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자유농장은 요즘 고랑을 낙엽으로 덮느라 한창 바쁘다. 십 년 가까이 주말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 밭을 만들 땐 고랑을 평년과 달리 깊이 팠다. 고랑을 낙엽으로 가득 채워서 틀밭을 만들기 위함이다. 낙엽을 채우는 일이 고되기는 하지만 올 가을농사부터 무경운 농법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절로 흥이 난다.

입하(양력 5월 6일) 지나서 열매채소 모종을 심고 난 뒤에는 두둑에도 낙엽을 두툼하게 덮어줄 요량이다. 그러면 자유농장의 밭 전체가 낙엽으로 뒤덮이게 된다.

우리는 농장을 얻을 때부터 소위 날로 먹는 농사를 목표로 내세웠다. 밭도 갈지 않고 풀과 씨름도 하지 않으면서 이따금씩 웃거름이나 줘가면서 수확을 즐기는 농사,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물론 그런 농사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고 그 출발점이 낙엽을 활용하는 일이다.

그런데 감자농사를 지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자유농장을 얻을 때 그 자리에서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온 노인 세 분이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해왔다. 밭을 일구다보면 흘린 땀방울만큼 밭에 대한 애정이 쌓인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온 텃밭에 대한 노인들의 애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들은 선선히 그러시라고 배려를 했다.

그런데 봄이 되자마자 노인들은 밭에 검정비닐부터 씌웠다. 사전에 우리가 추구하는 농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낙엽을 활용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전달할 때만 하더라도 노인들은 고개를 주억거려가며 그런 방법이 다 있었느냐고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고랑에 낙엽을 채울 때에는 노인들도 고랑에 낙엽을 채웠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이 비닐 씌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풀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사월이 되자마자 두둑을 검정비닐로 덮어버린 것이다. 아뿔싸,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순간적으로 괜히 분양을 해줬다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비닐을 걷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다고 협박을 해볼까, 못 본 척 있다가 가을농사가 시작될 때 비닐을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를 해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올해에만 농사를 짓도록 하고 내년에는 분양을 하지 말아버릴까, 농장에 나갈 때마다 온갖 상념이 들끓었다.

그러다가 문득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자유농장을 얻은 건 농사를 매개로 다양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공동체를 꿈꾸면서 우리와 다르다고, 우리의 방식에 따르지 않는다고 내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물론 우리의 관점과 입장에서는 비닐을 허용할 수가 없다. 그런데 노인들이 비닐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함이 아닌 당신들의 삶의 한 방식이고 무엇보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결과를 몸으로 보여주면서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참다운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게 공동체라면 노인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함께 가는 방식을 찾아보는 게 올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검정비닐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 짜증과 불편을 참고 견디는 것도 공동체를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쪽으로 자꾸만 마음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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