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
유달리 더운 날씨가 연속이다. 나 같은 ‘뚱족’에게는 공포의 계절이다. 전기료가 무서워 에어컨도 못 틀고, 알량한 선풍기 한 대로 지내고 있으나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운 열기만 내뿜어 대니, 고작 미봉책으로 선택한 것이 시간마다 찬물 끼얹기다. 지구가 미쳤나보다.

무더위와 관련하여 사망소식도 들리고, 가뭄소식도 들리고 온통 뒤숭숭하다. 이 핫한 날씨에 가장 핫한 소식은 ‘한전대박론’이다. <JTBC 뉴스현장>의 김앵커의 입술을 빌리면, 올해 한전 예상 매출액은 54조, 당기순이익은 사상최대인 13조란다. 올 4월 외국인 투자자는 약 6천억원, 산업은행도 6천억원, 정부가 3천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단다. 한전은 임원성과급을 70%로 올리면서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순이익의 1%만 했다고 하니, 가히 흡혈귀 급이다.

기업이 잘되면 서민도 잘 살 수 있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이미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낙수효과라는 말 대신에 ‘흡혈효과(sucking-up effect)’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안한다. 대한민국 경제는 서민의 고혈을 빨아 소수의 재벌과 권력층에게 돌아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수입에 따른 직접세는 줄어들고,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간접세만 늘어나는 세수정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담뱃세, 주류세, 석유세로 치자면 나는 거의 웬만한 부자 1인의 세금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않다고 자부(?)한다. 홧김에 피운 담배 1갑에 매겨지는 세금은 8억원짜리 빌딩을 소유하는 건물주의 건물세와 맞먹는다하니 헛말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온몸에 빨대가 꼽혀서 피를 빨리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더위로 가정용 전기에 붙은 누진세의 논쟁이 한창 중이다.

산업용 전기에는 붙지 않은 누진세가 서민들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에는 붙는다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고, 누진세의 증가폭이 가히 공포스러운 정도이다. 누진세를 적용하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진세가 없는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는 제외하고, 일본이나 캐나다 미국은 대략 2~3단계에 걸쳐 1.5배 정도의 누진세가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6단계에 걸쳐 11.7배나 누진된다. 반면에 우리나라 기업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싸지는 역누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칼만 안 들었지, 도둑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런 생각을 한창하면서 열을 올리다가, 열도 식힐 겸 화장실에 가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다시 자리에 앉아 생각해본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더워졌지? 비단 이 더위가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현상인가? 근본을 따져 생각해보니, 우리가 스스로 덥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미친다. 미친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였다.
지속가능한 지구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 환경단체 <지구생태발자국네크워크(GFN)>는 8월 8일을 올해의 ‘지구용량초과의 날’로 선포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할 경우 지구가 3.3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편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지구가 1.6개가 필요한 것으로 나와, 세계 시민의 평균치보다 우리 한국인이 2배가 넘게 생태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GFN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생태자원을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려면 한국면적의 8.4배나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태자원보다 8.4배나 많이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뒷목이 서늘해진다.

더운 날 마음 놓고 에어컨을 빵빵 틀면서 전기료도 적게 나오면 좋겠다는 소망은 기실 불을 끄려다가 휘발유를 끼얹는 꼴인 셈이다.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정부정책이야 정책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야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의 낭비적 소비행태를 고쳐야한다는 서늘한 각성에 이른다. 부처는 인간의 욕망을 불에 비유하면서,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외쳤다. 이 욕망의 불꽃을 더 피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장작을 빼고, 훅 불어 꺼버리는 것이 해탈(nirvana)이라 전하며 부처는 평생토록 진리의 바퀴를 굴려야했다. 그것이 부처의 정치경제학이었다.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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