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6 - 남경수목원

북한산 송추계곡을 출발해 일영유원지와 장자원유원지를 거쳐 온 공릉천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여울과 고양시 선유동 여울을 만나 숨을 고른다. 삼하리 여울과 선유동 여울 사이, 시냇물이 몸을 뒤척이며 감싸는 반달 모양의 땅에 나무들의 작은 천국이 숨어 있다. 종류를 헤아리기 힘든 나무들이 말끔히 단장하고 모여 사는 곳. 시냇물 소리와 새 소리가 어우러지는 곳. 그리고 노 부부의 서른 일곱 해 땀방울이 구석구석 스민 곳. 남경수목원이다.   

남경수목원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는 공간을 가꾼 이의 건강한 땀방울이 배어있다.  

나무와 휴식공간이 어우러진 느긋한 쉼터

수목원을 찾은 날, 10월이지만 투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이 뜨거웠다. 모자를 챙겨올 걸···. 그러나 남경수목원 안으로 들어서자 걱정이 사라졌다. 울창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단풍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향나무, 섬잣나무, 구상나무 등의 바늘잎 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침엽수들은 모양을 가꿔주는 대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 수목원의 맵시를 다채롭게 만드는 주역들이다. 잎을 물들이는 나무들과 열매를 매단 나무들은 본격적인 가을의 방문을 예고하고 있다.

산책로 곳곳에서 가을을 알리는 수수한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구석구석 둘러보자. 화려하거나 눈부시지는 않다. 그러나 돈을 많이 들여 단기간에 꾸민 공간과는 다른, 곳곳마다 사람의 정직한 노동이 깃든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무들 사이로 앉아 쉴 만한 벤치가 다양하고, 지붕을 얹은 정자와 크기도 각각인 평상이 숨어있다. 정자와 평상 옆에는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그릴이 세트다. 작은 울타리, 오솔길, 연못, 잔디밭 등을 조화롭게 가꿨다. 수목과 휴식공간을 적절히 배치한 덕분에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아도 다른 방문객들로부터 동선이 차단된 아늑함을 즐길 수 있다. 
수목원 울타리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공릉천을 따라 걷는 양주 둘레길 코스의 한 구간이다. 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겐 남경수목원의 시원한 그늘이 천변길을 걷다가 만나는 오아시스 같으리라. 최근 내린 가을비 덕분일까. 시냇물이 제법 넉넉히 흐른다. 하늘이 비치는 맑은 물 속에는 작은 물고기떼가 쉼 없이 헤엄친다.

 

평상이나 야외 테이블 옆에는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그릴이 마련되어있다.

부부의 땀과 정성으로 37년간 가꿔 

장소의 매력을 소개하는 지면이지만 ‘사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장소란 결국 누군가의 생각과 노력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공간 아니던가. 남경수목원을 꾸민 이들은 정남석, 조경희 부부다. 아내보다 여섯 살 많은 남편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 함께 교사로 일하던 부부는 자연과 벗하며 사는 노년을 꿈꾸며 공릉천변의 모래땅을 사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벌써 37년 전의 얘기다. 먼저 일을 저지른 건 남편이었지만 아내가 더 빠져들었다. 나무 가꾸는 게 너무 좋아서 교사직도 사표내고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나무들과의 불타는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남편은 정년 퇴임때까지 교단에 서야 했다. 손바닥만했던 묘목들은 세월과 함께 쑥쑥 커서 어느 새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땅도 조금씩 늘렸다. 땀방울이 깃든 세월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12000평의 모래땅이 어느덧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부부만의 멋진 수목원이 됐다.
 

남경수목원을 가꾼 부부는 나무를 매만지며 보낸 세월이 꿈같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수목원 안에 있는 연못과 나무 데크. 정남석, 조경희 부부가 돌을 쌓고 나무를 못질하며 손으로 만들었다.


부부는 일 궁합이 너무 잘 맞았다. 나무 가꾸고, 풀을 매고, 담장을 치고, 벽돌을 쌓고, 페인트도 칠한다. 어떤 일이든 부부가 손발을 맞추면 진도가 잘 나갔다. 남편이 정년퇴임한 후 부터는 넓은 수목원을 가꾸며 사람 한 명 쓰지 않고 있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 몸에 무리가 오는 건 사실이지만, 자연이 모든 걸 치유해주고 회복시켜준다. 73세인데도 흰 머리 하나 없다고 자랑한다.

나무 외엔 아무 것도 곁눈질하지 않고 보낸 세월을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무는 매일 바라봐도 매일 새로운 모양의 행복을 선물해줬다.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나무를 만날 일에 맘에 설렌다고.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노부부의 모습에서 서로 마주보며 한 자리 우직하게 지키는 한 쌍의 든든한 나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즐겁게 일하는 건 노동이 아니지요. 하루 종일 나무와 꽃들과 함께 삽니다. 새들과도 매일 인사히구요. 지상에 이만한 천국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수목원 곳곳에는 자연과 잘 어울리는 조각작품도 숨어 있다.

아끼고 찾아 주는 발길 반갑고 고마워

나무 식구는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구찌뽕나무, 아사히베리, 자두나무가 새 식구가 됐다. 부부는 나무 가족 돌보는 일 외엔 관심도 재주도 없다. 방문객들의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양심적으로 내도록 정문에 작은 통만 달랑 걸어놓았다. 단체로 찾아와도 입장 인원이 몇 명인지 까탈스럽게 체크하지도 않는다. 매장이나 식당은 물론, 흔한 카페니 블로그도 운영하지 않는다. 공간의 가치를 사랑하는 이들이 알아서 찾아와주면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남경수목원 입구의 안내판.

찾아주는 이들이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낼 수 있도록 나무통을 설치해 놓았다.

한 번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단체로 수목원을 찾아왔다.  조경희 대표는 시각장애인이 여기에 뭘 보러 온걸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이 물소리와 바람소리 듣고, 나무를 더듬어 만지고, 꽃 향기를 음미하며 나름대로 공간의 매력을 흠뻑 즐기는 게 아닌가. 조 대표는 그 날 수목원을 가꾼 새로운 차원의 보람을 느꼈단다.

봄 가을 소풍시즌에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나들이를 온다. 야유회 모임도 이어진다. 하지만 단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마당과 산책을 즐기는 수목원을 자연스럽게 구분해 놓아 삼삼오오 방문객들에게는 전혀 불편을 주지 않는다.
“봄에는 시냇가 둘레길을 따라 벚꽃이 만발하지요. 연산홍, 자산홍 등 철쭉 종류도 화사하게 피어나구요. 여름에는 푸르른 그늘이 명품이고, 가을엔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겨울은 또 얼마나 이쁜데요. 벌거벗은 나목 위에 살포시 눈꽃이 내려 앉은 모습은 말 그대로 그림같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12월부터 3월까지는 수목원의 문을 닫는다. 고요한 휴식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한 계절만큼은 나무들에게 양보해주자.

10월 하고도 한참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낮엔 햇살이 뜨겁다. 때 아닌 태풍 소식도 심란하다. 도대체 가을이 오긴 오는건지 미심쩍다. 2016년의 가을이 어디만치 와 있는지 궁금하거든 남경수목원에 들르자. 나무와 새들과 시냇물소리가 계절의 행방을 살짝 귀띔해줄 것이다.

남경수목원 울타리를 따라 양주 둘레길이 지나간다.

울타리 바깥의 공릉천 시냇가. 노고산의 능선과 교외선 철교가 보인다.

남경수목원
입장료 : 산책 3000원
         평상 및 그릴 사용시 1인당 10000원 (주말 12000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386-3
031-876-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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