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11 - 타임앤블레이드(Time&Blade) 박물관

타임앤블레이드 박물관은 시계와 칼이라는 테마로 국내 최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고대 인류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래 모든 문명권에서는 평평한 마당의 한 가운데에 막대기를 꽂았다. 막대기는 태양의 반대편에 긴 그림자를 남겼고, 그림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루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얼추 가르쳐 주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가장 원시적인 장치, 해시계다. 마찬가지로 칼 역시 문명의 시작과 함께 탄생했다. 선사시대의 돌칼에서부터 청동을 거쳐 철로 재질이 바뀌었지만, 자연을 다스리는 생활의 도구로, 권력을 구축하는 정복의 도구로 칼은 역사 속에서 인류와 늘 함께 했다. 인간의 역사를 더듬는 두 개의 매력적인 촉수, 시계와 칼의 국내 최고 컬렉션을 보유한 박물관을 찾았다. 파주 헤이리마을의 타임앤블레이드(Time&Blade)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 위에는 거대한 시계를 짊어진 아틀라스 조각상이 방문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양도 기능도 다양한 기계식 시계 한 자리에  

박물관 입구 위에는 거대한 시계를 짊어진 아틀라스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지구의 자리를 시계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고 웅장한 진열 공간을 1천여 점 수집품이 가득 메우고 있다. 1층은 시계의 집이다. 시계의 조상 격인 해시계와 물시계도 있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역시 태엽이나 추를 동력으로 삼는 기계식 시계들이다. 기계식 시계의 발전 단계를 따라 괘종시계, 탁상시계, 회중시계, 그리고 손목시계를 살필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계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휴대는 간편해졌다. 시계의 역사는 고스란히 ‘통일된 시간’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파고 든 역사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괘종시계가 박물관의 한쪽 벽면을 채웠다.

장인들의 열정은 보다 정확한 시계와 함께 보다 개성있고 아름다운 시계를 향하기도 했다. 덕분에 전시물 하나하나엔 저마다의 스토리가 깃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나오는 오르골이 내장된 예물시계, 이스탄불에서 왕의 근위병이 사용하던 탈착식 피스톨 회중시계도 있다. 세계 최고의 시계산업을 발달시킨 스위스 시계 장인들의 역사 이면에는 유럽의 근대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의 혹독한 역사가 배어있다. 로마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 국경지대로 피신한 신교도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집중력으로 탄생시킨 것이 스위스 시계산업의 모태가 되었던 것.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계는 점점 작아져 주머니에 휴대하기 좋은 회중시계의 전성기를 열었다.

유명인들과의 인연을 자랑하는 시계들도 흥미롭다. 인도의 간디가 찼던 회중시계,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찼던 손목시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사각 제니스시계, 스티브 매퀸이 주연한 영화에 등장했던 태그호이어 스포츠시계도 만날 수 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힐러리경의 손목엔 로렉스의 익스플로러가, 1969년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손목엔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라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가슴 뛰는 순간들 곁에는 늘 그렇게 시계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생산과 파괴의 양날 지닌 칼의 세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발길을 옮기니 1층과는 전혀 다른 서늘한 기운이 방문자를 감싼다. 자르고 찌르고 베고 부수기 위한 도구, 2층의 주인공은 칼이다. 질서 있게 구획된 전시 공간마다 각 시대와 문명을 대표하는 다양한 칼들이 들어차 있다. 시계의 생명이 정밀함이라면, 검의 생명은 날카로움과 단단함. 보다 예리하고 보다 강력한 검을 얻기 위해 인류가 기울인 노력들이 엿보인다. 이슬람문명에서 주로 사용한 칼은 날이 한쪽에 있고 몸체가 곡선으로 휘었다. 반면 기독교 문명에서는 길고 가늘게 일자로 뻗은, 양날을 모두 사용하는 검을 주로 사용했다. 기독교의 검이 직선 모양의 십자가를, 이슬람의 검이 유연한 곡선의 초생달 모양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칼, 알렉산더가 활약한 마케도니아제국의 칼,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 십자군 원정 등 유럽의 문명을 관통하는 사건들이 칼을 통해 전시된다. 유럽의 칼이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몽골, 인도, 네팔,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문명권의 칼들은 보다 모양이 다채롭고 장식적 요소가 강해 보인다. 사무라이 문화를 발전시킨 일본의 칼과 칠지도를 비롯한 우리 역사의 명검들도 살필 수 있다.

이슬람 문명권의 칼은 한쪽 면에만 날이 서 있고 모양은 초승달처럼 휘었다.

힘의 도구지만, 여기에도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여지없이 깃든다. 칼날의 모양과 무늬에 멋을 부리고, 손잡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작은 조각상을 새겨넣기도 했다. 덕분에 잘 만든 칼은 예술품의 경지를 넘나든다. 전문가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칼의 산지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꼽는다. 철을 여러 번 접고 두드려 섬세한 층을 만드는 다마스쿠스의 칼의 강도와 성능은 유럽 기사들의 칼을 압도했다. 다마스쿠스 칼의 전설은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한 시리아의 왕 살라딘의 무공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전승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의 소장품을 살피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아이의 체험학습을 위해 함께 따라 온 부모들이 박물관의 매력에 더 흥미를 가지더라는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정교하게 모양을 낸 칼들이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조형적 쾌감을 선사한다.
 

영원히 부활하는 이카루스의 꿈

박물관의 소장품을 모은 이는 이동진 관장이다. 시계 수집 취미가 있었던 부친 덕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기계식 시계를 접하며 자란 이동진 관장은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컬렉션을 시작했다. 단순히 물건만 모은 것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공부하는데도 부지런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시계와 칼과 함께한 결과 이동진 관장은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깊이 있는 안목을 가진 전문 컬렉터가 되었다. 그는 박물관 지하에 칼을 만드는 작업장을 갖추고 시연을 펼치기도 한다. 

타임앤블레이드 박물관의 소장품 중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이카루스의 회중시계’가 있다. 이카루스가 누군가. 태양을 향해 다가가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추락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욕망을 절제하는 지혜를 얻지 못한 이카루스 이야기의 메시지는 타임앤블레이드 박물관이 들려주는 메시지와 닮아있다. 시계와 칼, 또는 시간과 무기라는 밀랍 날개를 달고 우린 지금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 걸까.

타임앤블레이드 박물관 1층 전시장 모습.
올해 말까지 '스토리텔링 시계특별전'이 열리고 있으며, 학예사화 함께 하는 창의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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