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정치의 다양성 넓힌 선거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달라져있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의 말이 아니다. 이번 20대 총선은 ‘심판, 반란’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180석이 나올 것이라는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달리 새누리당은 과반수도 안 되었을 뿐아니라 심지어 더민주당보다도 의석이 적게 나오는 참패를 당했다. 이는 불통과 오만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고, 진박과 친박이 이전투구하는 공천파동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의 새누리당을 향한 심판이라고 이미 많은 언론에서 언급했다. 이뿐 아니다. 호남은 더민주당을 심판했다. 이제껏 더민주당의 중심 지지세력이었고 항상 몰표를 주었건만 희망과 대안세력으로의 비전도 없고 전국 정당화를 이유로 호남을 홀대해온 것을 심판하는 선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른 변화를 주목해보고 싶다.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가 좀더 다양성의 사회로 나가고 있다는 희망의 조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언제나 표를 몰아주던 전남북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되고, 부산과 대구, 경남 등 새누리의 텃밭에서 8명의 더민주당이 당선된 일은 그동안 지역연고에 매몰되어 투표했던 극단의 경향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징조라고 보고 싶다. 또한 호남당이라는 오해를 받고 전통적인 더민주당 텃밭인 광주와 전남, 전북이 대부분 국민의당을 지지했고, 오히려 더민주당은 서울과 수도권을 장악하면서 전국당의 면모를 보였다. 이것을 지역적 연고에 고착된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너무 낭만적인 관측일까? 비록 정의당 2석 외에 녹색당이나 노동당 등 군소정당이 당선되지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이들 정당의 수용력이 높아졌고 정치적인 기반을 축적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본다. 선거 막바지에 몇몇 사회인사들이 펼쳤던 “지역구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정당은 자신이 좋아 하는 정당을 찍자”는 캠페인도 양당구조의 이분법적 선택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좋아서 선택하기보다 미워서 선택
이번의 선거에서 더민주당의 승리는 그들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환멸에 대한 반사이익 때문이다. 실제 세월호 문제, 역사교과서, 정신대 문제, 개성공단 문제 등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사회를 뒤죽박죽 만들 때마다 이에 대항하는 더민주당의 대응은 지리멸렬해서 지지율이 바닥이었던 때가 불과 선거 몇 개월 전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그러다 선거 때가 되면 항상 그렇듯이 반여당전선의 총집결을 강요하며 자기중심으로 군소정당들과 단일화를 압박해왔다. 특히 이번에 많은 정객들이 단일화를 거부하는 국민의당을 비방하고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일은 이후 야권연대에 부정적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까지 더민주당은 친노들에 의해 장악된 운동권정당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곧 실력도 없이 현실보다는 이념에 기반하면서 전형적인 이분법과 자기중심적 배타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 더민주당이 수도권의 압도적 지지에 취한 채 깊은 자기반성 없이 넘어간다면 이후 더민주당에게 대권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번 호남에서 심판이 오히려 좋은 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선택지 높인 국민의당, 정책실력 보여야
이번 선거에 가장 큰 승리자를 안철수와 국민의당으로 평가한다. 실제 양당체제의 극복을 이루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가치사이에 다른 선택지를 가질수 있게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지역구에서 4배나 많은 의석을 얻은 더민주당과 정당득표율이 동일하게 나온 것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정치적으로 점검이 끝난 정치세력이라기보다 처음부터 가치의 상징이자, 희망적 기대에 기반한 추상적 가능성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 역시 더민주당이 싫어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따라서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어떻게 조직적 통합력을 높일 것인지, 또 중도를 아우르는 정책과 구현수단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가 향후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의당에 몰표를 준 호남주민들의 성향이 과연 국민의당의 중도적 입장에 지속적으로 지지를 보내줄 것인가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지지를 통해 선택한 투표에 비해 누군가가 미워서 반사적으로 선택한 투표는 어쩔 수 없이 충성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일단은 선택했지만 언제나 의심과 불신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고 여차하면 등을 돌릴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방법은 정책적 실력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부지런히 손발로 뛰면서라도 감동을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 한국사회의 정치가 감화와 감동을 주는 예술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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