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산황동, 내셔널트러스트 '이것만은 꼭 지키자' 지정

조정 고양환경운동연합 고문
‘나무에 대하여’ 라고 글을 시작하면 목질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집니다. 다정한 기억의 냄새입니다.

‘숲에 대하여’ 라고 소리 내면 서늘하고 가벼운 고요가 일렁입니다. 나지막한 산의 흰 돌 깔린 산책로가 다가옵니다.

지난 3년간 편지 한 장 차분히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무와 숲을 죽이려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좀 쉬었습니다. 웃지 않고 하루를 지나기도 했습니다.

무슨 일로 누구와 싸우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그대는 제 소식을 늘 기다리고 계셨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의 싸움에 대한 풍문을 이미 들으셨나요?

저와 제 친구들이 ‘산황동 마을 산과 680년 된 느티나무’와 농약에 오염될 수돗물을 골프장 사업자와 관료들의 손에서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대의 기다림 앞에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쁜 소식을 전할 날이 왔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통보가 왔어요. ‘이곳만은 꼭 지키자’ 공모전의 2차 현장 심사를 거쳐 우리 산황산과 느티나무도 지켜야 할 유산으로 선정이 되었다는군요.

내셔널 트러스트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힘으로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활동을 하는 환경 신탁 단체입니다. 110년 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강화 매화마름, 최순우 옛집, 원흥이마을 두꺼비 서식지 등 많은 지역과 문화재를 영구보전 유산으로 확보하였습니다.

이번 공모는 환경청과 문화재청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느티나무 할아버지를 문화재로 모시고 싶다는 기대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객관적 평가는, 고양시장, 국회의원, 공무원들이 우리의 문화 자산을 천시해왔다는 증좌이기도 합니다.

11월 21일 오후 2시에 서울에 있는 문학의 집 산림문학관에서 시상식이 있습니다. 수상 단체마다 10명의 손님을 초대할 수 있다고 해요. 산황동골프장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에서는 9명이 참석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그대’를 위해 의자 하나를 비워놓으려고 합니다.

시상식이 끝나면 눈이 내리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산황산과 느티나무 주변을 청소하기로 했습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 사이 작은 들에 둘러싸여 희귀하게 남아있는 농촌마을의 뒷산. 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밤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에 고라니, 산매, 두꺼비, 청설모, 청딱따구리, 멧비둘기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을 어른들이 가끔 말씀하셔요.

“여기는 일가들 사는 마을이라 외부 사람이 오면 금세 눈에 띄잖아. 저기 시내 사는 이들이 와서 가끔 산 아래 차 세우고 물끄러미 나무를 보곤 해. 살아가는 일이 힘드니까 우리 마을에 찾아와 위로를 받고 가는 거야.”

운동화가 잠기게 쌓인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러 한번 놀러 오셔요. 백마역과 식사동에서 5분 거리입니다. 올해 못 오시면 내년 봄에 아니면 다음 해 가을에 오셔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앞으로는 내셔널 트러스트와 함께 산황산 영구보전 행동을 함께 하게 되었으니 조금 여유를 찾아 그대에게 종종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 편지의 서두는 늘 나무 향기에 젖어 시작되겠지요.

 

- 보세요, 허공에 내려진 실에 몸을 감으며 작은 애벌레가 울끈불끈 나무 위로 오르고 있어요.

- 마음씨 착한 초록 우산처럼 나무들이 비를 받고 있어요. 달팽이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요.

- 사람에게는 위로 받을 수 없었는데, 나무의 부드러운 눈빛에 목이 메어 걸음을 멈춘 날입니다.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제 속내를 적습니다. 다음 편지의 서두는 꼭 이렇게 시작하고 싶어요. 그날은 제 창밖에 서있는 다섯 그루 나무가 만 가지 빛깔로 반짝일 것입니다.

“기뻐해 주세요. 고양시장이 골프장을 직권취소하고, 국회의원, 공무원들이 산황산 영구 보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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