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청소년도서관장
중국고전 『맹자』의 ‘이루편’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할 것이 못 되며, 스스로 버리는 사람과는 더불어 일할 것이 못 된다.”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은 ‘자포자(自暴者)’를, 스스로 버리는 사람은 ‘자기자(自棄者)’를 번역한 말로,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출처가 되는 구절이다.

이어 맹자는 자포와 자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을 열면 예와 의를 비난하는 것을 ‘자포’라 하고, 자기 자신이 능히 어진 일을 할 수 없고, 의로운 길로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자기’라고 한다.”

세상에 선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이 자포(自暴)이며, 나는 못한다고 지레 고개 젓는 것이 자기(自棄)이다. 자포자기한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고, 일도 같이 하지 말라는 맹자의 고언이 씁쓸하다.

왜인가? 요즘 젊은 세대를 ‘N포 세대’라 말하기 때문이다. 취직포기,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쭉 이어지다보면 국가포기를 선언하고, 결국에는 인간포기와 생명포기까지 이야기된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쓴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것이 청년들의 허황된 욕심과 박약한 의지 때문인가? 2500여년 전 맹자의 비판을 오늘날 청년에게 적용해도 되겠는가?

탁월한 자가 성공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성공의 자기경영법과 인문학이 유행이다. SKY로 시작되는 학벌의 한 줄 세우기와 재벌과 대기업-중소기업-하청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의 한 줄 세우기, 서울-경기-지방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한 줄 세우기는 모두 성공신화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환상구조이다. 세계질서를 선진국-중진국-후진국으로 정리하는 것 역시 같은 습속이다. 5%가 나머지 95%를 먹여 살린다는 참담한 논리가 지금도 기세등등하다.

하지만 현실을 보라. 95%가 뼈빠지게 일해서 5%를 배불리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선성장 후분배라는 경제논리나 일단 경제를 살려야 복지나 고용이 가능하다는 낙수효과는 이미 실효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자본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업의 성장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성공과 성장신화에 몸을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나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라는 예수의 오래된 지혜를 믿는다. 이 지혜의 문장에서 ‘안식일’의 자리에, 학교, 기업, 국가를 넣어도 의미는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해진다.

기실 민주주의는 탁월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귀족들의 특권에 저항하고, 권리 없었던 자들이 싸움으로 얻어낸 제도이다. 탁월자의 성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가 민주주의사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민주주의사회가 아니다. 왜 평범한 사람은 행복해서는 안 되는가? 이 평범한 질문이 절실해진 시대이다. 탁월자의 성공욕망을 종식시키고, 그들의 성장신화와 제도를 무너뜨릴 때, 평범한 자들의 행복한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아직 청년세대의 포기는 이르다.

N포자여, 궐기하라.
그대가 잃을 것은 성공이지만, 얻을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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