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권우 도서평론가

계약직 공무원인 친구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의나 시의회에서 가보면 그 사람이 늘공인지 어공인지 금세 눈치채는 방법이 있단다. 여기서 늘공은 늘 공무원인 사람, 그러니까 공무원시험을 거쳐 임용돼 근무하는 사람을 이르고,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 그러니까 개방형으로 한시적으로 공무원 직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가슴이나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은 거의 어공이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늘공이라는 것. 여기서 노란리본을 단다는 말은, 익히 예상하듯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이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지의 표시이다. 스쳐지나가듯 한 말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좋게 보면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지라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사견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계약직 공무원은 임기가 정해진 마당에 자기 생각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 과연 그러기만할까 싶었다. 공무원은 권력은 바뀌게 마련이고 지금 권력이 그 어떤 것을 허한다 해도 다음권력이 이를 책잡을 수 있다싶어 노란리본은 안 다는 것은 아닐까싶었다. 그리고 계약직의 경우 그 지차체장이 개혁적인 인물이라 노란리본을 달 수 있었다면, 만약 보수적인 인물이 지자체장이라면 어떨까싶었다.

 이리저리 궁글리다 슬퍼졌다.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큰 고통을 공감하고 이에 함께 하려는 것도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싫었다. 일찌감치 맹자가 물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적에 왜 구하려고 하는가. 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구해주었다고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구해주지 않았다고 비난받을까 봐서도 아니다. 맹자는 말했다. 남의 불행을 차마 그대로 보아넘기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죄 없는 이들이 수장당했다. 마땅히 구해내는 게 나라가 할 일이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었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잊지 말자고 하는 게 마땅하다. 인간이라면.

 그러다 나를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노란리본이 있다. 가슴에 다는 것도, 가방에 매다는 것도 있다. 그런데 정작 매지 않고 있다. 내가 노란리본을 달지 않는 것은 책잡힐까 보아서다. 세상을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다 실수라도 하면, 저 참사의 희생자와 그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마저 싸잡아 비난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거짓과 술책, 기만과 방기로 문제를 덮으려고만 했다. 일을 저지른 자들이 석고대죄한 것이 아니라 아픔을 당한 이들이 울고, 굶고, 한뎃잠을 자야했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하찮은 나같은 사람 때문에 처벌하자고, 밝히자고 하는 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태어난 이 땅은 왜 이리도 나에게 고통을 준단 말인가. 고등학생 시절, 광주민주화항쟁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폭도들이 일으킨 체제전복 행위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그 진상을 알며 분노하고 절망했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다. 비록 형식적 민주화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나는 한국사회가 더 나아진데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잊지 않은 이들의 덕이라 여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월호다.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시대에 후진국에서나 벌어질만한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또, 아프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나랑 관련없는 일로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한 번은 20대에, 또 한 번은 50대에 말이다. 더러운 세상 그 자체에 대한 분노와 원망 탓에 노란리본을 달지 못하겠더라.

 그러나, 내가 진짜 노란리본을 달지 않았다고는 보지 말기를. 못나고 타락한 권력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마음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리본을 이미 달고 있으니. 나는 믿는다. 과거 광주의 원혼들이 우리의 벗이 되어 민주화의 장정에 함께 해주었다면, 이제 세월호의 넋들이 우리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길에 동행해주리라는 것을. 다시(re) 태어나는(born) 것,  그것이 어디에 있든 우리가 단 노란‘리본’의 상징적 의미 아니겠는가.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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