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택금융공사 수도권동부 본부장
온 산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봄여름을 거치면서 보여줬던 싱싱하고 푸르렀던 기개가 어느 틈에 원숙하고 고혹적인 자태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머지않아 마지막 잎을 떨구고 기나긴 겨울을 견뎌야 한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인생은 나무와 닮아 있고 노년은 딱 이즈음 단풍이다. 그러기에 늦가을 단풍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리 어르신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장년 세대의 경우 젊은 시절 누구 못잖게 열심히 살았지만 벌었던 수입은 부모봉양, 자녀교육비, 집 장만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은퇴를 맞이한 지금 남은 삶을 꾸릴 생활비는 정작 수중에 없는 우울한 상황이 벌어져 있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늘어나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만만치 않다는 게 고민을 더한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자식들에게 노후를 기댈 수도 없게 되었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라고들 하지 않는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2040년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리라는 것이다. 총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현재 13% 수준인데 2040년에는 32.3%까지 치솟게 되고, 고령자 수가 노동인구(15~64세)를 상회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돈 버는 사람이 총 인구의 3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국가재정을 통한 노인복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자식들의 입장에선 부모봉양은 둘째치고 자기 처자식 먹여 살리기에도 버거운 일이다. 이쯤 되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혹독하고 긴 겨울을 견뎌야만 하는 나무 신세라고 할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60세 이상 가구 중 70% 정도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늘어난 수명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 수 있다. 주택연금 이야기다.


주택연금은 내 집에서 평생 이사 걱정 없이 살면서 부부가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다달이 정해진 금액을 연금처럼 받아쓰는 상품이다. 평생월급을 받는 셈이다. 부부 중 한 분이 60세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는데 가입한 후 집값이 크게 떨어지거나 혹은 너무 오래 살아서 집값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아썼다 해도 부족분을 자식들에게 청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가입할 때보다 집값이 올랐거나 안타깝게 일찍 사망해 집값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면 남는 금액은 자식들에게 돌려준다.

이익은 가져가고 손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오래 살수록 이익이고 집값이 내려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2007년에 도입된 후 지금까지 3만8000명이 가입했을 만큼 안정적인 노후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거와 생활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미처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 중인 은퇴자 입장에서는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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