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몹시도 심심했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집 마당이 내겐 너무 넓기만 했다. 동네 꼬마들과 소꿉놀이를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해봐도 하루 해는 여전히 중천이었다. 학교에 다녔어도 나의 이런 심심함은 별반 나아졌던 것 같지 않다. 단짝 친구들이 생겼고,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놀았지만 그래도 시간은 많았다.

심심함을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책을 찾아 읽었다. 그나마 집에는 책도 많지 않아서 책이 많은 이웃집에 한 번 놀러가면 올 줄을 몰랐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주워 읽다 보니 어린이에겐 얼토당토 않은 책들까지 읽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남이 쓴 글 읽기를 좋아하고 활자라면 무조건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편집증은 그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고, 남의 글읽기를 즐기다 보니 내 글쓰기도 즐기게 되었다. 맘에 드는 책은 꼭 사서 읽어야 직성이 풀리다 보니 집 안팎에 넘쳐나는 책을 감당못해 급기야는 책이 있는 공간을 꾸며놓고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개방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도서관을 열고 보니 아이들과 함께 엄마들을 만난다. 엄마들은 한결같이 중압감에 짓눌려 있었다. 책을 읽혀야 한다는. 책 읽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던데 우리 아이는 너무 책을 안 읽어서 고민이라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를 매일 물어온다.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 아이가 심심해 할 시간이 있나요?

초등 3학년만 넘어도 저녁 6시까지 빡빡하게 일정이 짜여져 학교다, 학원이다 분주한 게 요즘 아이들의 일상이다. 잠깐 틈이 나면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를 풀게 해줘야 하고, 그 대가는 컴퓨터 게임이기가 쉽다. 저 좋아하는 일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하물며 내키지도 않는 책을 읽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심심해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심심할 짬이 나지를 않으니 요즘은 참, 독서하기 어려운 세상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이렇게 아이의 시간을 내내 공부가 빼앗고 있으니 엄마들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롭기만 하다. 책을 읽혀야 하는데 못 읽히는 엄마, 책읽기가 취미가 아니라 의무가 되어버린 아이들.

아이들이 시간에 쫓기다 보니 질문은 이렇게 변해버렸다. 무작정 많이 읽을 수는 없으니 꼭 읽어야 할 책들만 좀 골라주세요.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백 번 이해한다. 100권을 읽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10권만 읽고도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다면 그 10권을 골라내서 읽히고 싶은 게 엄마들의 소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책읽기를 너무 편법으로 하자는 게 아니냐, 혹은 아이들에게 얄팍한 요령만 익혀주라는 말이냐 반문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만이 모든 것이던 과거와 달리, 온갖 디지털 매체들이 발전되어 있는 21세기에는 골라 읽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제대로 알고 읽은 책 10권이 알지 못하고 무조건 섭렵하는 100권의 책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들, 아이들에게 꼭 읽어야 할 10권의 책으로 이런 것들을 권한다. 문학, 역사, 철학. 우리가 문.사.철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책들,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인문학의 토대를 갖춰주는 일, 그것이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제대로 된 독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세계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이다. 역사는 세계에 대한 경험적 접근 방식이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이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감성적이고 경험적이고 논리적인 접근 방식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든, 그 어떤 것이든 우리 아이들이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은 바로 풍부한 문학적 성과가 있는 책, 한국과 세계 역사에 대한, 인류 문명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있는 책,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철학적 깊이가 바탕이 된 책. 바로 그 책을 고르고 또 골라서 읽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숲속작은도서관 관장 alley100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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