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선 경기도의원
은평구가 지난 4월 은평구 진관동 일대에 약 3500평 규모의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고시했다. 시설은 은평구 뿐 아니라 마포구, 서대문구에서 나오는 물량까지 처리하는 광역시설로서 타당성 용역이 오는 10월 말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얼핏 은평구가 관내에 설치하는 폐기물 처리시설인 만큼 문제가 없어 보일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처리시설의 위치가 고양시 안쪽으로 길쭉하게 들어가 있는 부지로서, 4면 중 3면이 고양시 땅으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이다. 즉 행정구역상으로는 은평구 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양시 앞마당인 셈이다.

처리시설과 접하는 고양시 땅이 사람이 살지 않는 임야라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이 지역은 고양시 삼송지구 23,729세대 뿐 아니라 2018년 입주 예정인 지축지구 8,685세대까지, 세대수만 3만 2천여 세대에 최소 10만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게 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주거지역이다. 이런 대규모 주거지역과 폐기물 처리시설과의 거리가 불과 50m 내지는 200m밖에 되지 않으니, 악취 등의 문제로 인한 고양시 주민들의 직접적인 피해가 불 보듯 빤하다.

우리 고양시 동산취락과 삼송지구 구·신시가지 주민 분들이 “고양시 앞마당에 은평구 기피시설이 웬말이냐”며 크게 분노하는 이유다. 필자 또한 고양시민의 한 사람이자 지역구 경기도의원으로서 지난 10월 4일부터 폐기물 처리시설 백지화를 주장하며 은평구청 앞에서 출근길 1인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그에 앞서 지난 9월 27일 필자는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양시 최봉순 제2부시장과 함께 서용목 은평부구청장을 항의방문한 바 있다. 하지만 은평구 쪽은 재활용 선별시설은 기피시설이 아니고 환경영향법상 평가심의 대상도 아니기에 적법한 절차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는 바, 타협을 위한 논의는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일단 재활용 선별시설이 기피시설이 아니라는 은평구 쪽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쓰레기 중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선별’한다는 것은, 일단 쓰레기를 갖고 와야 하는 일이다. 당연히 악취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서울시에서 싼 똥의 냄새를 고양시민이 맡게 되는 형국이다. 따라서 재활용 선별시설이라는 표현은 폐기물 처리시설을 좀 덜 불편하게 보이도록 포장하기 위한 수식에 불과하다. 은평구의 주장대로 정말 기피시설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일방통행식 계획 수립과 형식적인 졸속 타당성 용역을 중지하고 은평구 내 부지로 이전하면 될 일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서울시의 ‘염치없는 행정’에 대한 것이다. 현재 고양시에는 시립묘지(벽제동), 승화원, 제1․2추모의집(대자동), 마포구 재활용 선별시설, 난지물재생센터(하수・분뇨・슬러지), 서대문구 음식물 처리시설(대덕동), 은평구 분뇨처리 차량 주차장(도내동) 등 많은 서울시 역외기피시설들이 있다. 기피시설의 운영주체는 서울에 연고를 두고 있는 탓에 시설운영으로 인해 발생한 편익의 대부분은 서울시로 귀속되는 반면 이로 인해 발생되는 지가하락, 교통체증, 소음 및 악취 등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고양시민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40년 이상 지속돼 왔다.

그나마 최성시장을 중심으로 고양시민이 똘똘 뭉쳐 싸운 결과, 지난 2012년 서울시와 고양시 간 상생협약을 체결한 바 있지만 주요 이행사항은 예산문제 등의 이유로 진행이 더디기만 하다.

물론 이 같은 문제가 서울시민 또는 서울시나 은평구 행정담당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남보다는 나를, 우리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상대의 불편과 고통에 애써 눈을 감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염치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다. 농촌에 가면 ‘여름에는 주인이 도둑놈이고, 가을에는 일꾼이 도둑놈’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는 해가 길기 때문에 주인이 일꾼을 실컷 부려먹고, 가을에는 해가 짧아 일을 조금만 하고 품삯을 받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살다보면 상황에 맞춰서 누군가는 조금씩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소한 상대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할 줄은 아는 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염치다.

염치가 없을 때 세상사는 고약해진다. 대통령이 염치가 없으니 나라와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고,

사람으로서의 염치가 없으니 온갖 부정부패와 입에 담지도 못할 극악무도한 범죄가 판을 치는 것 아니겠는가. 비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디 앞으로는 은평구와 서울시의 행정에도 염치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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