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공간 12 - 소울원

 
파주 탄현면에 자리한 소울원은 아름다운 정원과 모던한 건물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을은 참 야속하다. 매력적인 연인일수록 콧대도 높고 변덕도 요란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옆구리 찌르며 다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짐을 싸고 있다니···. 아무리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해도 그 때를 일방적으로 정하는 건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가을과의 마지막 데이트를 폼 나게 하고 싶어 격에 맞는 장소를 찾아봤다. 파주 탄현면에 숨어있는 정원, ‘웃음이 넘치는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소울원이다.

소울원 안쪽 언덕으로 오르는 길. 커다란 참나무 네 그루가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수목원과는 또 다른 ‘명품 정원’의 멋
 
소울원을 찾아가는 길은 좀 낯설었다. 자유로를 따라 이어지는 파주출판도시, 헤이리예술마을, 임진각 평화누리와 멀지 않은 위치지만, 농경지 사이로 크고 작은 공장과 창고 건물들이 교대로 나타나는 국도를 따라 잠시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탄현면사무소(고양시 탄현동 말고 파주 탄현!) 삼거리에서 축현리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니 길은 더 좁아진다. 이런 평범한 동네에 명품정원이 있기나 한 걸까, 의아해 질 때쯤 불쑥 소울원이 나타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작은 언덕 위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이 보인다. 건물까지 오르는 긴 경사로 역시 자갈과 시멘트로 세련되게 장식됐다.

4000여 평의 대지에 꾸며진 소울원에는 멋진 정원수와 정원석, 그리고 분재가 적당한 간격으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울원은 일반 수목원이나 식물원과는 차이가 있다. 대개의 수목원이나 식물원이 나무의 종류와 숫자를 자랑하는 데 비해 소울원은 ‘소량 고품격’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 정원석 하나에도 정원을 조성한 이의 감각과 정성이 가득 묻어난다. 다채롭고 절제된 조형미까지 더했다. 그러한 까닭에 ‘명품 정원’이라는 수식어가 더 없이 들어맞는다. 쓰면 쓸 수록 그 가치가 비로소 보이는 게 명품이니 소울원의 나무와 돌들도 시간과 마음 써 가며 천천히 감상해야 진가가 드러난다.

온실 앞쪽의 정원. 아름다운 분재와 나무 화석이 모여 있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마다 이야기 가득

나무부터 살펴보자. 나무마다 붙은 설명이 상투적이지 않다. 수령 400년이 됐다는 산수유 나무에는 ‘비틀린 몸통과 억세게 뻗은 가지가 작은 아프리카를 보여주듯 원시성을 내뿜고 있다’는 설명이 붙었고, 친근한 느티나무에도 ‘열심히 세사을 살아가는 소시민을 보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적어놨다. 정원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소나무와 홍공작단풍도 기품과 멋이 넘친다. 철쭉과 주목, 향나무 등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나무들은 화분에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으로 분재, 하면 떠오르는 작고 소박한 사이즈와는 달리 규모와 형체가 탁월해 굳세고 당당한 기운마저 풍긴다. 살아서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 분재는 살아있는 물관과 죽은 사리 부분이 뒤엉켜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소울원에 자리한 명품 나무들의 나이를 모두 합산하면 자그마치 25,000살에 이른단다. 한 계절의 떠나감을 섭섭해 하는 나들이꾼의 알량한 시간감각으론 감히 실감이 안 되는 세월이다.

정원의 자연미와 공간의 건축미가 어우러져 소울원만의 조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정원석도 저마다 기이한 형태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괴산에서 난 청오석 산수경석은 화강암으로 만든 석대 위에 멋진 연꽃 문양을 새긴 청동수반을 올린 뒤 얹어놓았다. 고운 모래가 수반의 빈 공간을 채우니 마치 명산의 한 조각을 옮겨놓은 듯 형태가 기이하다. 돌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관통석은 현대의 추상미술작품을 보는 듯한 미적 쾌감을 준다. 그런가 하면 연인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돌은 말 그대로 양쪽 돌출부위가 다정히 머리를 맞댄 연인을 연상시킨다.

두명의 연인이 다정스레 얼굴을 맞댄 형상을 하고 있는 연인석.

나무의 매력과 돌의 매력을 한꺼번에 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물도 있다. 바로 나무 화석이다. 죽은 나무가 뻘이나 화산재 등에 매몰되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토양 속의 광물질이 목질 부분을 채워 만들어지는 나무 화석은 자연의 오묘함과 광대한 시간의 우직함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걸작이다. 고급지고 귀한 나무 화석이지만 소울원에선 넓은 탁자 모양의 일부 나무화석에 친절하게도 ‘위에 앉아서 편하게 감상하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았다.

자연의 신비를 맛볼 수 있는 나무화석은 시간이 빚어낸 걸작이다.

계절을 보내거나 맞이하기에 제격인 곳

정원의 맨 꼭대기에는 자연석으로 조경을 한 폭포가 경관의 정점을 장식하고 있다. 두어 시간 정원을 거닐며 셔터를 누르다보니 손이 시리다. 폭포 옆에 자리한 유리온실로 들어서니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온실 한켠에서 햇살을 즐기고 있는 가을꽃들이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 준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머무는 온실 안의 온화한 풍경.

소울원에선 야외 정원만큼이나 근사한 실내 공간도 있다. 1층 카페에선 향이 좋은 커피와 허브티 등을, 2층 레스토랑에선 화덕피자, 파스타, 샐러드를 즐길 수 있다. 음료와 식사를 구매할 때 티켓 가격만큼 차감이 되니 사실 명품 정원의 입장료는 무료인 셈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간격이 넉넉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시원한 통유리창 너머의 풍경들을 천천히 음미한다. 정원을 거닐며 접사렌즈로 본 풍경들을 광각렌즈로 다시 복기하며 마음에 저장한다. 다음 계절에 찾아온다면 흰 눈이 내려앉은 정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소울원에서의 마지막 데이트를 마무리하니 떠나는 계절에 대한 미련이 나름 정리된다. 잘 가거라, 가을아. 나들이꾼의 마음엔 어느 새 다가올 계절에 대한 기대감이 고이기 시작한다.  

소울원 2층 레스토랑의 실내 모습. 통유리창 너머로 정원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

소울원 (SOULONE)
파주시 : 탄현면 축현리 299-3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입장료 : 5000원(음료·식사 구매시 차감)
문의 : 031-945-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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