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이정범 한국전통가옥협회 회장

▲ 이정범 한국전통가옥협회 회장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선유동 비닐하우스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들의 그야말로 박람회장이었다. 그는 전통가옥 미니어처 만드는 일에 ‘인이 박혔다’고 할 만큼 17년간 이 일에 몰입해왔다.

34년 전통가옥 미니어처 만들어
선유동 비닐하우스에 작품 들어차

 
덕양구 선유동의 낡고 허름한 비닐하우스 안. 그곳에는 고양시를 비롯 전국의 내로라하는 전통가옥을 정교하게 축소해 만든 미니어처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고양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가집인 정발산동의 밤가시초가, 원래 벽제관에 있다가 일본에 빼앗겨 환수운동의 대상이 된 육각정, 권율 장군을 모신 행주산성의 충장사, 고양향교 등이 놀랄 만큼 정교하게 축소된 작품들로 재탄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초가삼간이 모형 제작됐는가 하면 초가삼간 안에서 아낙이 맷돌 돌리는 모습, 마당에 닭들이 노니는 모습 등 정감 있는 옛 풍경이 미니어처로 재현되기도 했다.

또한 중요민속자료인 가옥들도 25대 1의 축소모형으로 볼 수 있었다. 조선말기 명성황후 민씨가 피난처로 지었다고 전하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백수현 가옥, 고종때 공조참판을 지낸 김향연의 후손인 괴산 김기응의 가옥, 국산 소나무·황토·해초·볏짚·전통한지·참숯 등의 재료로 전통귀틀집 시공방법을 이용해 만든 유의영 가옥 등이 그 예다.

크기가 축소됐을 뿐 비닐하우스는 기와집·너와집·굴피집·초가집·청석집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들의 박람회장이었다. 그야말로 ‘축소된 전통가옥의 제국’이라 할 만 했다. 무려 3개동의 비닐하우스에 손수 만든 고풍스러운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빼곡히 채워넣은 장본인은 이정범(62세) 한국전통가옥협회 회장이다. 이 회장은 34년 전부터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만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업으로 삼은 것은 17년 전이었다.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을 그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 상업화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전시공간이나 샵(shop)을 마련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문화재’로 대접받게 하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크기가 축소됐을 뿐 비닐하우스는 기와집·너와집·굴피집·초가집·청석집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들의 박람회장이었다.

미니어처, 옛집에 대한 향수 풀어
“제가 34년 동안 이 미친 짓을 하고 있어요. 제자들로부터 ‘선생님은 왜 인간문화재가 못되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했어요.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만드는 것으로 인간문화재가 되기에는 관련 조례나 법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 일이 하는데 인이 박혀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전통가옥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전통가옥 속에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숨어있습니다.”

이 회장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우리민족과 함께 진화해온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었다. 나아가 산, 바다, 들에서 채집된 원재료와 사계절을 견디고 단련된 재료들로 만들어낸 전통가옥에 깊이 배인 한민족의 애환과 지혜였다.

이 회장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통가옥의 종류와 그 건축기법을 연구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전통가옥협회가 관리하는 전통가옥모형 제작 전문가를 양성하는 민간 자격 등록증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아파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면서 옛날 어린시절 살았던 전통가옥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어요. 분명 전통가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데 이 향수를 해소할 방안이 없어요. 전통가옥을 실물모양으로 새로 짓기는 어렵지만 전통가옥 미니어처는 공간적 제약이 적고 비용도 적게 드니 제작이 용이해요. 집에 대한 향수도 어느 정도 해갈할 수 있어요. 분명 전통가옥 미니어처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 이정범 회장은 "“한옥은 혼으로 만듭니다. 기계로 만들어 흉내 낸다고 한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전통가옥 교육하는 전시관 마련이 꿈
이정범 회장이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은 “손수 제작한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통가옥을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전통가옥 박물관이 없어요.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마련해달라고 수없이 정부 등 관계부처에 제안을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전통가옥과 더불어 계절마다 연출되는 움직이는 전시관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새가 우짖고, 눈이 오고, 꽃이 만발하고, 곡식이 익어가는 사계절을 연출하는 전시관 말이죠.”

이정범 회장은 1999년 강원도국제관광엑스포, 2000년 세계관광박람회, 2011~2015년 고양국제꽃박람회 등에 작품을 출품해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박람회가 끝나면 작품들을 싣고 다시 비닐하우스에 옮겨놓는 작업을 되풀이 했다.

“저의 조부가 대목장이었어요. 어린시절 한복을 입고 목수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어요. 할아버지가 길 가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어요. 대목장이 가지는 위엄성 때문이었죠. 할아버지를 닮고 싶어서 집에 와서 작은 집을 짓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어요. 제 솜씨를 눈여겨 본, 역시 대목장인 친구 아버지와 같이 일하게 됐는데 틈만 나면 미니어처를 만들었어요.”

이 회장이 밝힌 34년간 전통가옥 미니어처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물론 이 회장의 주업인 건설업이었다. 그는 90년대 건설경기 붐을 타고 많은 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결국 부도로 17억 정도의 빚을 지기도 해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역경이 와도 전통가옥 미니어처 만드는 일은 그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증작업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면 짧게는 20일, 길게는 한 달 걸리는 이 작업에 그는 거의 미쳐서 매달리다시피 했다. 이 회장은 전통가옥 미니어처 만드는 일에 “제대로 미쳐 본 일이 딱 두 번 있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제대로 미쳤다’고 하는 것은 전통가옥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대체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몰아일체의 상태라고 했다. 그는 딱 한 번 만 더 미쳐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옥은 혼으로 만듭니다. 기계로 만들어 흉내 낸다고 한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 가옥을 실측을 일일이 하고 실측한 데이터를 가지고 축소비율을 적용하지만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측 데이터를 조정해 축소하기도 해요. 정교하게 만들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잘 만든 미니어처는 정교함은 물론 옛 것의 흔적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경지까지 닿아야 합니다. 약간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옛 정취가 묻어나야 제대로 된 작품이죠.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라면 말이죠.”

▲ 정교하게 축소된 고양향교,

 

▲ 고양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가집인 정발산동의 밤가시초가. 정교함에다 옛스러움까지 표현된 솜씨에 놀라게 된다.

 

▲ 원래 벽제관에 있다가 일본에 빼앗겨 환수운동의 대상이 된 육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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