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만 인권운동가
내가 처음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한 때는 1993년의 일이다. 그리고 차가 생겨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999년이었으니 자가 운전자가 된 것은 햇수로 약 17년쯤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한 그때와 오늘날의 우리나라 운전 문화는 무엇이 크게 달라졌을까? 가장 큰 변화는 각박해진 세상사만큼 운전 문화 역시 ‘참 많이 각박해졌다는’ 느낌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일은 역시나 ‘난폭 운전’이다. 운전하다보면 정말 기도 차지 않는 난폭 운전 사례와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운전대만 잡지 않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점잖은 분들이 ‘운전만 시작하면 야수로 변한다’는 말은 운전자 사이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다. 그러한 상징적 기억이 있다. 오래 전 공익 광고에서 본 장면이다. 난폭 운전을 하는 차량을 카메라가 쫒아 가는데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내던지는가 하면 앞지르기와 클랙슨을 남발하는 등 그야말로 난폭 운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저 운전을 할까” 궁금증이 증폭하던 그때, 압권은 마침내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한 후였다. ‘덜컹’ 운전석이 열린 후 차에서 내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개’였다. 굉장히 심한 표현이었지만 이 공익 광고를 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현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극렬한 난폭 운전자보다 더 큰 원성을 받는 사례는 따로 있다. 바로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량이다. 이른바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자기 가고 싶은 대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졌다. 이처럼 신호조차 주지 않고 급작스럽게 끼어드는 행위를 이른바 ‘칼치기’라는 은어로 칭한다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칼치기 운전은 차선 변경의 기본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러한 ‘칼치기’ 차선 변경의 문제점은 ‘보복 운전’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를 보면 상대 차량이 신호도 주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고 이에 기분 나빠진 상대방 운전자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보복 운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략 5~6년 전부터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주관적인 기억이니 그 근거가 뭐냐고 따진다면 답은 할 수 없는데 어느 날부터 이런 칼치기 운전 문화가 일상화 되었다. 따져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방향 지시등 켜는 일에 운전자들은 왜 이리 인색해 진 것일까?

그런데 누군가는 또 말한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오히려 차선 변경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주장이다. 운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 누군가가 끼어든다고 깜박이를 켜면 양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 간격을 더 좁히니 칼치기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하지만 각박한 운전 현실이 일으키는 결과는 참 비극적이다. 아주 작은 배려, 아주 작은 예의가 사라진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사고와 보복 운전 범죄로 이어지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배려와 또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이 아닐까.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예의와 이를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이렇게 배려 받은 운전자가 양보해 준 운전자에게 비상등을 깜빡이거나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예의, 적어도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했던 그때는 이것이 흔한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이 별스럽지 않던 그때가 지금, 너무도 그립다. 나부터 먼저 이런 운전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권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의 예의’, 함께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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