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쉽게 보기 ‘Wh__at i__s art__?’
고양아람누리미술관 9월 25일까지 전시

거울의 방에 제주도 마을길을 새겨넣어 시간과 공간을 함께 사유하도록 한 오순미 작가의 작품.

10명의 작가들 개성있고 흥미로운 작품 선보여
가이드페이퍼 등 작품이해 돕기 위한 자료 제공
퀴즈 풀 듯 작품 관람하며 예술적 쾌감 향유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제목부터 ‘Wh__at i__s art__?’다.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 보자는 게 전시의 목적이라고 대놓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밑줄을 그어 놓은 이유 역시 마치 주관식 문제지의 빈 칸에 답을 적어넣듯, 전시를 감상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보라는 의도다. 주제도 기법도 제각각인 10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에게는 퀴즈를 풀 듯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민 가이드 페이퍼가 제공된다. 코너마다 준비된 작품 감상의 힌트를 간결하게 요약한 북마크도 누구나 한 장씩 집어가도록 했다. 친절함이 곳곳에 밴 전시인만큼 무장 해제하고 도전해보자.

위영일 작가의 알레아토릭 시리즈는 미술의 창작 방식을 주사위놀이와 결합시켰다. 각각 주제, 틀, 스타일, 배경, 중간, 마무리에 해당하는 항목마다 여섯 개씩의 표현방식을 배치한 후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서 조합되는 순서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도표를 보며 작품을 상상할수도 있고, 반대로 실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며 주사위 숫자의 배열을 짐작할수도 있다. 미술사를 관통하는 카테고리들을 우연성을 통해 일별하게 된다.

 

주사위를 던져 미술 분류학의 항목들을 조합해 만든 위영일 작가의 작품.

 

권현조 작가는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뒤흔든다. 형태의 고전으로 대접받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모습에서 얼굴 부분을 없애버려 상상의 여지를 만들기도 하고, 전시장의 캡션(작품명과 소재 등을 적은 정보)자체를 정성스레 액자 안에 담아 작품 자체보다 캡션에 먼저 주목하는 관람객들의 타성을 살짝 놀리기도 한다. 막강한 해석적 권위를 지닌 스타 큐레이터들의 어록을 진지하게 화폭 안에 담아넣은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와 평론가의 전도된 위상에 대한 고민도 드러난다.

 

고전 조각작품을 재현해 놓았는데 얼굴이 없다.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병찬 작가는 고도로 발달한 대량소비사회속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비닐이라는 소재에 주목한다. 일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반생명적인 화학제품의 대명사이기도 한 비닐로 거대한 가상의 생물체를 만든 것. 형형색색의 비닐로 만든 압도적인 크기의 도시생명체는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포스럽고 기괴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귀엽고 예쁘기까지 하다. 비닐로 상징되는 현대 소비사회의 모습이 그렇듯 말이다.

 

비닐로 만든 가상의 도시생물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인다.

 

최태훈 작가는 스마트폰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와 기능을 작은 기계 속에 담아놓은 스마트폰처럼, 현실의 삶에서 필요한 물리적 도구들을 몽땅 한자리에 모아놓은 'all in one' 장치를 만든 것. ‘어머니를 위한 멀티태스킹 디바이스’는 소형냉장고에서부터 컴퓨터, 모니터, 스피커, 회전의자, 화장대, 매트 등이 하나의 장치에 모아져 있고, 그 옆에는 스트레칭기구가 중심이 된 ‘아버지를 위한 멀티태스킹 디바이스’도 놓여져 있다. 모든 것을 한자리에 모아 놓아 무척 편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쓸모없고 불편할 것 같아 보인다. 집약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강박에 대한 유쾌한 농담인 듯.

 

모든 청소도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멀티태스킹 청소세트. 유용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 사용하기엔 불편하기 짝이 없을 듯.

 

가장 인상적인 코너는 손민아 작가의 ‘선반 프로젝트’다. 작가는 초등학교 세 곳에 빈 선반을 마련해놓고 일정 기간동안 아이들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친구들과 나눠 쓰도록 했다. 이 프로젝트가 일반적인 아나바다(안 쓰는 물건 교환해 쓰는)운동과 다른 지점은 물건의 경제적 효용성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추억을 교환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이다. 물건과 함께 그 물건에 담긴 자신의 마음을 적어놓을 수 있도록 엽서 크기의 카드를 비치해 놓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소해뵈는 물건들 속에 깃든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이 서로에게 따뜻한 메시지가 되어 유통되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한 선반을 그대로 갤러리로 옮겨왔다. 

 

그 외에도 거울에 새겨진 선을 따라 공간과 시간을 함께 사유하게 만든 오순미 작가의 ‘봉인된 시간’,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선을 보여주는 도수진 작가의 작품들, 관람자들이 둘러앉아 작가가 만든 독특한 룰에 따라 함께 카드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유목연 작가의 ‘아티스트 보드게임’ 등의 작품도 재미와 각성을 함께 던져준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는 'What is art?'라는 거대한 물음과 함께 흰 벽이 차지하고 있다. 이 자체가 강정훈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예술에 대한 타인들의 생각을 귀담아 듣는 존재이기도 한 것.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 관람을 마친 소감을 한 줄 남겨보자. 현대미술이 과연 뭘까? 어떤 대답도 정답일 수 없겠지만, 어떤 대답을 해도 틀릴 일도 없다. 현대미술, 생각보다 너그럽고 유쾌한 친구니까.

 

강정훈 작가가 마련한 벽면에 관람객들이 다양한 대답들을 가득 적어놓았다.

 

Wh__at i__s art__? 현대미술 쉽게 보기

9월 25일까지
고양아람누리미술관
매일 10·11·14·15시 전시해설(도슨트) 실시
031-960-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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