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보육 시행 3주째,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 어린이집 관련 자료 사진으로 아래 보도 내용과 관련 없음.

<7월 1일부터 시행된 맞춤형 보육>
지난달까지 12시간 전일제 하나로 운영되던 어린이집이 이달부터 12시간 종일반과 6시간 맞춤반으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대상은 2013년 1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다. 맞춤형 보육은 ‘맞벌이 가정은 기존 종일반으로 유지, 대신 홑벌이 가정은 6시간만 어린이집을 이용하게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원장·교사·학부모 모두 불만 가득
“맞춤형 아이들 3시 귀가는 불가능”

맞춤형보육 시행 3주째, 일선 어린이집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까지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있다.

보육 관계자들은 시행에 따른 준비를 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학기 중에 급작스럽게 시행된 점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시행 하루 전인 6월 30일에야 보완책을 발표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현장의 여론은 더욱 좋지 않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정책이 바뀌면 몇 달을 준비하고 점검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정책이 바뀌었으니 다음날부터 바로 시행하라’는 게 말이 되냐”며 “일선 어린이집도 바뀐 내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오히려 학부모에게 ‘구청에서 보낸 안내문은 받았냐’고 물어보는 지경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결국 피해는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맞춤반 시행으로 친구·선생님과 헤어져야
고양시 덕양구의 A학부모는 다음달부터 아이의 담임 보육교사가 갑작스레 바뀐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A씨는 맞춤반 대상이 아닌 맞벌이인데도 ‘맞춤반의 여파로 피해를 입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가능하면 맞춤반을 분리해 운영하라는 복지부 지침에 따라, 만 1세 반 아이들의 담임이 맞춤반으로 이동하고 종일반은 다른 교사가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A씨의 자녀는 맞춤반 친구들과도 갑작스레 헤어지게 됐다. 학부모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 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해당 어린의집의 원장은 “만 1세 아이들은 낯선 어른들에 대한 경계가 심해 담임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며 “학기 중에 이렇게 갑자기 정책을 수정하면 결국 피해는 어린이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인건비 동결에 할 일은 늘어
보육교사 B씨는 맞춤형보육 시행이후 할 일은 더 많아지고 근무여건은 더 열악해졌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인데 더 이상 월급 오를 일은 없을 거라고 푸념한다.

맞춤형보육 시행으로 줄어든 정부지원 보육료 때문에 ‘간식비와 차량운행비를 줄이는 대신 교사 인건비를 동결할 것’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맞춤반 대상자의 긴급바우처도 업무를 늘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B교사는 “우는 아이에게 사탕 주듯, 정부가 맞춤반 대상자에게 월 15시간의 긴급바우처(어린이집 사용권)를 지원하고 있는데, 바우처 사용 이후 3일 이내에 전산 입력을 하게끔 하고 있어 할 일이 또 늘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긴급바우처 사용도 눈치 봐가며
맞춤반의 원래 하원 시간은 오후 3시지만(오전 9시부터 총 6시간)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그렇게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후 3시가 아이들의 낮잠과 간식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맞춤반 시행 초기 일부 어린이집은 1시간의 긴급바우처를 쓰도록 학부모에게 유도하기도 했다. 이왕에 맞춤반 어린이들을 더 데리고 있을 거면 바우처 지원금이라도 받아야 원이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도 어렵게 됐다.

C어린이집 원장은 “정부가 우리를 범법자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얼마 전 ‘긴급바우처를 써도 된다고 학부모한테 얘기하면(바우처 쓸 것을 유도하면) 특별 단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3시에 하원하게 되면 맞춤반은 매일 주던 간식을 줄 시간이 없고, 간식을 안주자니 맞춤반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어린이집 원장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 얼마 전 각 어린이집에 내려온 공문. 긴급바우처의 사용 유형을 해당 학부모에게 물어봐서 전산 입력하라는 내용이다.

학부모 사생활 침해 내용도 수집해야
얼마 전부터는 긴급보육바우처 전산입력란에 ‘사용 유형 분류’ 항목이 새롭게 추가됐다. 학부모가 긴급바우처를 사용하는 이유를 교사가 7가지 항목 중에서 찾아 체크하라는 것이다.

사용 유형은 ‘구직준비, 친목활동, 장보기, 병원치료’ 등으로 구분돼 있어 사생활 침해가 상당히 우려된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긴급바우처를 쓰는 학부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어떤 학부모가 좋아하겠냐”며 “정부의 이런 탁상행정 때문에 피해는 어린이집 운영자가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학부모도 “내가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지, 또는 놀러 가는지 사사건건 어린이집에 보고하고 다니는 게 말이 되냐”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육교사에 파트타임 요구하기도
얼마 전 보육교사 D씨는 맞춤반 담임이 되면서 종일 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맞춤반이 운영되기 때문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

어린이집 원장은 맞춤반 때문에 운영비는 줄었지만 간식비만은 차마 줄일 수가 없었다. 하루 두 번(오전, 오후)의 간식 시간 중 오후 간식시간이 3시인데, 맞춤반 아이들에게 매일 먹던 간식을 안 줄 수는 없기 때문. 대신 교사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종일 근무자보다는 파트타임 보육교사를 찾을 생각이다.

맞춤반을 분리해 운영하는 것도 인건비 상승 요인이다. 맞춤반 대상자가 많지 않아 만 1세 반 하나로도 운영이 가능한 어린이집이 굳이 반을 분리하게 되면 교사 인건비가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운영자 입장에선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31만3천원에서 25만원만 지원하는 맞춤형
E학부모는 얼마 전 어린이집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행복카드로 매달 31만3000원을 보육료를 지불했는데, 이달에는 25만원 긁혔다”며 “그걸로 아이들 간식 먹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홑벌이 가정인 E학부모는 그 전에도 하루 6~7시간만 어린이집에 맡겼던 터라, 맞춤형 시행 이후에도 어린이집에 맡기는 시간은 거의 변화가 없다. 하지만 입금한 보육료가 많이 줄어든 것을 보고 자신의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 앞섰던 것.

학부모는 “보육료가 줄어들면 운영이 어려울 테고, 교사들의 처우가 안 좋아지면 보육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며 “맞춤반을 어떻게 운영할지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학기 중에 덜컥 시행을 밀어부친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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