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백호 회산서당 원장
강화 농가에서 자려는데 “부엉 부엉”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부엉이 소리라 반가웠다.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새는 춥다고 우는데 우리는 할머니 곁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는 동요를 떠올리며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았던 고향집을 생각했다. 얼마 뒤 가족이 모였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작은 딸아이가 “요즘 부엉이를 캐릭터로 하는 관련 용품이 인기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딸아이도 “부엉이는 고대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가 황혼녘 산책을 즐길 때마다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기에 지혜를 상징하게 되었대요.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공부잘하라고 부엉이 캐릭터 선물을 많이 해요”라며 말을 보탰다.

예전의 학습지나 도서 등에 캐릭터로 사용된 사각모를 쓴 부엉이가 떠올랐다. 안경을 끼고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부엉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를 활용한 것 이다. 지혜로운 이미지의 부엉이를 흔히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하는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프리드리히 헤겔의 말은 경험을 통한 평가를 대변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하루를 겪어 보고 황혼녘에 평가하는 것이 지혜로운 평가라는 식으로 평가를 뒤로 미루고 일이 끝난 다음에 평가해야 된다는 주장에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인용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의 기미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동양의 주역적 관점과 비교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좋고 나쁨을 판별해 좋은 길로 나아가야 된다는 동양의 지혜와 일단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좋고 나쁨을 평가해야한다는 서양의 지혜에 우열을 논하는 건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일과 사안에 따라 상호보완적인 지혜라 해야 맞을까! 서양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통하는 부엉이는 우리나라에선 지역에 따라 길조와 흉조로 각각 다르게 인식되어 오고 있다.

흉조로서의 부엉이에 관한 속담에 “부엉이가 울면 초상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음력 10월에 부엉이가 울면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악질이 도는 등 시끄럽고 불길한 일이 생기며 이듬해에 농사도 흉작이 된다고 전해 오는 곳들이 있다.

반면에 길조로서의 속담은 주로 재물과 관계있는 것들로, “부엉이가 동네 앞에서 울면 이바지가 들어온다”거나 “부엉이가 울면 이듬해에 바닷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믿는 곳도 있다. 부엉이가 울면 부엉이가 먹을 것을 잘 찾아오듯이 먹을 것이 생기고 재물이 모인다고 믿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길조와 흉조로 보는 것은 서양과 동양으로 나눠 보더라도 상반된 것 같다. 서양에서는 부엉이에 대해 지혜를 상징하는 새로 인식하였지만 동양에서는 도리어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새로 인식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례가 ‘휴류왕’이다. 부엉이를 한자로 ‘휴류’라고 하는데 거기에 왕이 붙었으니 우리말로 하면 ‘부엉이 왕’이다. 부엉이 왕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광해군이 역사와 시녀를 뽑아서 뇌물로 받은 은을 날마다 짊어지고 오게 했는데, 힘이 부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광해군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나를 살릴 물건이다’라고 했는데, 대개 그 뜻은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오면 뇌물을 주어 그들을 물러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궁과 숙의 무리가 모두 훔쳐 가버리는데도 알아채지 못하였으므로, 궁중에서는 휴류왕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휴류왕이란 밤눈에는 밝지만, 낮에는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궁인들이 은을 훔쳐가도 광해군이 몰랐다는 이야기인데, 광해군의 어리석음을 빗대어 부엉이 왕이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해군은 왕위를 훔쳐가는 것도 몰라서 결국 왕좌까지 빼앗긴 왕이 되었다. 마치 눈이 있어도 대낮에 사물을 바로보지 못하는 부엉이처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바로보지 못한 결과였다.

광해군의 예에서 보더라도 사물을 바로보지 못해 상황판단이 흐려지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과는 직결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보는 것만 보이고 듣는 것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에선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곧 사물을 보고 듣는 것은 마음을 두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눈앞에 어떤상황이 펼쳐져 있더라도 그것을 보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의 눈엔 그 상황이 보이지 않고 그것을 들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의 귀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상황을 바로 보고 바로 듣는 것은 능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있고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사람일지라도 어리석어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가다듬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로 보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곧 눈앞에 펼쳐진 현 상황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세태를 볼 때 참 실상과 겉도는 견해들이 옳은 견해보다 도리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엉이를 길조로 보면 길조가 되고 흉조로 보면 흉조가 된다.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도 마음 두기에 달렸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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