐 약 2만 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로 조례를 청원할 예정이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정책은 단순히 힘든 청년들에게 응급조치를 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여지를 회복한 이들은 지역공동체에 스며들어 문화적·예술적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지역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적절한 환경과 기반이 조성된다면 청년들은 그 특유의 에너지로 지역사회혁신의 적극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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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인터뷰

“평범한 청년들의 자신감이 가장 큰 성과”

 

올해로 설립 7년째를 맞이한 청년유니온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서 청년당사자운동의 초창기모델로 평가받는다. 특히 2013년 1월 청년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사회적 교섭’이라는 틀에서 논의하고 실행하자는 취지의 청년 일자리 정책협약을 전국 최초로 체결했다. 이 협약은 세대별 노동조합과 행정기관이 체결한 유일무이한 사회적 협약으로서 이후 서울시 청년기본조례의 제정과 청년정책의 수립·시행에 좋은 선례가 됐다.
지자체 청년정책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 녹번동 청년허브센터 내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시 청년정책의 성과들에 대해 “지난 3년간 청년허브-무중력지대-청년청으로 표현되는 청년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 덕택에 청년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최근 한 대기업의 20대 명예퇴직 문제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세대는 현재가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살았지만 지금 청년세대는 미래에 대한 전망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조차 20대부터 구조조정을 당한다면 남은 출구는 사실상 공무원이나 공기업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연금개혁으로 인해 미래가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이런 상태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한 해 ‘헬조선’과 ‘흙수저’라는 단어가 유행한 것도 결국 노력해도 안되는 사회현실에서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매우 위험한 징조다. 어쩌면 지금 청년들에게는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년 일자리 협약을 맺게 된 계기는.
청년유니온이 2011년 생겨났지만 일반노동조합으로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법제도적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차에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만남이 이뤄졌고 청년일자리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수차례 논의를 거친 끝에 결국 청년유니온과 서울시 간에 일자리정책 협약문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서울시와 청년정책그룹이 만남의 자리를 지속하면서 청년주거문제, 교육문제, 공간문제, 부채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마련된 청년허브센터, 사회초년생임대주택 등 여러 정책이 이러한 청년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나오게 된 것이다.   
 
서울시 청년기본조례가 만들어진 지 1년이 흘렀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난해 10월 토론회를 통해 그간 성과를 평가하고 전망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책은 결국 예산규모로 평가하는 것인데 2016년 예산에서 청년부문이 많이 증액됐다. 그중 핵심이 청년수당이다. 그전까지는 주로 청년지원정책이 기업이나 교육기관에 지원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지난 3년간 청년허브센터 등을 중심으로 많은 청년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종의 청년생태계가 조성된 셈이다. 이제 정착상태에 온 만큼 정책결정자가 바뀐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흐름을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은.
서울시에 그동안 많은 청년정책들이 도입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만들어내고 실제 변화를 지켜본 평범한 청년들이 자신감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제 이 청년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활동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내년에는 이런 흐름을 타 지자체로 전파하는 것이 주요 활동목표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수당정책이 중앙정부의 방해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는 지자체 간의 연계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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