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만 인권운동가
경찰이 대부도 방조제에서 발견된 ‘시신 훼손사건’의 피의자 조모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후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잔혹 범죄를 저지른 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이자 ‘비난받을 행위를 저지른 자가 비난받는 당연한 일’이라고 옹호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검거된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 공개가 무슨 긍정적 효과가 있냐’며 오히려 공개된 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또 다른 피해만 보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논쟁은 처음이 아니다. 그간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일각에서는 검거된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라고 경찰에 요구해 왔다. 하지만 경찰의 판단은 그때 그때 달랐다. 공개와 거부가 뚜렷한 이유없이 반복되었다. 우리를 경악케 했던 시신 훼손범 오원춘과 박춘봉 등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반면 비슷한 반사회적 범죄 행위자였던 서초동 세모녀 살인사건 강모씨와 전처 소생의 어린 아들을 학대 끝에 죽인 뒤 암매장한 원영군 계모 김모씨는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개된 사건이나 그렇지 않은 사건이나 사회적 비난 정도로 견줘 본다면 큰 차이도 없는데 그렇다.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그렇다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결정은 누가 하며 이는 어떤 법률에 근거한 것일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의하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며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때’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수 있고, 다만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하고 있다. 하지만 모호한 기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관련 법률은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면’ 공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증거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권한은 오직 법관에게만 있다.

따라서 법관에 의한 유죄 확정 이전까지 대한민국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누구에게나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특강법은 재판에 회부할지 말지도 결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수사담당자의 판단만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판사 역할까지 다 해 버리는 꼴이다. 더구나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에도 ‘사실은’ 오심에 의한 피해자가 드러나는 현실에서 재판 절차도 없이 ‘이 사건 범인이요’라며 공개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누군가는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냐”며 반론하기도 한다.
분명하게 밝힐 것은 누구도 흉악 범죄를 옹호하고자 하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권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인권은 군사 쿠데타와 같은 급변 상황이 아니고서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조용히 하나씩 무너진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무너지면 또 다른 하나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나씩 무너진 인권은 종국적으로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게 될 때 진짜 인권 피해자는 누가될까. ‘우리가 비난하는 흉악범이 아니라’ 선량한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역사속에서 확인된 진리다. 인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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