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농부학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출범을 했다. 학교를 하나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정의 열악함은 둘째치고 관계된 모든 이들이 헌신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궤도를 이탈하기 십상이다. 작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고양청소년농부학교가 1기생을 무사히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강사진들의 열정과 희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농사를 매개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여러 어려움들을 이겨내기가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경험을 찬찬히 돌아보면 아이들은 텃밭에 풀어놓기만 해도 스스로 성장한다. 농사가 생명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또한 마찬가리자 작물을 심고 돌보다보면 생명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한 번은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살인자가 나타났다며 나를 텃밭으로 잡아끌었다. 텃밭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배추밭에 우우 몰려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줄기가 똑 잘려나간 배추모종을 가리키며 살인자가 나타났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배추모종이 잘린 곳의 흙을 파서 거세미나방 애벌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에게 관찰을 시켰다. 아이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열여섯 살이나 된 아이들이 배추모종 하나 죽었다고 살인자가 나타났다며 펄쩍펄쩍 뛰던 순수함이라니,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텃밭농사를 짓다보면 노동의 참된 가치도 배우게 된다. 소비자로만 살아온 아이들이 생산자의 입장에 서면서 노동이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하는 것이다.

작년에 있던 일이다. 텃밭농사를 마친 중학생 하나가 앞으로 절대 급식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작물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이제껏 자신이 먹어온 음식이 농부의 수고로움에서 나왔다는 걸 몸으로 깨우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텃밭에서 맺는 관계이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맺는 관계는 대부분 경쟁관계이다. 끊임 없이 경쟁을 강요받고 길들여진다. 경쟁관계는 필연적으로 자아를 해치고 타자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며 아이들이 맺는 관계는 협력과 상생의 관계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다. 육 년간 다양한 아이들과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제까지 아이들이 텃밭에서 다투거나 싸우는 모습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싸우기는커녕 이제껏 따돌려온 아이를 무리 속에서 보듬어 준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아이는 스스로 치유해낼 수 있는 아이로 변한다. 학교에서 ‘짱’으로 군림해온 아이는 아이다운 순수한 모습을 되찾기도 한다.

청소년농부학교를 이끌어오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의연히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이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사명감을 심어주었고 그래서 올해에도 어려운 여건에 개의치 않고 청소년농부학교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올해 청소년농부학교는 경기도교육청이 주최하는 ‘꿈의 학교’에 선정이 되어서 참가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참가신청은 cafe.naver.com/goyangyoungfarmer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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