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8 - 화정동 만화카페 '놀숲'

 

 

만화카페의 진화된 버전 '놀숲'을 찾으면 공간의 쾌적함과 자료의 풍성함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아무도 방문을 노크하지 않는 나만의 구석방에 틀어박힌다. 푹신한 쿠션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한쪽에 잔뜩 쌓아 놓은 만화책을 게으르게 뒤적거린다. 홀짝거리던 음료가 바닥을 드러내면 달걀 푼 라면 한 그릇으로 출출한 속을 채운다···. ‘만화책이 있는 나만의 구석방’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귀차니즘(만사가 귀찮아 일상의 의욕이 방전되는 증상)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라면 가끔씩 꿈꿔 보는 저비용 로망 중 하나다. 한나절, 아니 두어 시간 만이라도 세상과 담 쌓고 틀어박힐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다면 만화카페의 문을 한번 두드려보자.     

 

만화방의 깜짝 놀랄 진화

기성세대들의 기억속에서 ‘만화방’이라는 단어는 양면적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으리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꿈의 둥지가 그 하나라면, 지저분하고 불량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다른 하나다. 198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기자 역시 만화방에 대한 이런 저런 추억이 한아름이다. 오혜성, 이강토, 독고탁과 같은 친구들과 속 깊은 우정을 나눈 곳도, 성인만화 코너를 기웃거리며 불량식품으로 군것질을 하던 곳도 만화방이다. 20대 초반에는 24시간 만화방에서 밤을 꼴딱 지새우며 만화책과 더불어 ‘다채로운 영상물’을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화방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그동안 만화방이 이런 저런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마니아들이나 찾는 공간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 화정의 만화카페 ‘놀숲’을 찾은 기자에게 만화방은 깜짝 놀랄 모습을 보여줬다. 오래 전 헤어진 추억 속 연인은 화려한 백조로 변신해 화사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왔다. “너무 변해서 놀랐니?”

음료 한 잔 손에 들고 토굴방으로

놀숲에 입장하려면 공손히 신을 벗고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 이용요금은 시간제다. 두 시간 쿠폰을 끊으니 음료 한 잔이 제공된다. 공간은 깔끔하고 쾌적하다. 테이블과 의자가 갖춰진 좌석도 있지만, 구석구석마다 칸막이 방들이 빼곡이 배치됐다. 방의 스타일도 다양하다. 상단부가 개방된 오픈형도 있고 아늑한 밀폐형도 있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이층 칸도 있다. 직장인이나 연인들은 주로 토굴방 스타일을 선호하고,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이층으로 올라가길 좋아한단다. 새롭고 흥미로운 곳에선 만사 제쳐두고 공간을 몸소 경험해 보는 것이 우선. 기자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가득 채워 들고 책 두 권을 골라 토굴방 하나로 기어든다.

 

이층으로 만들어진 토굴방.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을 즐기기에 딱이다.

 

두툼한 방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커다란 눈동자가 매력적인 고양이 쿠션을 무릎에 얹고 만화책을 펼친다. 첫 책은 허영만이 그린『커피 한잔 할까요?』다. 커피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잘 골랐다. 손에 든 커피맛이 더 맛있어진다. 두 번째 책은 제목이 뭔가 멋져보여서 골랐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다. 원룸에서 살며 서점에서 일하는 독신남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만화다. 이 책도 아주 잘 골랐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우주를 상상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골방에 틀어박혀 온 세상을 꿈꾸는’ 만화카페의 정체성과 아주 닮았다. 아쉽게도 취재 시간을 하염없이 연장할 수 없는 처지라 ‘만화가 있는 동굴 체험’을 한 시간여 만에 마무리해야 했다.       

 

기자가 고른 두 권의 만화책. 편안한 공간에서 봐서 그런지 무척 재밌었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물 두루 갖춰

천천히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어떤 책들이 꽂혀 있을까? 단행본으로 출판된 만화들이 코믹, 액션, 순정 등 장르별로, 작가별로 잘 분류돼 있다. 마니아층을 겨냥한 마블코믹스나 일본 추리소설 코너, 신세대 시집 코너도 눈길을 끈다. 최근의 관심과 인기를 반영하듯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유명 작품들도 당연히 한자리에 알뜰히 모아놓았다. 연령대별 배려도 확실하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모아놓은 코너는 물론, 청소년소설 코너도 별도로 갖췄다. 어린이 교양만화와 인기 아동서적도 넉넉히 갖췄다. 카페 직원에게 문의하니 소장량이 2만5000권에서 3만권가량 될 거란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자신이 찾고자 하는 책을 어떻게 찾을까? 걱정할 일 없다. 검색용 PC에서 작가나 제목을 입력하면 책이 꽂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다. 책 에도 보드게임세트와 종이를 오려 캐릭터를 만드는 페이퍼토이도 무료로 제공된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만화 캐릭터들로 만든 페이퍼토이 작품들. 만화카페라는 공간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메뉴를 살펴보자. 일반 브런치카페 전문매장의 메뉴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커피와 음료, 토스트와 샌드위치가 깔끔하고, 떡볶이와 볶음밥도 맛있어뵌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만화카페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라면이라고. ‘만화방+라면’ 조합은 ‘당구장+짜장면’ 조합과 더불어 이견을 불허하는 진리의 콤보란다. 한쪽에는 군것질용 과자도 다양하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니 주머니 사정만 넉넉하면 한나절 내내 입도 눈도 심심치 않겠다. 낮 시간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주부들이나 일하는 도중 잠시 짬을 낸 직장인들이 많고,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 당연히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애용된다.

 

놀숲에서 내는 브런치 메뉴도 깔끔하고 맛있다.

 


놀숲의 캐릭터인 고양이 쿠션. 만화카페의 특징과 너무 잘 어울린다.

만화카페 놀숲의 캐릭터는 고양이다. 토굴방마다 한 마리씩 웅크리고 있는 쿠션 속 고양이는 눈이 커서 만화책을 하루에도 수십 권 읽을 것만 같다. 쿠션 외에도 곳곳에 고양이 모양의 소품과 디자인이 숨어있다. 게으름과 예민함의 이미지를 함께 지닌 고양이가 공간의 성격과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고양이처럼 웅크리고만 싶은 날, 또는 생각이 고양이처럼 날렵해지고 싶은 날엔 만화카페로 찾아가보자. 당신의 눈망울이 고양이 눈처럼 좀 더 초롱초롱해질지도 모른다.

 

카툰앤북카페 놀숲
고양시 덕양구 중앙로 628 4층
031-979-0005

 

"고양이가 되고 싶은 날엔 만화카페 놀숲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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