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수 소설가
토마토농사를 지어온 지 올해로 팔 년째다.

첫 해에 토마토 네 주 심은 것을 시작으로 그 양이 점차 늘어나서 올해에는 찰토마토 팔십 주와 방울토마토 이십 주를 심었다. 양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키우는 방식도 해마다 달라졌다.

토마토는 순지르기를 해서 키우는 게 정석이다. 주말농장에서 열 평 내외의 농사를 짓는 이들 뿐만 아니라 시설재배를 하는 전업농들도 일제히 곁순을 제거한다. 곁순을 제거하면 토마토가 크게 달릴 뿐만 아니라 키우기도 용이하다. 곁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곁가지들이 넝쿨처럼 뒤엉켜서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럴 때 초보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토마토 밭을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상식을 좇아 곁순을 모두 제거하고 토마토를 키웠었다. 그러나 두어 해가 지나면서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곁순을 잘라낼 때마다 토마토가 얼마나 아파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못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순지르기를 하지 않고 토마토를 키우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책을 사 모으고,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나 순지르기를 하지 않고 토마토를 키우는 사례가 없어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나는 토마토 밭에 2m 길이의 지주대로 직사각형 틀을 세웠다. 그리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토마토 곁순들을 하나하나 노끈으로 붙잡아주었다. 보는 사람마다 농사를 망치네, 마네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상식에 어긋나든 말든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토마토를 키우는 방법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새로 순이 올라오는 족족 노끈으로 잡아주다 보니 수십 가닥의 노끈이 틀을 가득 메우다시피 했는데 그 풍경이 꽤나 우스꽝스럽긴 했다. 그러나 토마토가 자라면서 곁가지들이 뒤엉킴 없이 위로 쑥쑥 머리를 내밀면서 질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곁가지들이 우람하게 몸을 불리기 시작하자 토마토 밭이 숲처럼 보였다. 토마토가 달리는 걸 관찰해보니 곁순을 제거한 토마토에 비해 씨알이 잘기는 했지만 가지마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리는 바람에 수확량은 더 많았다.

그러나 순지르기를 하지 않은 진가는 장마철에 빛을 발했다. 장마철이 되면 갑자기 많은 양의 수분이 공급되면서 토마토들이 죄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곁가지를 제거하지 않은 토마토는 무성한 가지들이 수분을 나눠가지면서 장마철 내내 토마토들이 멀쩡하게 익어갔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터진 토마토를 밭에 버리는 동안 탱탱한 토마토를 원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곁순을 제거하지 않은 채 토마토를 키워왔다. 물론 순지르기를 하지 않고 토마토를 키우자니 노끈으로 곁순을 일일이 잡아주는 작업이 꽤나 귀찮고 성가시다는 단점은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고민 끝에 직사각형 틀에 축구골대 그물망처럼 생긴 오이망을 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곁가지들이 그물망에 몸을 걸치면서 스스로 질서를 잡아준 덕분에 노끈을 묶는 노고를 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웃거름이나 이따금씩 주면서 수확을 즐길 일만 남은 셈이다.

그물망 밖으로 무수한 가지를 내밀며 무럭무럭 자라는 토마토들을 보면 상식을 버리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식을 좇았더라면 그 틀에 갇혀서 새로운 시도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상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당연한 것들이 안겨주는 편안함을 버리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때 삶은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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