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 만드는 옥종근씨

피노키오가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내게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어 작은 나무 손을 잡아 주니 허리 숙여 인사까지 한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뼈만 앙상한 티라노사우르스가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며 어기적 어기적,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더니 연필을 들고 있는 내 손가락을 앙! 깨물고 간다. 어이쿠!


매끈하게 몸매를 다듬은 수영선수가 유려하게 버터플라이를 하며 한 바퀴 돌고 퇴장하자 이어서 기타를 멘 아티스트가 현란하게 몸을 흔들며 기타를 친다. 내 눈 앞에서 작업실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줄인형 마리오네트들을 만나고 나니 인형을 인형으로 볼 수가 없다. 언제고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명이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줄인형, 마리오네트. 기원전 이집트나 그리스의 아이 무덤에 끈이 연결된 인형이 함께 묻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교회에서 어린이 교육을 위해 끈이 달린 인형으로 공연을 하면서부터다. ‘마리오네트’라는 이름도 성서 속 ‘동정녀 마리아(Mary)’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자리잡은 지하 작업실공방에서 마리오네트를 창조하는 ‘제페토아저씨’ 옥종근(53)씨를 만났다. 마법과인형극단 대표인 그는 “사람 만나는 것 별로 안 좋아하고, 공연 다니는 것도 안 좋아해요. 공연 앞두면 긴장하게 되잖아요. 여유를 갖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게 돼서…”라고 부산 사투리로 말한다. 마리오네트를 만드는 일이 살림에 큰 보탬이 될 만한 일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우리 집 가훈이 세 끼 밥에 만족하자예요. 그 이상의 것이 주어지면 감사한 거죠. 빌딩지어 뭐 하려고요. 그런 욕심만 버리면 인생을 여유롭게 살 수 있어요. 사실은 삶에 가장 필요한 건 다 갖춰져 있는데, 더 욕심을 부리는 거죠.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란다. “이만하면 됐다 아이가!” 라고 말하는 영화 속 부산사나이 같다. 

옥 대표가 마리오네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히다. 중학교 때 조각을 하던 삼촌이 조각칼 가는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건 거기서 그쳤고, 군대 제대 후인 1992년 고향 부산에서 살 때 인형극단 단원모집 광고를 보고 단원이 됐다. 1년 가까이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그후 자신만의 극단을 갖게 됐고, 소극장에서 인형극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무인형을 접하게 됐어요. 매력에 푹 빠졌죠.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고, 도서관 다니며 자료를 찾아도 자료가 거의 없던 시대였죠. 독학으로 공부했고, 시행착오도 꽤 겪었어요.”

줄인형은 움직임이 제일 중요하단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려면 관절을 잘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제작 도구도 직접 만들었다. 비용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줄인형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게다가 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관심 보이는 사람들은 많은데 먹고 살기 바빠서 선뜻 시작하기 어려워하죠. 언제든지 오픈해서 가르쳐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재능기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답다. 옥 대표는 1년에 몇 번 정도 공연을 하거나 전시를 한다. 적극적으로 공연을 기획하지도 않고, 더 많은 요청이 들어와도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관절이 살아 있는 ‘인형들을 모시고 움직이는 일’이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봤을 뿐인데도 수영을 하며 지나갔던 마리오네트의 신비한 움직임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함박웃음을 선물해줄 만한 이 공연을 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5월 5일 어린이날 호수공원에서 마리오네트들을 만나고 싶다.

욕심 없이 평온한 세상을 살아가려는 그의 마음이 인형을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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