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봄이 지척에 놓였다. 이맘때면 도시농부들은 경작본능이 꿈틀대면서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삼월 하순에 감자를 심고나면 냉이를 비롯해서 쑥이며 명아주며 망초며 꽃다지 등속의 봄나물들도 일제히 머리를 내민다. 작년에 씨를 뿌려두었던 월동시금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봄 농사를 짓기에 앞서 퇴비도 다 받아놓았고 멀칭용으로 쓸 낙엽도 십 톤 넘게 받아두었다. 구청 청소과에서 실어다준 낙엽을 바라보면 아랫배가 든든하다. 낙엽이 넉넉하면 한 해 농사가 참 편하다.

풀과 씨름하기가 싫어서 다섯 평 농사에도 검정비닐을 씌우는 이들이 흔전만전한데 낙엽을 두툼하게 덮어주면 풀이 맥을 못 춘다. 뿐만 아니라 습도도 유지해줘서 가뭄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흙을 살리는데도 그만이다. 낙엽을 덮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들춰보면 하얀 실처럼 뻗어나간 방선균을 볼 수 있는데 방선균은 항균물질을 만들어내고 유용한 미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낙엽은 그 자체로 퇴비의 역할도 하는데 숲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산은 퇴비를 뿌리지 않아도 울울창창하다.

어떤 이들은 가로수에 농약을 친다하여 사용을 꺼려하는데 미생물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초제에 찌든 땅도 삼년만 묵히면 미생물들이 그 독성을 완벽하게 분해한다.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밭을 둘러보면 숲길을 거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삼년만 낙엽으로 멀칭을 하면 흙이 폭신폭신해진다. 손으로 만지면 그 촉감이 몽글몽글하고 냄새를 맡아보면 머리가 맑아질 정도로 상쾌한 냄새가 훅 끼친다. 그런 흙에서 자란 작물은 병해충에도 강하고 맛도 뛰어나다. 노인들은 옛날 맛이 난다며 신기해한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낙엽이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미관을 해친다하여 공원의 낙엽까지도 떨어지는 족족 쓸어 모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소각을 한다. 사물의 가치를 따지는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낙엽을 훌륭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텐데도 고정관념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흙을 죽이는 검정비닐은 아직도 농사의 혁명으로 떠받들어지고 농약을 쓰지 않으면 농사 망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웰빙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농산물을 고를 때에는 크고 번듯한 쪽으로 손을 뻗는다. 일껏 배추농사를 지어놓고도 속이 차지 않았다하여 수확을 포기하는 풍경도 일상다반사다. 배추로서의 가치가 없다하여 쌈으로 먹거나 우거지로 만들 생각조차 버린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상대적 가치를 따져보지도 않고 고정된 관념을 절대화한다. 사람도 그런 식으로 대할 때가 많다. 이러저러한 사람은 훌륭하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못나고 불필요한 존재라는 평가를 무심코 마음에 새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텃밭에서 흙을 일구다가 가슴 속 깊숙이 똬리를 튼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씁쓸하다. 딴에는 마음을 비우고 겸허하게 살자고 강다짐을 해왔지만 아직도 참으로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입맛이 쓰디 쓰다.

농장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낙엽을 보면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질문을 던져보지만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열심히 살면서 두고두고 풀어야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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