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우정과 상처 그린 영화 ‘우리들’
어울림영화관에서 8월 20일까지 상영

클로즈업된 선이의 얼굴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영화의 첫 장면. 미세한 표정변화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다.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이 피구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한 명씩 편을 뽑는다. 친구들에게 선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선이를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선이. 그렇다. 선이는 외톨이다. 왜 왕따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친구들 곁 어디에도 선이가 낄 자리는 없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선이와 지아의 행복한 여름.

선이 앞에 새로 이사 온 지아가 나타난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 걸까. 선이와 지아는  금새 친구가 된다. 일상이 아무리 잔혹해도 단 한 명의 절친만 있으면 온 세상이 화사한 꽃밭으로 변하게 마련. 둘은 ‘우리’가 되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꿈같은 여름을 보낸다.
하지만 개학과 함께 선이의 행복은 끝난다. 지아가 선이를 버리고 자신을 왕따시킨 보라 일행과 어울리는 게 아닌가. 내가 뭘 잘못했지? 애를 써봐도 한번 멀어진 지아의 마음은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이대로 다시 그 끔찍하고 잔혹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지아와 함께 다시 ‘우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선이를 버리고 보라 일행에 합류한 지아. 경멸을 가득 담은 친구들의 시선이 잔혹하다.

관계의 결핍과 갈망에 대한 세밀화
‘우리들’은 형식면에서 무척 차분하고 담백한 영화다. 자극적 대사나 드라마적 설정 따윈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차분한 시선 속에 담아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격렬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들의 결핍이 무엇인지, 그리고 관계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핍은 관계를 이어주기도 하고,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지아의 결핍은 가정의 따뜻함이다. 반대로 선이의 결핍은 풍요와 당당함이다. 우정을 쌓아가는 단계에서 상대의 결핍은 서로를 품어주는 단단한 매개가 된다. 하지만 관계에 균열이 시작되자, 결핍은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되고 위태로운 칼이 된다. 결핍과 갈망이 뒤섞여 누군가를 향한 호의가 외면과 적의로 변하는 지점의 미묘한 불안과 절망을 영화는 아주 세밀하게 포착한다.

선이는 지아와 다시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지만, 한 번 어그러진 관계는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질서 
영화는 4학년 여자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아이들이 쓰는 언어의 특징은 무엇인지, 관계의 역학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집단따돌림이 어떤 메카니즘으로 생산되고 강화되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아울러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어른들은 아이들만의 질서로 구축된 세계 안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아이들의 심리와 세계에 한 뼘 다가가고픈 모든 어른들에게 이 영화는 친절하고 유용한 본보기를 보여준다.

 

선이의 엄마는 충분히 자상하지만, 딸과 아이들의 세계로 한 발도 들어가지 못한다.  

작지만 힘 있는, 다양성 영화의 가능성 보여줘
‘우리들’은 주목할 만한 단편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 2회 연속 초청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박하사탕’, ‘밀양’을 만든 이창동 감독이 기획을 총괄한 점도 주목을 끌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흥행마저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영화가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7월 20일 현재 극장에서 누적관객 3만4000명을 돌파했다. 상영관을 확보하기 힘든 다양성 영화의 성적치고는 놀랄만한 성과다. 관심을 끌기 힘든 소재, 게다가 유명배우 한 명 등장하지 않는 ‘우리들’의 예상 밖 흥행은 오로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감동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반갑게도 어울림누리의 어울림영화관에서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영화 ‘우리들’을 만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화를 감상한 후 밀도 높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 올 여름, 서늘한 안타까움과 따뜻한 감동이 교차하는 영화를 매개로 우리 곁의 수많은 ‘선이와 지아’의 친구가 돼보자.

더 이상 외톨이가 되기 싫은 선이. 친구도 세상도 엄마 아빠도 밉기만 하다.  

천진난만한 선이의 동생 4살 윤이. 영화가 끝날 즈음 결정적인 대사 한 마디로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첫 장면과 연결되는 마지막 장면. 선이는 지아를 향해 조심스레 한번 더 마음의 손을 내민다. 과연 지아는 그 손을 잡아줄까?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다양성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우리들‘  (감독 윤가은 / 94분)

일시 : 8월 20일까지
상영시간 : 매 주 금·토 10:30 / 14:00 / 16:00
상영관 : 어울림영화관 (고양어울림누리)
관람료 : 성인 5000 / 아동·청소년 3000
문의 : 031-960-9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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