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미래교육포럼 초청 강연회 -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 김응교 교수가 윤동주의 동시 ‘해바라기 얼골’을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동시 시인으로서 윤동주를 주목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실천 바탕이 된 자기성찰 시인

 
사단법인 행복한미래교육포럼(대표 최창의 전 교육의원)이 지난 21일 고양교육지원청에서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의 저자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초청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강연은 김 교수가 쓴 윤동주(1917~1945)에 대한 책『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에 담긴 진실한 삶과 시의 세계를 깊숙하게 접할 수 있는 내용으로 준비됐다. 김 교수는 시대의 아픔과 사람의 아픔이 가득했던 일제치하 삶 속에서 윤동주 시인이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배경을 참석자들과 함께 읽고 느꼈다.

일본에서 비교문학 등을 공부한 김 교수는 ‘지리멸렬한 시대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던 큰 고요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는 말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존경을 표한 바 있다.

최창의 대표는 “이번 강연은 영화 ‘귀향’, ‘동주’ 등과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졸속 합의에 따른 우리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자리”이라며 “윤동주 시 곁에 다가가 영원한 진리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전했다.

김 교수는 이날 윤동주 시인을 ‘디아스포라 시인’이라는 점과  ‘동시 시인’이라는 점에 주목해 강의를 펼쳤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호주머니’, ‘반딧불’, ‘나무’ 등 동시에 주목하며 이 동시를 손수 기타를 치며 청중들과 함께 노래 부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윤동주 시인은 만주 ‘명동’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때부터 북간도로 이주해 살았던 실향민의 후손이다. 경성으로 가서는 고향이었던 만주 명동마을을 그리워했고, 이후 일본 유학시절 때는 조국을 가슴에 품고 울었다”며 “그런 면에서 그의 삶은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한인 이민자들과 정서적 영역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으로 가두지 말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자세를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실천할 때 진정한 그의 의도가 전해질 것”이라며 “윤동주를 읽고 아무런 실천이 없다면, 윤동주를 단지 유행의 한 가지로 소비하고 즐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날 동시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면모도 밝혔다. 넣을 것 없어 / 걱정이던 / 호주머니는 // 겨울만 되면 / 주먹 두 개 갑북갑북. 1936년 12월에서 1937년 1월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윤동주의 동시 ‘호주머니’ 전문이다.

김 교수는 이 시에 대해 “‘갑북’은 ‘가뜩’이라는 의미의 평안도 방언이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모자랐던 시대에다가 추운 겨울인데도 소년은 주먹 두 개만 넣어도 자신감이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일상을 주먹 두 개로 견뎌내는 자신감으로 시인은 독자를 위로한다. 염려도 절망도 ‘주먹 두 개 갑북갑북’이라는 해학으로 녹여버린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이러한 면을 김 교수는 ‘서러움이 있는 명랑성’이라고 표현했다. 

강의 말미에 김 교수는 “윤동주는 엄청난 독서와 진지한 삶의 자세로 지리멸렬한 시대에 진지하게 응전했던 젊은이였다”며 “윤동주의 시는 독자들에게 참혹한 시대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이겨내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 시인의 사촌형인 송몽규를 언급하며 “송몽규는 윤동주를 격려해준 친척 형으로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들을 다니고, 함께 감옥에 투옥되고, 끝내는 나란히 묻히게 되는 이 둘 사이를 보면 아름다운 친가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혹시 여러분들이 송몽규와 윤동주의 묘소에 갈 기회가 있다면, 윤동주의 묘 앞에서만 묵념하지 말고, 그 왼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송몽규의 묘 앞에서도 오래오래 묵상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