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1년 단기 대안학교 열일곱인생학교

▲ 열일곱인생학교 학생들과 대학생 멘토가 특정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있다.

“꿈이 없어요. 전 제 모습이 싫어요”
그래서 시작하는, 1년간의 인생설계

 
고양시 마두동 주택가에 올해 초 작은도서관이 하나 더 생겼다. ‘정발산 마을도서관’이다. 그런데 간판에는 도서관이라는 이름 외에 ‘열일곱인생학교’라는 의미심장한 글자도 함께 쓰여 있다. 이곳은 마을도서관을 겸한 소규모 대안학교다. 특이한 것은 그 과정이 1년이라는 것.

1년 단기 과정의 대안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 찾아가본 마두동 주택가. 오후 2시쯤 찾은 그곳엔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 오밀조밀 모여 뭔가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영상에 니가 출연자로 딱이야.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공모전이 얼마 안 남았다구.”

한쪽에선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4명의 학생들이 영상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영상 콘티 짜기에 분주하다.

다른 방에서는 독서모임을 갖는 소그룹, 그 옆 테이블에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등 각자가 하는 일에 다들 집중하고 있다. 함께 모여 있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따로, 또 같이 뭔가를 하는 이곳은 쉼 없이 달려온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대안공간이다.

열일곱인생학교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십대들의 안식년’을 위한 곳이다. 중학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1년간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삶과 진로를 탐색하고 돌아보는 한국형 인생학교다.

모델은 유럽의 덴마크식 교육과정이다. 덴마크엔 1년짜리 기숙형 학교라 할 수 있는 ‘에프테르스콜레’가 덴마크 전역에 240여 곳 있다.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 후 이들 학교에 진학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실습한다. 현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익히고 밥도 직접 해먹는다.

열일곱인생학교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숙사 시설이 없을 뿐, 자기가 하고 싶은 꿈과 직업에 맞춰 스스로 현장에 연락해 인턴과정을 거치고, 밥도 이곳 학교에서 스스로 해먹는다. 물론 총괄교사의 도움과 상담은 필수, 진로탐색 등에 대한 다수의 특강은 덤이다.

▲ 학생들은 각자 하고 싶은 것과, 같이 하고 싶은 것을 합의하에 같은 공간에서 진행한다.

올해 초 처음 문을 연 이곳은 현재 11명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나이는 열여섯부터 열아홉까지 다양하다.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1년의 자유를 기획’하게 된다. 자신들이 ‘안식년’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열일곱인생학교의 올해 1년 커리큘럼은 대략 이렇다. 전반기에는 어떻게 보낼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 이후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후엔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또는 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고, 후반기에는 직접 현장에 나가 나의 롤 모델과 함께 직업 체험(인턴)을 해본다.

열일곱인생학교의 이자연(39세) 총괄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모인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과 ‘꿈’이라는 단어예요. 그걸 찾기 위해선 자존감 회복이 필수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모범생에 발랄해 보이는 아이들도 상담을 해보면 부모와의 관계, 꿈의 부재 등으로 자존감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학기 초 자존감을 충전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자존감이 있어야 자립할 수 있고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친구들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열일곱인생학교의 민건오(16세)군은 지금까지 공부만 하고 여유가 없었던 삶이 불만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주변 선생님과 부모님, 심지어 친구들까지 ‘다른 건 나중에 해도 돼, 공부만 해도 충분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인생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를 졸랐다.

민군은 “친구들이 찾지 못하는 꿈을 나는 10대 때 스스로 찾아보고 싶었다”며 “단순히 직업이 아닌, 내가 살아가야할 인생관이 무엇일지를 찾아보는 알찬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자연 열일곱인생학교 총괄교사


“인생학교가 ‘절실’한 지원생들 모두 입학 허용”


열일곱인생학교는 어떻게 시작됐나.

‘아름다운배움’과 ‘함께 여는교육연구소’라는 교육 시민단체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현재 고양과 용인에 열일곱인생학교를 올해 초 함께 개교했다. 고양시에서는 지난해 말 지역에서 두 번의 입학설명회를 거쳐 최종 11명의 학생이 지원했고 모두 인생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인생학교가 그들에게 ‘절실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모두 입학을 허용했다.
 
입학설명회 때 어떤 아이들과 부모들이 찾아왔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자기 주변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고민은 다 '유예'당한 채 살아간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다.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그 필요성을 느끼는 가정에서 많이 찾으셨다. 그들의 고민은 절실했다.
 
선생님은 공교육 현장에서 근무한 것으로 안다. 공교육 경험이 대안학교에서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안교육에 대한 경험은 아직 부족하지만 공교육 현장(고양외국어고 국어 담당)에서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오면서 공교육을 통해 겪는 아픔을 곁에서 지켜봤다. 한때는 입시 최전선에서 소위 말하는 ‘서울대반’을 지도하기도 하며 경쟁의 끝자락으로 아이들을 내몰기도 했다. 지금은 힘든 입시과정을 겪었을 공교육 제자들이 학생 멘토로 이곳 열일곱인생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 제자들을 보면 아직도 꿈을 찾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스스로의 인생이 아닌 수능점수에 맞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인생학교는 대학생 멘토와 청소년 멘티가 한 공간에서 각자의 꿈을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안학교는 학력 인정은 되는가, 또한 비용은 얼마나 드나.
학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곳은 1년 동안 공교육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교육활동비는 일반적인 대안학교와 비슷한 수준인 45만원이다. 식비와 외부 활동비(농촌생활, 여행 등)은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1년 과정 한국형 인생 학교, 이곳 말고 또 어디에 있나.
교육 시민단체 ‘아름다운배움’이 주관하는 열일곱인생학교 2곳 외에도, 서울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약으로 출발한 민관협력형 ‘오디세이학교’가 있다. 강화도에는 기숙형 대안학교인 ‘꿈틀리 인생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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