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선유동에 집필공간 마련, 단편소설 페스티벌 열어

 

이호철 작가는 지난 7월 고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작가는 그 작가가 살아낸 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인의 작품이 그랬다.

 

이호철 작가가 지난 18일 별세했다. 올6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진 지 50여 일만인 이날 오후 7시32분쯤 부인 조민자 여사 등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고인의 자택은 서울 불광동에 있었지만 분단을 고민하고 문단 친구, 후배들과 문학 이야기를 하던 곳은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이었다. 고인은 1988년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 154-2번지, 느티나무 숲이 있는 곳에 집필공간을 마련했다. 당시 집필공간 주변에 심은 느티나무들은 지금 울창한 숲을 이뤄, 살아생전 고인은 “선유동 나무들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붉은 단층집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에 정원, 연못, 원두막을 연상시키는 휴식공간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문인들의 명소로 알려졌다.
 
평소 겉치레 없는 소탈한 모습
고인은 선유동에서 집필하는 것뿐만 아니라 2006년 9월부터는 한국 문학판에서는 전무하다시피한 소설 독회도 시도했다. 2년 넘게 독회가 열리는 날이면 선유동에서는 소설가, 소설 지망생, 전직 교사, 경찰관, 대학생, 심지어 슈퍼 아줌마까지 소설을 읽는 기쁨에 빠지기도 했다. 소설 독회에서 고인은 반바지 차림에 흰고무신을 신고 겉치레 없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고인은 선유동 느티나무 숲에서 2009년부터 ‘단편소설 페스티벌’을 열어 많은 문학 애호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상업적 논리를 따르는 경향이 다분한 장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학의 예술성을 보장하는 단편소설의 가치를 향유하기 위한 이 페스티벌을 지난해까지 7회 이어온 것. 이 페스티벌에는 매년 5~7명의 소설가가 초청됐는데 윤흥길, 윤영수, 이순원, 이동하, 윤후명, 하성란, 송영, 최성배, 윤이형, 최은미, 장영진, 이장욱 등 한국소설문단 주역들이 대거 참여했다.

분단문학포럼(대표 민병모)을 중심으로 한 고인 주위의 문학인들은 선유동 집필공간의 붉은 단층집을 한 층가량 높여 ‘이호철 문학관’으로 조성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호철 문학관은 애오라지 60여 년간 분단 문제에 천착해온 고인을 기리고 10여개 국에 번역된 고인의 소설들을 진열해서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박정구 고양예총 회장은 “앞으로 이호철 추모 문학제와 이호철 문학관 건립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분단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

▲ 이호철 작가는 고양과 인연이 깊었다. 집필공간이 있는 선유동에서 소설 낭독회와 단편소설 페스티벌을 열었다. 고인은 “선유동 나무들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에 인민군으로 동원됐다. 전쟁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직접 체험한 전쟁과 이산이 그의 소설의 주된 소재가 됐다.
고인이 지금까지 쓴 장편 그리고 중단편을 합하면 200여 작품이 넘는다. 이 많은 작품들을 관통하는 ‘분단문제’는 고인의 전 생애를 한결같이 지배했던 화두였다.

한국전쟁과 분단, 이념갈등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체험했기 때문에 남한의 그 어떤 문인보다 고인은 분단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졌다. 고인은 1974년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법원의 재심으로 2011년 무죄 판결이 났다. 고인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의 소설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독일·프랑스·폴란드·헝가리·러시아 등 유럽과 영미권에서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았다. 2004년에는 독일어로 번역된 소설 『남녘사람 북녁사람』으로 독일 예나대학로부터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 ‘프리드리히 쉴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한국소설가협회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고인이 모셔졌던 세브란스병원 빈소에는 백낙청, 백기완, 임헌영, 신경림 등 젊은 시절 고인과 고락을 같이 했던 이들이 문상객으로 다녀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례식은 지난 20일 ‘대한민국 문학인 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다.
고인을 지난 9월 초 문병했던 임준수 고양신문 고문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북한산 기슭의 한 토종닭집에서 소주 반 병을 거뜬히 비우던 분”으로 “문단의 거목이라는 명망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큰 형님처럼 따르던 분이었기 때문에 애통한 마음이 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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